'잔업 거부는 불법파업'이라는 울산지검
검찰의 주장과 근거는 다음과 같다.
"노사가 근로계약한 연장근로를 집단적으로 거부한 것은 형법 제314조 업무방해 규정에 해당된다. 특히 이번 잔업거부는 근로자가 혼자서 연장근로인 잔업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노조가 위력 등을 통해 집단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업무방해죄에 해당된다."
이에 대한 노조의 반박은 이렇다.
"법에 정해져 있는 것처럼, '8시간 정상적인 근무'를 다하고 퇴근하는 것도 죄가 된다는 말인가? 노동조합 지침에 따라 잔업을 하지 않은 것은 이미 관례적으로 진행해 왔다. 또한, 잔업은 연장근무로 조합원 개인에게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이고, 자율적인 것이다. 한 사업장의 노동시간까지 불법 운운하는 법해석이나 하고 있는 울산 지검의 검찰은 그렇게도 할 일이 없단 말인가."
잔업은 "반사회적 노동"이라는 서구 사회
'잔업'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정해진 노동시간이 끝난 뒤에 하는 노동. '시간외 일'로 순화"라고 나와 있다.
국민의 최저 노동기준을 정하고 있는 법률인 근로기준법 제50조를 보면 하루 노동시간은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1주간의 노동시간은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노동자의 기본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한다"는 근로기준법의 목적에 비추어 볼 때, 하루 8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은 노동자의 기본 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국민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저해한다고 볼 수 있다.
노동권이 발달된 서구 사회에서는 초과 근무나 휴일 근무를 "반사회적 노동(unsocial work)"으로 낙인찍고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줄기차게 해오고 있다. 노동운동의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노사 간의 다툼은 노동시간의 연장과 단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물론 노동시간을 둘러싼 노사 간의 다툼에서 국가권력은 언제나 회사 편을 들었고, 이런 이유로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150년도 더 전에 그의 유명한 <공산당선언>에서 "국가는 부르주아의 집행위원회"라고 신랄하게 비꼬았었다.
잔업은 강요할 수 없다
'잔업'이란 말은 사회에서 관행적으로 쓰는 말이고, 우리나라 노동법에서는 '연장근로'란 말을 쓴다. 근로기준법 제53조를 보면 '연장근로의 제한'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는데,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일주일에 12시간을 한도로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당사자를 노동자 개인으로 바로 규정하지 않은 것은 노동자를 대변하는 노동조합도 당사자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노동조합은 소속 노동자를 대신하여 회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할 때, "연장근로의 제한"에 대한 내용을 삽입한다.
현대차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 제63조(연장 및 휴일 노동)를 보면, "연장 및 휴일노동은 강요할 수 없으며 근로기준법 제52조에 준하여 실시한다. 단, 회사는 조합원이 개별적으로 연장 및 휴일노동을 하지 않음을 이유로 불이익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검찰의 '불법파업' 타령
그런데도 한심하게도, 울산지검은 하루 8시간 노동을 정상적으로 마치고 연장근로를 하지 않고 퇴근한 노동자들의 행위를 "불법파업"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말을 듣고 있으면 엘리트가 모여 있다고 하는 대한민국 검찰의 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파업이라 함은 법률적으로나 사회 관행적으로나 하루 8시간의 정상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자유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치고 어느 나라 검찰이 연장근로를 하지 않은 것을 두고 파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한발 더 나아가 울산지검은 "노동자가 혼자서 잔업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노조가 위력 등을 통해 집단적으로 거부해 불법"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또한 한심하기 그지없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자주적 민주적으로 세운 노동자들의 대표체다. 검사 개개인이 그냥 개인이 아니라 검찰이라는 국가기관을 대변하듯이, 노조원 개개인도 그냥 개인이 아니라 노동조합이라는 자주적 기관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한다.
노동자 개인이 혼자서 잔업을 거부하든 노동조합을 통해 집단적으로 잔업을 거부하든 그것은 노동자 개인과 노조가 알아서 할 일이지 국가가 나서서 "콩 놔라 팥 놔라" 할 사안이 아니다. 8시간 노동은 끝났고, 그 다음은 노동자들이 알아서 한다. 노조가 주도하는 잔업거부에 동참할지 여부는 노동자들의 대표체인 노동조합의 자치권에 속하는 일이지 검찰이 참견할 일은 아니다.
ILO "강제노동 강요하면 형사 범죄"
국제노동기구(ILO)의 노동권 관련 핵심협약을 설명하고 토론하는 세미나에 참석할 때마다 나오는 쟁점이 있다. 협약 제29호, 제105호에서 규정한 강제노동(forced labour) 문제가 그것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잔업(overtime work)" 역시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제공하기보다는 회사로부터 강요받는 경우가 많고, 노동자 본인은 하기 싫은데 회사에게 찍힐까봐 두려워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례가 있으며, 기본급이 작기 때문에 부족한 급여를 채우기 위해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게 사실상의 강제노동 아니냐고 주장한다.
ILO 협약 제29호(강제노동에 관한 협약)에서는 강제노동을 "처벌의 위협 하에서 강요받거나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하는 것이 아닌 모든 노무"라고 규정하면서 "강제노동의 불법적인 강요는 형사 범죄로 처벌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ILO 협약 제105호(강제노동의 폐지에 관한 협약)에서는 "다섯 가지의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1) 정치적 견해 또는 기존의 정치 사회 경제 제도에 사상적으로 반대하는 견해를 가지거나 발표하는 것에 대한 제재 및 정치적 억압 또는 교육의 수단, (2)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노동력을 동원 이용하는 경우, (3) 노동규제의 수단, (4) 파업참가에 대한 제재, (5) 인종적 사회적 민족적 또는 종교적 차별대우의 수단"을 꼽고 있다.
진짜 업무방해자는 누구인가
이명박 대통령의 부시 대통령을 위한 대미 조공외교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조속히 타결하기 위해 국민건강권은 전혀 생각지 않고 소고기 시장 개방을 덜컥 약속한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각지에서 촛불시위는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으며, 그 대열에 남녀노소 구분 없이 참여하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고분고분 잔업을 했을 많은 직장인들이 사무직 생산직 구분 없이 8시간 노동을 마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울산지검은 촛불시위 참여를 위한 현대차노조의 잔업거부 조치를 불법파업이라며 형법 제314조에 규정된 업무방해 조항을 들이대고 있다.
일단 "불법파업"이라면서 노동법이 아닌 형법의 업무방해 조항을 들이미는 모양새가 우습고 또 우습다. 또 정작 국민들로 하여금 잔업 수당도 포기하게 만들면서 촛불시위에 나서게 만든 자들, 국회와 국민의 의견을 모조리 무시하고 미국까지 가서 국익과 국민건강권을 팔아먹은 문서에 서명을 하고 온 진짜 업무방해자들 앞에서는 알아서 기는 대한민국 검찰의 비겁함과 옹졸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강제노동' 강요하는 대한민국 검찰이야말로 처벌 대상이다
지금 대한민국 검찰은 촛불시위를 위해 잔업을 거부하는 현대차노조와 노동자들에 대해 형법 314조의 업무방해 조항을 휘두르며 "처벌의 위협"을 가하면서 잔업을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검찰의 행위는 ILO가 규정한 강제노동에 해당되며, 이 경우 오히려 검찰이야말로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가 되기 때문에 형법으로 처벌받아야 한다.
개인 사정으로 잔업을 하기 싫은데도 억지로 잔업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하는 저임금노동자들도 부지기수다. 근로기준법을 무시하는 회사와 업주들은 전국 곳곳에 널려 있다. 노동조합과 체결한 단체협약을 무시하는 사장들을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대한민국 검찰이 나섰다는 이야기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검찰이 촛불시위에 참가할 목적으로 노동조합이 주도해서 잔업 2시간 거부했다고 불법파업이니 업무방해니 하며 열을 올리고 있다. 대한민국 검찰은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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