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서울시청 앞 광장 근처 버스 정류장 앞에 붙어 있는 시 한 편이 화제를 낳고 있다. 하루 전 시작된 72시간 연속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는 장소 근처다.
이 시를 쓴 사람은 자신을 '경기도에서 기동대 행정요원으로 근무 중인 의경'이라고 소개했다. 이 시의 필자가 실제 의경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에게 명령에 따라 폭력을 휘둘러야 하는 처지에 대한 절망감은 시 곳곳에서 진하게 묻어난다.
이날 오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시민들은 경찰에게 구타당해 피를 흘리는 한 여성의 사진과 함께 게재된 이 시를 유심히 읽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안쓰럽다"라는 말을 거듭하던 한 시민이 기자에게 "이 시(詩)를 꼭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내면의 소리와 양립할 수 없는 명령 앞에서 갈등하며 상처 입은 마음이 담긴 시와 사진을 지면에 그대로 옮겼다.
어느 의경의절규
아가-
왜 웃고 있니.
무엇이 그리 즐겁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냔 말이다.
폭도로 몰리는 것이,
머리가 깨져서 피 흘리는 것이
어디 즐거운 일이냐.
…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다.
당장 교과서와 싸우기에도 바쁜 시간에…
너는 어째서 촛불을 들고
고작… 그것 하나만을 믿고서
내 더러운 군화발 앞에 섰는가.
나는 너에게 미안하지 않다.
다만, 짐승이 되어버린 내 동료들이 밉고,
너무나도 무능력한 내 자신이 미울 뿐…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매도되는
나를 원망한다.
증오하고, 또 저주한다.
섧다.
나는 운다.
목 놓아 꺼이꺼이 운다.
비라도 쏟아진다면-
그래서 이 내 오열이 하늘 멀리
퍼지지 않는다면 좋으련만…
나는 네가 밉다.
하지 말라고 분명 한사코 말렸건만
철 없이 광화문 전 서 소리치던
네가 밉다.
너는 그저
한낱 싸구려 연예 가십이나 들여다보며
오르지 않는 성적을 한탄하며
친구들과 노래방이나 전전해야 하는데...
나는 그저
좋아하는 야구 경기를 관람하며
때로는 잘 써지지 않는 글 때문에
골치 썩으며
친구들과 소주잔이나 기울여야 하는데…
너와 나는 그저
세상이 허락한 인연이 너무나도 무뎌
서로 만나 숨소리를
나누지 않아야만 하는데...
어느새
세상에 너무나도 깊게 뿌리내린
이 심오한 공포가 싫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네 잘못이 아님을…
내 잘못이 아님을…
그들은 시위대가…
폭도가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나는 이상과 진리와 현실과 규율과 감정,
이 수많은 괴리 속에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그래, 사실 나는
너에게 미안하지 않단 그 말은 거짓이다.
나는 사랑하고 있다.
눈물 겹도록 아름다운 너희들의 불꽃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운다.
그래, 그저 운다.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하고 초라해서…
소리 내어 미친듯이 운다.
밤새워 울어 목이 쉬고
얼굴에 눈물 범벅이 되었어도
사랑하는 네가 흘렸을 눈물과 피에 비하면
티끌 만치의 가치가 없지 않겠느냐...
계속해서 울고만 있다. 나는…
왜냐하면…
네가 자꾸 웃잖아…
괜찮다면서…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면서…
네가 너무 해맑게 웃잖아…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한다-
…
타는 목마름으로 남 몰래 흐느끼며
너희가 사랑하는 '민주'를
나 역시 불러본다.
역사가 심약한 내게
어떤 깊은 원죄로 욕보여도
원망하지 않겠다.
나는 이 시대가 낳은
절름발이 사생아이므로…
민주야… 사랑한다-
민주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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