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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은 광장을, 경찰은 '버스'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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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은 광장을, 경찰은 '버스'를 지킨다

[현장]"서울 명소 '광화문 광장', 입장권은 '촛불 하나'"

한낮의 무더위가 가신 14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분신한 고(故) 이병렬 씨의 영결식이 오전에 열렸던 이곳에선 저녁이 되자 또 다시 촛불이 하나 둘씩 밝혀졌다.

같은 시각, 이병렬 씨의 노제가 전북 전주에서 치러지는 가운데 서울의 촛불 집회도 차분하게 시작됐다. 그러나 어느덧 3만 여명의 시민이 모인 광화문과 서울시청 앞 광장 일대는 서서히 토론과 함성이 아우러진 종합문화공간으로 변해 갔다.

입장권은 없었다. 촛불 하나, 피켓 하나를 들면 그만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반대', '이명박은 물러가라' 등 함께 외치는 구호에 동참하는 목소리 정도가 공통 준비물. 서로 먹을거리와 물을 나누고, 서로 공연을 벌이고 또 구경하고, 토론을 벌이는 가운데 광장의 열기는 밤 늦도록 식을 줄 모르고 이어졌다.

"요즘 친구들이 다 '이명박 미쳤다'고 해요"

광장에서 표출되는 목소리는 점차 다양해지고 있었다. 시민들은 '비정규직 철폐', '대운하 반대', '공영방송 사수', '조중동 반대' 등 다양한 구호가 적힌 천막 앞에서 기꺼이 줄을 서 서명을 했다.

주장을 알리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인권활동가들은 '길거리 토론회'를 열었고, 세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길거리 음악 공연을 열었다. 배우들은 길거리 연극 무대를 개설했고, 환경운동가들은 동영상을 상영했다. 송파노련 상인들은 순두부를 무료로 나눠줘 인기를 끌었다. 이 모든 것은 경찰이 청와대 방향 광화문 사거리를 차벽으로 봉쇄하면서 저절로 만들어진 널찍한 '세종로 광장'에서 벌어지는 풍경이었다.
▲ 14일 서울시청 앞 촛불 집회를 마치고 거리 행진을 하는 시민들. ⓒ뉴시스

'새내기' 촛불도 이날 어김없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과 2학년, 그리고 유치원생의 세 딸과 함께 인천에서 온 이모 씨는 "아이들이 와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제서야 왔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의 이모 양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봐서 재미있다"며 "요즘 친구들이 다 이명박이 미쳤다고 해요"라고 전했다.

가족 단위의 참가자들을 위해 직접 '뽀로로' 의상을 입고 참석한 시민도 있었다. "뽀로로도 미친 소가 싫어"라는 피켓을 들고 있던 그는 "5월 초부터 여러 번 촛불 집회에 나오다보니 어린애들이 많더라"며 조금이라도 이들을 즐겁게 해주려 의상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가 정부의 잘못된 점을 전부 드러내는 집회로 변해가고 있다"며 "1년이 넘더라도 이 분위기가 유지된다면 언젠가는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혼자 오기 싫어서"…"걱정 많은 동네 주민끼리"

촛불이 인연이 되어 모임을 꾸린 사람들도 곳곳에서 눈에 띠었다. 'OO단체' 플래카드가 걸린 다른 천막과 달리 태극기 하나만을 걸어놓은 채 10여 명이 모여 앉아 있던 한 천막에서 만난 이아름(24) 씨. 그는 "지난 5월 26일, 경찰의 폭력 진압 사건이 처음 났을 때 참을 수가 없어서 인터넷에 커뮤니티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촛불 집회에 혼자 가기 '뻘쭘'한 사람들 모이자는 취지로 만들었는데, 지역에 사는 시민들이 주말을 이용해 함께 집회에 참가한다"며 "인터넷으로 정보도 공유하고, 함께 집회에도 참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모인 이들은 매번 5~10명 정도이고, 주로 20~30대가 많이 오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 씨는 "이 일이 터지기 전에는 사회 문제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친구들과 클럽에 다니고 인터넷쇼핑몰을 돌아다니는 생활이었다. 그랬던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찾게 해준 것에 0.001%이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의 덕이 있다고 보고, 그 점에서는 고맙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도봉구에 사는 걱정 많은 사람들'이라고 적힌 깃발 아래 모인 시민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명승 씨(35)는 "광우병 쇠고기와 관련해서 평소에 사회 문제에는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이게 됐다"며 "이곳 촛불 집회까지 오기 힘든 지역 주부들이 모여서 매주 목요일마다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씨는 "지역에서 열리는 집회에는 지금까지 매번 70~80명 정도가 참석한다"며 "아파트 단지에 선전물을 붙이는 등 활동을 통해 모임을 알려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아직 모인지 2주밖에 안 됐지만 앞으로 지역 공동체로 좀 더 발전시킬 생각도 하고 있다"며 "주로 아이를 둔 30대 중후반 주민이 많은데, 정치 얘기를 할 것도 없다. 지금의 문제가 너무 심각하니까, 딱히 회의 같은 걸 하지 않아도 저절로 모이고 일을 나눠서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 입장으로서 잘못된 정책에 대해 이렇게라도 의사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밖에 없지 않나"라며 "화도 많이 나는데 표출할 방법이 없다 보니까 이렇게 사람들이 나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외국인들도 "놀라운 촛불, 안 와볼 수 없어"

촛불 집회는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도 점차 한 번쯤 들리는 '견학 코스'가 됐다. 일본에서 평화운동을 하고 있는 슈게이 스님은 "일본 신문을 보고 소식을 알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데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도 미국이 뼈까지 수출해서 언론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며 "미국 정책에 일본도 휘둘리고 있는데, 한국이 그래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해 5월 금강산에서 만났던 한 할머니가 형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국을 찾았다"며 이 소식을 언론에 꼭 함께 실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여행 중에 서울을 찾았다는 데이비드 씨는 호주인이었다. 그는 "일본 체류 기간 동안 서울의 촛불 집회 소식을 접했고, 비행기 안에서 신문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며 "매우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놀랐고, 또 경찰이 너무나 억압적으로 이를 통제하고 있어서 놀랐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우리도 완전히 공감하는 문제"라며 "2주 동안 서울에 있을 예정인데, 아마도 계속 집회에 나올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경 대신 투입된 직업경찰·폴리스라인…그들은 '무엇'을 지키나

한편, 오후 7시부터 시작된 집회는 오후 10시 무렵 서울시청-남대문-명동-을지로-종로를 거친 거리 행진으로 일단 마무리됐다. 그러나 1만 여명의 시민들은 서울시청에서 광화문 사거리까지의 도로 곳곳에 모여 앉아 '밤샘 집회'를 즐겼다.

경찰은 이날도 어김없이 청와대 방향 광화문 사거리를 철저히 봉쇄했지만, 컨테이너 대신 경찰버스를 이용했다. 또 비난이 잇따르는 전의경 대신 직업경찰을 경찰버스 앞에 배치하는 '유연함'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행진 대열이 차도에 나선 뒤 차량과 사람이 뒤엉킬 때는 보이지도 않던 노란색 플라스틱 안전판 폴리스라인까지 경찰버스 앞에 배치했다.
▲ 경찰은 이날 광화문 사거리 봉쇄에 경찰버스와 직업경찰, 폴리스라인을 동원했다. ⓒ뉴시스

시민들은 "청와대에서 1㎞는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곳을 이렇게 철저하게 막아야 할 이유가 뭔가"라며 항의했지만 선두에 배치된 경찰은 무표정으로 일관한 채 일절 대답을 하지 않았다. 또 인권활동가들은 폴리스라인 앞에 '근조 집회 시위의 자유'라고 적힌 설치물을 설치하고, 흰 국화꽃을 시민들과 함께 다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15일 오전 1시가 넘어서면서 항의하던 일부 시민들이 폴리스라인을 뚫고 경찰버스 앞으로 다가섰다. 경찰은 "평화시위를 보장하라고 했던 건 여러분인데, 왜 폴리스라인을 넘나"라며 "공권력을 투입해 강제 해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민'이 아닌 '경찰버스'를 지키려 설치된 폴리스라인이 부적절하다는 시민들의 항의에 제대로 대답하는 경찰은 없었다.

경찰은 오전 2시 정각 전·의경을 대거 투입해 광장 진입을 시도한 뒤, 차량을 통행시켰다. 인도로 밀려난 수백 명의 시민들은 이후 '이명박은 물러나라'를 연호하며 횡단보도 시위를 벌였지만, 경찰과의 심각한 충돌은 없었다.

집회를 축제처럼 즐기는 분위기 속에서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차 격해져 갔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오는 20일까지로 정부에 통보한 시한이 이제 6일 남았다"며 "계속 지켜보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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