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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빠진' MB, 당 주도 '새판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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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빠진' MB, 당 주도 '새판짜기'

한나라發 '쇄신책' 봇물…MB의 선택은?

쇠고기 정국을 비롯한 국정 난맥을 풀어갈 해법의 주도권이 청와대에서 한나라당으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쇠고기 협상 파문이 한 달 넘도록 장기화되는 동안 청와대가 주도해 내놓은 모든 '정치적 해법'이 국민들로부터 된서리를 맞으면서 청와대가 위기관리의 주체 역할을 하기가 불가능해진 탓이다.

정권 초반기의 당청관계는 청와대가 주도하는 개혁 드라이브에 여당이 군말 없이 보족하는 형태가 통상적이다. 따라서 정권 출범 100일여 만에 당이 위기 수습의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건 청와대 기능의 총체적 붕괴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입은 내상이 그만큼 심각하고 치명적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결정은 당이, 청와대엔 통보?

강재섭 대표는 9일 7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6월 중순으로 당기자는 제안을 했다. 취지는 "당정청이 삼위일체가 돼 앞으로 국정운영을 원활하게 조율하고 단합해서 가야 한다"는 것. 당정청을 포괄하는 인적 쇄신과 시스템 정비를 당이 주도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친박 복당 논란으로 박근혜 전 대표와 강재섭 대표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이 대통령은 강 대표에게 "임기까지 책임을 져 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 대표가 조기 전당대회를 요구한 건 지금의 정국이 청와대의 구상대로 풀려나가기 어렵다고 본 나름의 타개책이다.

이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은 예전 같지 않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강 대표가 결정하고 의원총회 직전에 (청와대에) 알려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당에서 결정해 청와대에는 '통보'했다는 얘기다. 시간의 촉박함 등을 이유로 강 대표의 조기전대론이 수용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이는 전적으로 당의 결정에 달렸다.

인적쇄신, 당이 주도권

강 대표는 개각과 관련해서도 "금명간 곧 내각이 사의를 표명할 것이라고 듣고 있다"며 "지난 번 대통령을 뵙고 여러분의 생각을 전달하면서 '폭넓은 개각을 해주십사'고 말했다"고 밝혔다. 당정청 인적쇄신과 관련해 당의 주도권 행사에 대한 자신감이 뚝뚝 묻어난다.
▲ ⓒ뉴시스

홍준표 원내대표도 "과거 정권처럼 코드인사를 해서는 안 되고 앞으로 전문가 위주로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그것이 실용정부의 참모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당정청이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 인적쇄신도 하고 시스템 정비를 전반적으로 하고 있다"며 "청와대도 집권 초기의 과도한 권한 등의 문제를 포함해 업무조정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당의 이 같은 요구에 청와대도 수용 의사를 내비쳤다. 청와대 측은 "장관과 수석을 교체하는 것만으론 촛불시위로 확인된 민심을 되돌릴 수 없다는 판단"이라며 "인적 쇄신, 시스템 개선, 책임총리제 같은 분권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박근혜 총리설'까지

한나라당을 진앙으로 부각된 '박근혜 총리설'도 예민한 문제다. 여기엔 몇 가지 함의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해결국면으로 급물살을 탄 친박 복당 논란의 화룡점정을 찍고 이명박-박근혜 사이의 '국정 동반자' 관계를 복원하는 상징적 조치가 된다. 나아가 한 지붕 두 가족으로 분열된 보수의 단합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본다.

박 전 대표도 싹을 완전히 자르지는 않았다. 측근들의 입을 통해 나온 얘길 종합해보면 '반신반의' 상태다. 드러난 속내는 오히려 공격적이다. 허태열 의원은 "총리가 얼마나 많은 독자적인 권한을 갖느냐, 또 대통령과 신뢰관계, 국회를 지배하는 집권 한나라당과 협조관계가 얼마나 돈독한가가 중요하다"고 했다.

한승수 총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내각 총괄 권한을 부여하고 여권 내에서의 명실상부한 위상을 부여해달라는 공세적 주문이다. 한마디로 얼마나 권력을 떼어줄 것이냐에 따라 '제안의 진정성'을 가늠, 수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정책 주도권'도 당이 접수

당정이 전날 고유가 대책으로 내놓은 초유의 '세금환급' 방안은 한나라당의 요구가 대폭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를 브리핑하며 "개인적으로 이런 제도를 처음 시행할 때는 상당히 신중을 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건 이를 반증한다.

강 장관은 9일 오전 "물가가 크게 오르는 등 새로운 환경을 감안해 금리와 환율을 운영해야 한다"며 "물가 때문에 '안정'이 우선 고려할 항목"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고환율 정책을 우선시 해 온 강 장관이 한나라당의 '물가' 우선 대책 요구 앞에 크게 물러선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홍준표 원내대표는 "이번 주 내 등록금과 통신비 인하 대책 등 고물가 종합대책이 계속 발표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를 위해 당정이 곧바로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등 한나라당발(發) '민생대책'은 앞으로도 봇물처럼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의 고민, '쇠고기 대책'은?

이같은 당정청 시스템 정비와 인적쇄신, 민생안정 대책 등은 '쇠고기 정국'과 직간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성난 민심을 다스릴만한 직접적인 처방이 될 수는 없다는 게 한나라당의 고민이다. 거리에 나선 국민들의 유일한 요구인 '쇠고기 재협상'을 외면하고서는 백약이 무효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당 내에서 '재협상 불가피론'이 제기된 지는 오래다. 장관고시의 관보 게재가 유보된 것도 한나라당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9일 의원총회에서도 재협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상당수 의원들을 통해 제기됐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내놓은 수출 자율규제 방식이 '꼼수'로 들통 났고, 이명박 대통령과 미국 부시대통령의 전화통화 이후 청와대와 정부는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입 중단을 위한 구체적 조치를 조율하기 위해 미국 측과 분주하게 접촉하고 있으나 성과를 기대하기는 난망하다.

이에 따라 정부가 주도한 모든 조치가 수포로 돌아갈 경우, 통합민주당이 요구하는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에 한나라당이 전격적으로 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홍준표 원내대표의 태도는 아직까지 요지부동.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 금지'를 명문화하는 건 "국가 간의 협정을 국내법으로 제한하자는 것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재협상 효과를 내기 위해 의회가 행사할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수단이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에 있고, 이는 장외로 나간 통합민주당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낼 수 있어 홍 대표가 마냥 무시해버리기도 아까운 카드다.

새질서 불가피, MB의 선택은?

이처럼 국정 쇄신과 쇠고기 정국 돌파의 주도권은 한나라당으로 넘어간 게 확연하지만 이 대통령이 궁극적으로 이를 인정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일하는 청와대'로 표현한 국정운영 의지와 리더십이 상당부분 훼손되는 상황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총리' 카드만 해도 '권력 분점'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이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크게 배치된다. 또한 '보수의 비주류'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 대통령이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100일 만에 보수 구주류에게 무릎을 꿇는 것 자체가 용납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악화일로에 놓인 쇠고기 파문에 청와대와 현 내각이 대처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만큼 이 대통령의 의지와 무관하게 당분간 당이 정부와 청와대를 압도해 갈 것이라는 분석에는 크게 이견이 없다.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비롯한 친이계 주류 4인방에 대한 정두언 의원의 도발이 하루 만에 당의 전폭적인 지원사격을 얻게 된 현상은 이와 무관치 않다.

다만 각기 다른 이해관계로 얽힌 세력들의 집합체인 당의 특성상 이들 사이에 새로운 권력질서를 짜는 일이 쉬운 과정은 아니다. 친이-친박 사이의 고전적 갈등은 물론이고 친이계 내부의 권력갈등도 불거진 터여서 더욱 그렇다.

또한 '대통령만 빼고 다 바꾸자'는 당의 요구와 위기관리를 잠시 당에 위탁한 개념으로 받아들일 공산이 큰 이 대통령 사이에는 당청 역관계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갈등이 지속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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