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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쇠고기 '수출 자율 규제'는 한미 FTA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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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美 쇠고기 '수출 자율 규제'는 한미 FTA 위반"

[송기호 칼럼] 장사꾼의 편법은 이제 그만하라

농림부 장관이 어제 오전, 미국에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 중단을 요구하겠다고 한 것은 다행스럽다. 나는 이 방침을 폄하하지 않는다. 이는 수많은 부상자들의 희생과 전국민적 직접 행동이 일궈낸 성과의 하나이다.
  
  그런데 같은 날 오후가 되자마자, 정부가 추진하려는 해결책이 자율적 수출 규제(Voluntary Restraint Agreements, 혹은 Voluntary Export Restraints)라는 말이 흘러 나왔다. 그러니까,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허용 고시는 그대로 둔 채, 미국의 수출업자들로 하여금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한국에 수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대책이라고 한다.
  
  정부가 말하는 자율적 수출 규제는 1995년에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의해서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작년 6월에 서명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명시적으로 이를 금지하고 있다.
  
  먼저 세계무역기구 긴급수입 제한조치(세이프가드) 협정은 다음과 같이 일체의 수출 자율 규제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또한 세계무역기구 회원국은 일체의 수출 자율 규제, 시장질서 유지협정, 또는 수출입에서의 기타 유사한 조치도 이를 추구하거나, 취하거나, 혹은 유지해서는 안 된다. 유사한 조치의 예로서는, 수출조절, 수출입 가격 모니터 체계, 수출입 감시, 강제적 수입 카르텔, 혹은 수입허가제 등의 보호 조치가 포함된다. 이러한 조치에는 단일 회원국에 의한 조치도 포함된다. (Furthermore, a Member shall not seek, take or maintain any voluntary export restraints, orderly marketing arrangements or any other similar measures on the export or the import side. Examples of similar measures include export moderation, export-price or import-price monitoring systems, export or import surveillance, compulsory import cartels and discretionary export or import licensing schemes, any of which afford protection. These includes actions taken by a single Member. 11.1(b)조)

  특히 미국산 쇠고기 무역에 적용되는 세계무역기구 농업 협정은 다음과 같이 더욱 직접적으로 농산물 교역에서의 수출 자율 규제를 재차 금지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 회원국은 일반관세로 전환되어야 하는 일체의 조치를 유지·호소하거나 그로 복귀해서는 안 된다. 그 조치에는 수입량 제한, 자의적 수입허가 (…) 수출 자율 규제 등이 포함된다.(Members shall not maintain, resort to, or revert to any measures of the kind which have been required to be converted into ordinary customs duty (…)These measures include quantitative import restrictions, discretionary import licensing (…) voluntary export restraints. (4.2조)

  이처럼 현재의 세계무역기구 체제는 수출 자율 규제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가 2003년에 펴낸, 국제통상법의 권위 있는 교과서인 <세계무역기구 : 법, 실무 및 정책>이 "오늘날 공식적으로 운영 중인 수출 자율 규제는 없다.(There are no VERs officially operating today, 211쪽)"라고 쓴 것도 이 때문이다.
  
  단지 중국이 2001년 말에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중국산 제품의 급격한 유입에 대한 안전 장치로서, 세계무역기구는 회원국들이 중국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수출 자율 규제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수출 자율 규제는 대한민국 국회가 비준 동의한 세계무역기구 협정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미국 정부에 수출자율규제를 구하거나(seek), 이에 호소하는 것(resort to) 자체가 세계무역기구 협정 위반이다.
  
  또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도 수출 자율 규제는 금지 대상이다. 알다시피, 미국산 쇠고기 관세 철폐는 한미 자유무역 협정 2장에 나온다. 그런데 바로 이 2장이 한국과 미국 정부의 수입 및 수출제한(import and export restrictions)에 대해 따로 규제하고 있다. (2.8조)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위 2장에서 자율적 수출규제에 대해서 이를 일반적 상품 무역 차원에서 금지하고 있다. 자율적 수출규제를 수출입 가격 통제, 수입허가제와 함께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아래와 같이, 불법 보조금 혹은 불법 덤핑임을 수출업자들이 자인하고 그 시정을 위해 취하는 자율적 수출규제만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1994년 가트상의 권리 의무에 의할 때, 어느 한 당사국이 다음의 조치들 (…) (c) 1994년 가트 제 6조에 불합치하는 수출 자율 규제 조치를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것은 금지됨을 양해한다. (The Parties understand that the GATT 1994 rights and obligations prohibit a Party from adopting or maintaining : (…) (c)voluntary export restraints inconsistent with Article VI of GATT 1994. (한미자유무역협정 .2.8(2)조)

  혹시 정부 일각에서는 자신들이 구상하는 방안은, 정부와는 관계가 없는 순수 민간 차원의 협정으로서 이는 세계무역기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말하는 자율적 수출규제와는 다른 것이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들에 따르면, 미국 도축장들끼리의 결의를 유도하고, 한국의 수입자들의 결의를 유도해서, 이 두 민간 영역끼리의 협정 체결을 다시 유도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어제 자율적 수출 규제를 부탁한 상대방은 미국의 수출업자가 아니라, 미국 정부였다. 미국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 규제는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에 자율적 수출규제를 의뢰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정부가 관여해서, 한국의 수입자들로 하여금 미국 수출자와 협정을 체결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무역기구와 한미자유무역협정 위반행위이다.
  
  만일 일각의 설명처럼, 미국의 수출업자들이 미국 정부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전적으로 스스로 담합하여 30개월 이상 소의 수출을 자율 규제하고, 다른 수출업자들의 해당 수출을 금지시킨다면, 이는 독점금지법을 위반하는 수출 카르텔(export cartel)에 해당될 것이다. 일본도 독점금지법을 의식해서, 미국에 대한 자동차 수출 자율규제에서 일본 자동차 회사들끼리의 결의나 협약을 추진하지 않았다. 대신, 일본 정부가 개개 자동차 회사에 수출량을 지정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런데 수출자와 수입자들의 결의는 도대체 언제까지 유효할까? 그들의 결의는 실효성이 없다. 고시 내용을 바꾸지 않는 한, 한국의 수입자가 한국정부의 고시대로 30개월이 넘는 쇠고기를 수입하겠다면, 한국 정부는 이를 합법적으로 막을 수 없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유통업에 투자한 미국인이 한국정부가 고시한 대로 30개월인 넘는 쇠고기를 수입하겠다면, 한국정부가 이를 막을 길이 없다. 만일 막는다면, 한국 정부는 공정한 대우 위반(한미 FTA 11.5조)으로 국제중재에 회부될 것이다.
  
  오늘의 비극은 장사꾼 식 편법에서 비롯되었다. 이 세상에서 자율 수출 규제로 때워도 좋을 만큼 가치 없는 검역은 없다. 그리고 실효성 없는 자율 수출 규제로 검역 문제를 해결하는 나라는 없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위생검역조치의 핵심적 기준을 자율 수출 규제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자세야말로 전형적으로 돈밖에 모르는 장사꾼의 편법이다.
  
  이 편법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방법이다. 선진 통상국가를 지향한다는 대한민국이 어쩌다가 이렇게 세계무역기구 출범 전에 횡행하던 낡은 회색빛 조치(grey zone)로 회귀하게 되었나?
  
  그리고 이 편법은 내일을 바라보는 원칙과 줏대 없이, 돈만 찾아 하루하루를 때워 나가는 장사꾼 수법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한다면서, 거기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한국 정부는 지금 버젓이 추진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미국에게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 중단을 요구하겠다는 정부 발표를 폄하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는 이제 원칙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국민의 광우병 염려를 원천적으로 덜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30개월령과 광우병 위험 부위 규정 고시를 바꾸겠다고 미국의 양해를 구하는 것이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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