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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괴담'의 주범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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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경찰 괴담'의 주범을 찾았습니다"

[기자의 눈] 계속되는 '인터넷 의혹'의 근원은?

폭력 진압에 들끓는 여론을 달래보려는 경찰의 노력이 눈물겹다.

경찰청은 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산 쇠고기 반대 거리 시위 도중 여대생을 넘어뜨려 군홧발로 머리를 찬 서울경찰청 특수기동대 소속 김모 상경을 사법처리하고, 지휘 책임자 6명도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피해자와 가족에게는 별도의 사과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같은 조치는 어청수 경찰청장이 직접 나서서 서둘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느낀 여론의 압박이 그만큼 컸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폭력 경찰 규탄한다'고 외쳤던 시민과 누리꾼의 분노는 누그러들까?

'사망설', '너클 아저씨 사칭'…의혹은 계속되고

"거기 프레시안이죠? 사망설 취재 안 하나요?"

지난 2일 한 독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터넷에 '한 여성이 시위 진압 과정 중 경찰에 목이 졸려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사실 여부를 밝혀달라는 제보였다. 이후 같은 내용의 제보가 전화와 이메일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쏟아졌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사망설은 며칠 새 인터넷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사건이 커지자 경찰은 지난 4일 포털사이트에 관련 글을 올린 누리꾼을 검거해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구속 영장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또 경찰은 유포된 사진 속의 인물은 전의경이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의 발표 하루 뒤인 5일 오후까지 프레시안에는 사망설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제보가 그치지 않았다. 한 독자는 하루 넘게 인터넷 게시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며 진실을 꼭 밝혀야 한다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누리꾼들은 '경찰이 얼마든지 사건을 무마하려 조작할 수 있지 않냐'며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사망설 외에도 인터넷은 여전히 흉흉하다. 한 남성이 경찰 부대 안에서 코피를 흘리며 집단 구타를 당하는 장면이 촬영된 동영상은 '경찰이 너클(손가락에 끼우는 철로 만든 무기)을 끼고 시민을 폭행했다', '아직까지 행방불명 상태다'라는 소문과 함께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일명 '너클 아저씨'로 불린 이 남성은 5일 포털사이트 '다음'에 "내가 바로 장본인이고, 연행됐지만 풀려나 현재 무사하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러나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동영상의 당사자가 아닌 것 같다", "사진이 조작됐다"는 소문이 속속 퍼지고 있다. 경찰, 혹은 누군가가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당사자를 사칭한 글을 올렸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정부와 경찰이 좋아하는 단어인 '괴담'이 또 다시 나올 법 하다. 경찰에 대한 누리꾼들의 의심과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망', '실종', '사칭' 등의 단어와 함께 번지고 있다.

꼬리 자르기? 여론 무마용? 피해자는 넘쳐나는데…
▲ 시민들의 분노는 항의 시위로 이어졌다. 지난 3일 촛불문화제를 마친 수천 명의 시민들은 서울 서대문 경찰청 앞으로 행진을 하고 '경찰청장은 물러나라'고 외쳤다ⓒ뉴시스

누리꾼들의 이 같은 반응은 '군홧발' 당사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경찰이 위기를 모면하긴 힘들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한다. 실제로 이날 경찰의 발표가 있자마자 "희생양 전경 한 명 처벌로 끝인가", "명령에 따른 전의경이 무슨 잘못인가", "어청수 청장을 파면시켜야 한다"는 댓글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또 군홧발로 짓밟히거나 방패에 찍힌 피해자가 한 두 명이 아니라는 점도 이번 경찰의 조치가 여론 무마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연인원 500명 가까이 되는 참가자가 연행되는 과정에서 폭력 진압에 부상당한 피해자는 수십 명에 이른다. 이 중에서는 머리가 땅바닥에 박혀 뇌출혈을 일으킨 남성도 있으며, 방패에 찍혀 코가 함몰되고 이가 부러진 여대생도 있다.

현장에 있었던 의사, 참가자들도 잇따라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게시판에 올려 경찰의 진압 상황을 공유했다. 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동영상과 사진을 통해 현장에 없던 시민들도 경찰의 진압 과정을 생생히 목격했다.

시민들의 분노는 항의 시위로 이어졌다. 지난 3일 촛불문화제를 마친 수천 명의 시민들은 서울 서대문 경찰청 앞으로 행진을 하고 '경찰청장은 물러나라'고 외쳤다. 또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같은 날 13명의 피해자와 함께 어청수 청장 등 경찰 간부를 고소·고발했다.

농민, 노동자 죽음에도 책임 외면한 경찰…괴담은 누가 만드나

그러나 진짜 괴담은 따로 있다. 경찰은 현재 '군홧발' 전의경을 사법처리하고, 책임자를 징계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경찰이 시위 진압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한 책임자를 제대로 징계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게 바로 그 괴담이다.

지난 2005년 고 전용철·홍덕표 두 농민이 여의도에서 벌어진 집회 도중 경찰의 폭력으로 사망했다.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과를 하고, 경찰은 '책임 추궁'을 약속했지만 지금껏 수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다.
▲ 고 전용철, 홍덕표 농민 사망 사건에 대해 대통령까지 나서서 수사를 철저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지금껏 경찰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프레시안

사건 당시 최광식 경찰청 차장은 현장 지휘책임자인 이 모 기동단장에 총체적인 책임을 물어 직위해제할 방침이라고 밝혔으나 이 단장은 감봉 3개월 처분을 받은 뒤 강원경찰청 차장으로 복귀됐다. 당시 관할서였던 영등포서의 박 모 서장은 정직 1개월 후 서울청 보안1과장으로 복귀했으며, 서울청 기동단의 명 모 3기동대장은 감봉 1개월 후 경찰대 파견 교육을 받는데 그쳤다.

'경찰 괴담'은 2006년에도 계속됐다. 같은 해 7월 포항에서는 파업 농성 도중 포항건설노조 조합원 하중근 씨가 경찰의 방패에 맞아 숨졌다. 그러나 사건 발생 2년이 다 되어가도록 그의 사망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자체 조사를 벌이겠다고 나섰던 경찰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감감무소식이다.

같은 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사고의 책임자인 포항남부경찰서장 등에 대한 징계 조치를 권고했다. 그러나 경찰청장은 지난 3월 윤시영 경북청장을 대구청장으로 발령냈다.

이번 폭력 진압에 대한 경찰의 조치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어청수 청장은 2005년 부산 APEC 반대 시위와 2006년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 반대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지난 2일 "무저항 비폭력 시민이 아니라 폭력 시민이었다"며 경찰의 폭력 진압을 옹호한 어청수 청장의 발언에는 집회 참가자에 대한 그의 인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한편, 경찰은 현재 어청수 청장을 비롯해 특정 전·의경을 '폭력진압 경찰'이라면서 허위 사실을 퍼트리는 누리꾼을 색출해 민·형사 소송을 걸겠다며 격분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력 진압 책임자를 찾아내 징계를 내리지 않은 사례를 시민들은 이미 너무 많이 봐 왔다. 시민이 경찰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책임자를 시민 스스로 찾아나서는 세태는 경찰 스스로 만든 셈이다.

마지막으로, 오는 10일까지 예정돼 있는 72시간 릴레이 촛불대행진과 100만 촛불행동에서는 더 이상의 '경찰 괴담'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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