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한국의 환경인에게 오늘은 하나뿐인 지구의 되돌아보는 고마운 날이라기보다, 처해진 상황 때문에 쓰디쓴 굴욕감을 느끼는 날이다. 경제 살리기에 올인 하겠다며 환경 규제를 걸레로 만드는 이명박 정부, 권력에 충성하느라 본분을 져버린 환경부의 일탈에 절망하는 탓이다. 불과 100일, 그 동안 벌어진 일들에 차마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우선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국회 인사 청문회 때(3월 10일)부터 '한반도 운하 찬성'을 내세웠고, 취임 일성이란 게 '전문성 없는 서울대 일부 교수들이 운하 사업에 반대 하고 있다.'는 힐난이었다(3월 12일).
이어 3월 13일엔, 국가경쟁력강화회의에서 산업단지 조성 승인 기간 단축(6개월 내)과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겠다고 보고했다. 또 3월 21일엔 대통령에게 '환경 산업 육성 및 환경 규제 합리화'를 핵심으로 하는 환경부 업무보고를 했다. 환경산업을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 진입을 위한 성장 동력으로 집중·육성해 나가고, 유망 환경 기술을 개발하고, 환경 산업체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해, 신규 일자리 35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거이었다.
4월 24일엔 환경평가제도 개선 토론회를 열었다. 사전환경성검토와 환경영향평가를 통합하고 간소화하자는 게 목적이었는데, 토론회에 앞서 '환경 평가의 수요자인 사업자, 경제계, 지방자치단체, 관련 부처와' 간담회를 실시하고, 위에 거론된 이들과 기타 전문가들을 불러 토론회를 개최하는 형식이었다. 환경부의 수요자가 국민이 아니라 개발 주체들이란 게 특이하다. 행사는 "반드시 4계절을 거치도록 되어 있는 현행 환경영향평가는 합리적이지 않다.", "사전환경성검토와 환경영향평가는 중복이다"라고 생각하는 장관의 문제의식을 해소하기 위해 철저하게 기획됐다.
5월 8일엔 환경부 장관이 대한상의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환경부 기업 지원 발 벗고 나섰다"는 보도 자료를 냈다. '규제의 대명사로 불리던 환경부가 신정부 들어 기업을 섬기는 자세로 환골탈태하겠다'며, '기업환경지원센터를 세우고', '환경부와 기업 간 Hot-Line을 설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친기업적 찾아가는 환경행정 서비스 제공계획에 기업들의 시선이 집중'됐다고 소개하며, 더 나아가 6월부터는 찾아가는 환경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며, "앞으로 환경부와 기업의 아름다운 동행이 기대되는 대목이다"라고 자랑했다.
5월 14일엔 취수장 상류 7㎞까 공장입지를 허용하는 등 상수원 보호를 완화하겠다고 했다. 또 하반기부터는 '폐수를 배출하지 않아 상수원 오염 가능성이 적은 공장'도 허용하겠다고 했다. 120여 종의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현대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의 팔당 상수원 인근 건설을 둘러싸고 진행된 수 년간의 논란을 이만의장관은 이렇게 한칼에 해결했다.
5월 15일엔 환경부에 등록된 366개의 규제 중에 금년 말까지 87개를 줄이겠다고 했다. 유해 화학물질의 사용이 급증하고, 전자제품 등의 활용이 많아지고, 국토 환경이 더욱 열악해지는 상황에서, 환경부가 규제 완화의 최첨병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5월 26일엔 환경재단 주최 행사에서 "대운하를 둘러싼 혼란의 배경에는 국민들이 운하를 잘 몰라서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운하가 뭔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막연히 쓸 데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환경부 장관은 운하 사업의 주무장관은 아니지만 운하를 추진한다면 피해를 극소화하고 친환경적으로 만드는 부분은 환경부 소관"이라고 강조했다. 즈음해서 환경부가 운하 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취수원 이전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6월 3일에는 '물 산업 지원법'을 입법예고하려다 미뤘다. '물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여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이 법은 수도 산업의 통폐합, 수도산업의 민영화, 수도 가격의 현실화(인상)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최종 목표는 국민에게 깨끗하고 안전한 식수의 공급이 아니라, 세계 10대 물 기업 중에 한국 기업 2개를 끼워 넣는 것이다.
환경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보도 자료를 훑어보면 도대체 여기가 어딘가 싶다. 정부조직법 34조에는 환경부 장관의 임무를 '자연 환경 및 생활 환경의 보전과 환경오염 방지에 관한 사무를 관장'토록하고 있는데, 2008년 오늘 환경부는 '생활 환경'과 '자연 환경'에 대해서가 아니라 '기업 환경'과 '산업 환경'에 대해서만 열심이다. 명백히 위법이며, 일탈인 셈이다.
이명박 정부, 이만의 장관의 환경부는 이제 더 이상 '환경'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 환경 규제를 철폐하고, 환경 기술 진흥과 환경 산업 육성을 목표로 삼고, 운하 추진 계획을 수립하는 부서가 '환경'을 입에 담는 것은 언어도단이고, 국민 기만이다. 그 동안 수많은 수고와 노력으로 발전시켜 온 환경법제에 대한 조롱이며, 국민 상식에 대한 테러다.
이만의 장관의 활약 덕분에 팔당 상수원 인근의 땅값은 폭등하고, 환경 규제 완화에 대한 주장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환경 정책은 한치 앞도 볼 수 없게 됐으며, 환경 행정과 환경 법률의 안정성은 땅에 떨어 졌다. 실용을 앞세운 난장판에 환경 정책은 뒤죽박죽이 됐고, 각종 개발과 정책을 두고 사회 혼란은 커지고 있다.
이만의 장관의 환경부는 더 이상 존재의 이유가 없다. 운하 포기가 논의 중이고, 건설 기업들마저 뒷걸음치는 상황에서 그나마 이 장관의 일은 줄었다.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까지 혼란한 것은 '제 자리를 지켜야할 부서들마저 최고 권력을 위해 영혼을 팔아먹은 탓'이다.
이명박 정부가 국정 쇄신을 위해 여러 장관을 경질시키겠다는데, 반드시 이만의 환경 장관도 포함시키길 바란다. 만약 이 장관을 유임시킨다면, 이는 이명박 정부의 반성과 소통의 진실성을 의심케 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환경의 날을 맞아, 환경인들을 자괴감에 빠뜨리고, 환경 행정을 후퇴시킨 이만의장관이 퇴진할 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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