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새벽 여의도 한나라당사의 모든 불은 꺼져 있었다. 다만 건물을 에워싼 촛불만 빛났다.
한국방송(KBS) 본사 앞에서 촛불을 들고 "한나라당사로 진격하자"며 행진을 시작한 약 2만 명의 시민은 한나라당사가 보이자 "한나라당은 꺼져라"는 구호와 함께 일제히 야유를 쏟아 냈다. 일부 시민들은 굳게 닫힌 한나라당사를 향해 달걀을 던지기도 했다.
당사 외벽에 설치돼 있던 대형 선전물 등은 미리 철거돼 있었다. 시민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였다. 창문의 형광등도 모두 꺼져 있었다. 얼굴을 내미는 사람도 없었다.
경찰 측에선 이미 한나라당사 주변에 경찰 버스로 차단벽을 만든 뒤 수백 명의 전경들을 배치해 시민들의 접근을 차단해 둔 상태였다. 시민들은 한나라당사 인근 사거리에 도착하는 과정에서 전경들과 가벼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심각한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나라당사를 향해 야유를 보냈던 시민들은 맞은편 진보신당 건물을 향해선 환호성과 박수를 보냈다. 한 진보신당 당직자가 건물 창문을 통해 "더 이상 못 참겠다, MB는 물러가라"는 문구가 새겨진 전단지 수백 장을 뿌리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일제히 탄성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대학교 4학년인 김철수(29) 씨는 "한나라당이 이명박 정부에 충고하는 이런저런 말은 하지만 그런 것도 다 민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며 "결국 이명박 정부 실정의 책임은 한나라당도 함께 지는 것이니만큼 한나라당사에 와서 항의를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남시 분당구에서 왔다는 정동화(41) 씨는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촛불을 끄고 정치권에서 해결하자'고 하지만 뒷구멍으로는 방송을 탄압하고 대운하를 추진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는 "야당에도 불만이 많다. 쇠고기 문제를 빼면 다른 문제에서는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면서 "야당은 이번 기회에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확실히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당사 앞에 모인 시민들은 이날 12시 40분께 자진 해산했다. 약 200여 명의 시민들은 한나라당사에서 다시 KBS 본관 앞으로 되돌아와 촛불 집회를 이어 갔지만, 이들도 곧 모두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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