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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교수 "역사를 보라. 빨리 집에 가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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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교수 "역사를 보라. 빨리 집에 가면 안 된다"

[인터뷰] "국회를 믿어? 차라리 천일기도를 하자"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으로 촉발된 한 달이 넘도록 거리의 촛불은 좀처럼 꺼질 줄 모른다. 지난 5일 저녁부터 시작된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에는 주최측 추산 연인원 50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오는 10일 6월 항쟁 21주년을 앞두고 시민들은 '100만 명이 모여 제2의 6월 항쟁을 이뤄내자'고 다짐하고 있다.

시민들의 구호는 '쇠고기 수입 재협상'에서 점차 '이명박 탄핵', '독재 타도' 등 정권에 대한 정면 비판으로 수위가 높아졌다. 촛불만으로는 국민의 의사를 전할 수 없다며 시작된 거리 행진에도 매번 수 만명의 시민이 참여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무대응'은 결국 시민들의 발길을 고스란히 청와대로 향하게 만들었고, 2주 간 500여 명의 시민이 연행되고 300여 명의 시민이 부상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던 100일 전, 아니 2달 전 총선 때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지난 5월 31일과 1일, 청와대 인근에서 벌어진 가두 시위에서는 최대 규모인 200여 명의 시민이 연행됐다. 그 중에는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도 있었다. 학생들과 함께 촛불 집회에 참여했던 그는 경찰에 연행된 다음날 풀려났다. 한 교수가 연행 도중 가진 인터뷰를 통해 '국민 엠티(MT)'란 말이 처음 나오기도 했다.

8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 집회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학생들과 함께 계속 촛불 집회에 참석한다는 한 교수는 그간 촛불 집회를 지켜본 소감에 대해 "놀랍고 감탄스럽다"며 운을 뗐다.

- 이번과 같은 촛불 집회는 한국 사회 내에서 그동안 없었던, 처음 겪는 현상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도 이 정도 시민들이 모였지만 그때와는 또 다르다. 그때는 대통령이 우리 편이었고, 이미 이겼던 사안이었다. 이번 촛불 집회는 유쾌하고 느슨한 것 같으면서도 방향이 '한 군데'로 집중돼 있다.

또 탄핵에서는 가두 시위가 없었고, 소위 시민사회단체들이 주도하면서 시민의 자발성이 드러날 기회가 적었다. 그렇지만 이번 집회에서 기존 단체들은 학급에서 주번 정도의 역할만 하고 있지, 반장은 어림도 없다.

아마 가두 시위가 단일 대오였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몇 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단일 대오였으면 지도부가 호되게 깨지거나 결단이 났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집회는 개개인이 지도부다. 경찰도 진압을 못 한다."

- 대선, 총선 등의 결과는 줄줄이 보수 세력의 승리였다. 왜 갑자기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프레시안

"이번에 느낀 점 하나는 수구 세력은 머리가 나빠서 앞으로도 영 안 될 것 같다는 것이다. 크게 보면 민주화가 되면서 우리가 잊었던 '민주화 정기 예금'을 이번에 찾은 것 같다. 만기일을 잊고 있다가 찾은 듯한 느낌이다.

사람들이 민주화를 정말 시니컬하게 보지 않았나. '민주주의가 밥먹여주냐'며. 결국 우리가 이건희와 조중동 일가 좋은 일만 시킨 것 아니냐고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민주화의 성과물을 전부는 아니지만 찾은 것 같다. 민주화의 힘이 솟아나온 것이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예전과 비교하면 '독재 정부' 축에도 못 낀다. 그런데 그 정부가 지금 '독재 타도' 소리를 듣고 있다. 어청수 경찰청장? 사람들이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청장으로 몰아간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지금의 촛불 집회가 지극히 평화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시민들이 '진짜 민주 시민'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제 공권력에 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예전 우리 세대 때는 민주주의란 그야말로 '타는 목마름으로' 절박하게 부르는 무언가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민주주의를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체득한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건강권 문제로 비춰지지 않는다. '왜 내 몸에 관한 걸 니가 정해!'라는 데에 사람들의 분노의 지점이 있다."

- 이제껏 대중 운동을 위해 노력해왔던 여러 운동 세력, 사회 각계각층에서도 이번 사태에 놀라고 있는 모습이다.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오는 하반기에 민주화 20년, 민주 정부 10년을 재평가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민주당도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는다. 이 분위기에서 아직도 지지를 얻지 못하는 정당은 문 닫아야 하는 것 아닌가.

진보 진영도 '독수리 오형제' 의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 세대에서는 '민주화'를 얘기하면 쫀쫀하다고 여겼다. 조국통일, 노동해방 등 거대한 과제를 이루기 위해 이 한 몸을 희생하는 것, 거대 담론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을 올바른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세대가 왔다. 윗세대에서 '자기만 안다'며 욕했던 세대가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밤을 만들고 있다.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자기 이익'이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합치될 때, 그 이익 추구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민주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독수리 오형제 세대의 민주화를 보라. 민주화 인사로 대표되는 노무현, 김근태, 이해찬만 민주화가 됐지 비정규직의 이해는 그 속에서 어떻게 대변됐는가? 그 부작용으로 탄생한 이들이 '뉴라이트'다. 희생을 요구받으며 억압됐던 것이 그렇게 분출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대의 민주주의가 작동되지 않는다고 여길 때 우리는 하나씩 그 뒤에 기다린 대의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이뤄왔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직선제를 이끌어냈고, 2002년에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당선시켰고, 2004년에는 총선을 통해 개혁 진영에 권력을 줬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를 기다리는 대의 민주주의 메카니즘이 없다."

- 그러면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까?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고민을 안 하련다. 불과 두 달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했을 때 누가 이 사태를 예상했었나? 아무 생각 없다고 여겨졌던 여중생, 여고생들이 먼저 촛불을 들었고 시민들이 나섰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촛불 집회와 행진, 나는 웃기고, 놀랍고, 재미있어 죽을 지경이다. 사람들이 종로가 (경찰에) 막히면 을지로로 가고, 을지로가 막히면 명동으로 갔다가, 명동이 막히면 퇴계로로 간다. 지도부 하나 없는 대열이 이렇게 잘 이끌어 왔다.

지식인이 고민해서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다. 현장의 대중을 믿을 수밖에.

다만 좀 더 오래 살고, 경험을 공유한 한 사람의 대중으로서 말한다면, 한국 현대사는 이렇게 좋은 민주화의 기회를 그간 여러 번 놓치면서도 이제껏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4.19, 5.18, 6월 항쟁, IMF, 탄핵, 그리고 지금이 있다.

왜 우리는 그때마다 기회를 놓쳤는지 보고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 '빨리 집에 가면 안 되는구나'. 4.19 때 결국 민주당이 집권할 때 내버려뒀다가 5.16 사태를 맞았다. 1987년 직선제로 잘 되겠거니 했다가 양김이 분열하면서 결국 군사정권이 집권했다. 2004년 탄핵 반대에 이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등 개혁 세력에 표를 줬다. 대체 대중이 그때 뭘 더 어떻게 해줬어야 할까? 그때의 악몽을 대중도 잊어선 안 된다.

참여의 틀을 국회로 모아야 한다고? 그냥 우리 여기서 천일 기도라도 하자. 아니, 촛불 집회 시작할 때 구호가 뭐였나. '될 때까지 모이자' 아니었나. 사람들이 왜 집에 안 가냐고? 안 되니까 안 가는 것 아닌가.

이제 누군가가 해산하자고 하면 사람들이 오히려 '너나 가'라고 외친다. 될 때까지 해야 한다. 권력을 장악하지 못한 의미에서의 '소수'로서 그런 방법을 택해야 한다. 진 팀이 이길 때까지다. '될 때까지 모여라'는 끝까지 가야할 구호다. 여기 나온 사람들이 불씨를 쌓아나갈 수밖에 없다.

- 이명박 정부 집권 5년 내내 이런 사태가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가?

"민주주의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면 그건 그렇게 긴 기간이 아닐 것이다. 대중은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들과 얼마나 다른지 체험하고 있다. 아직도 '주사파', '친북 좌파' 운운하는 걸 보면 이 대통령은 분명 '왜 나만 미워하고 그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한마디로 '통치불능'의 상황이다. 지지율 한 자릿수로 떨어질 날 얼마 안 남았다.

이건 '배후 세력'의 동원으로 될 집회가 결코 아니라는 걸 아직도 모를까. 지난 2003년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에서도 1만 명을 넘긴 적이 없다. 5월 안에 재협상만 했어도 여기까지는 안 왔다. 사람들은 이제 '국민MT'를 거치면서 '의식화' 됐다. 여기에 책임이 있는 건 이명박 정부다.

꿈이 있었다. 지난 10월부터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면 난 항상 이렇게 답했다. 네가 나가서 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지만 네가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 확실하다고. 그런데 지금 거리에 나온 시민들이 꼭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나라도 나와야겠다 생각했다고."

- 이번 사태에서 가장 큰 성과를 꼽자면.

"아무도 대중을 못 따라가고 있다. 국민MT 첫날(5월 31일), 기가 막혔던 게 2~3만 명이 모인 자리에서 김밥과 생수가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연대가 이제껏 없었다. 이 분위기를 그대로 살릴 순 없겠지만,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무슨 일이 터졌을 때 언제든 다시 나올 수 있는 장치를 이제 우리는 갖고 있다. 대중이 광장을 차지한 기억, 이것이 제일 중요한 성과다.

이런 판국에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될 수 있을까? 시민들은 이제 쇠고기를 막은 경험이 있다. 이런 싸움을 해내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하는 경험을 하면, 투표율이 문제가 될까? 대중의 몸에 각인되는 기억이 되는 것이다. 그동안 민주화 세력들은 머리로는 많이 알지만 몸에 배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 됐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안다고 한다. 대중은 바로 그 '하나'를 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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