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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 패션과 영화를 남기고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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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 패션과 영화를 남기고 떠나다

[특집] <세브린느> 등 많은 영화에서 인상적인 패션 창조

루이스 브뉘엘의 1967년작 <세브린느(원제는 Bell du jour)>에서 고급매춘부로 일하는 중산층 부인 세브린느의 이중적인 캐릭터가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부각된데에는 영화 속 의상의 힘이 크다. 영화 속에서 세브린느는 옷을 벗거나 브레이저 차림이 아닐 때에는 매우 단정하고 여성적이며 세련된 의상들을 입는다. 특히 세브린느를 연기한 카트린 드 뇌브의 흰피부와 황금색 머리카락을 돋보이게 만든 검은색 소매없는 미니 원피스는 보수적인 동시에 섹슈얼한 마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이브 생 로랑
<세브린느>를 통해 영화 속 의상의 역할을 한단계 더 올려놓은 주인공은 바로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었다. 1일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생 로랑은 패션뿐만 아니라 영화계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63년 <핑크팬더>에서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의상을 맡았던 그는 65년 <어 베리 스페셜 페이버>의 레슬리 캐론, <모멘트 투 모멘트>의 진 시버그 의상을 담당하기도 했다. 67년 <세브린느>는 영화사적, 패션사적으로 기록될 만한 작품이다. 30대에 갓 들어선 젊은 패션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패션이상을 구현해줄 '뮤즈(여신)'이자 평생의 친구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카트린 드뇌브다. 깨질듯 섬세한 미모 뒤에 도발적인 섹슈얼리티를 감춘 듯한 드뇌브는 생 로랑이 표현하고자한 여성의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이후 카트린 드뇌브는 <형사><악마의 키스> 등 수많은 영화 속에서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이브 생 로랑의 의상을 즐겨 입었다. 위베르 지방시와 오드리 헵번처럼 이브 생 로랑과 카트린 드뇌브 역시 패션디자이너와 여배우의 관계를 넘어서서 깊은 우정과 삶을 나눠왔다. 생 로랑의 패션쇼 맨 앞자리는 늘 드뇌브를 위해 비워져 있었다.
36년 당시 프랑스 식민지 알제의 오랑에서 태어난 생 로랑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옷을 만들정도로 뛰어난 패션 감각을 나타냈으며, 십대때 프랑스로 건너와 일찌감치 당대 최고의 거장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애제자이자 오른팔로 자리잡았다. 디오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의 패션제국을 이어받았던 것이 생 로랑의 나이 불과 21세때였다. 60년대 후반 디오르를 떠나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이브 생 로랑 리브 고슈' 브랜드를 선보인 그는 남성의 옷이었던 바지와 재킷, 사파리용 셔츠 등을 여성용 고급 의상으로 발전시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패션평론가들은 "코코 샤넬이 여성에게 자유를 주었다면 생 로랑은 여성에게 파워를 주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한세대를 풍미했던 생 로랑은 지난 2002년 은퇴를 선언한 뒤 조용한 말년을 보내왔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1일 발표한 애도성명에서 "오트 쿠튀르(고급수제의상)를 예술로 승화시켰던 위대한 패션디자이너"로 이브 생 로랑을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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