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달러로 계산하신다고 그랬죠?"
"그랬죠."
"그러니까 얼마라고요?"
"70달러(setenta dolores, 세뗀따 돌로레스)요."
"60달러(sesenta dolores, 세센따 돌로레스)요?"
"아뇨, 잘 들어보세요. 세센따가 아니라 세~뗀~따~요."
"세상에. 알겠습니다. 다른 택시를 구해보죠."
이럴 때일수록 최고의 연기력이 필요하다. 그 택시기사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비장한 표정으로 획 돌아선 후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당황한 택시기사는 우리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면서 다시 말을 걸었다.
"아, 이봐요, 선생님, 40달러요."
단번에 40% 가까이 할인되었다.
"일 없습니다. 그 돈 주곤 절대 시내로 안 갑니다."
"30 달러. 이 이상 안 됩니다."
우린 뒤를 돌아보았다.
"20달러에 가시죠?"
"20달러요? 절대 안됩니다. 다른 택시 알아보세요."
"그러죠 뭐. 잠깐, 25달러." "20달러." "25달러." "20달러."
"휴, 좋아요 20달러."
밤 12시, 까라까스(Caracas)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마이케띠아(Maiquetia)공항에서 택시기사와 실랑이 끝에 겨우 20달러에 맞추었다.
공항 내 환전소는 문을 닫은 지 오래였고 우리는 달러를 볼리바르 화로 바꿀 수 없어서 가지고 있던 달러 총액인 20달러로 배짱을 부려 겨우 택시를 잡은 것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깎은 것 아니냐며 좋아했고, 심지어 조금쯤 미안한 감정도 생겼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친구는 이날 횡재를 한 것이었다.
우리는 계속된 여행으로 매우 피곤한 상태라는 것을 기사 아저씨에게 설명했고, 무작정 도심으로 가서 아는 호스텔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이 시간에 빈 방 찾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도 좀 부탁드립니다."
"제가 알고 있는 곳으로 가볼까요?"
"그래주세요. 감사합니다."
시내로 접어들었다.
"창문 올리세요."
"네?" "창문 올리시라고요."
"사람들이 아무도 없네요."
"당연하죠. 이런 시간에 돌아다니려면 조심해야 합니다. 자동차를 타고 있어도 절대로 멈추면 안돼요. 문은 잠그셨죠?"
"네."
대통령궁인 '미라플로레스(Miraflores)'를 지나 중심가로 행했다. 까라까스의 밤거리는 을씨년스러웠다. 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흡사 죽음의 도시 같았다. 설마 중심가에 있는 '볼리바르 광장'같은 곳에 나가면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조금쯤은 있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운전석 밑에 저 삐져나온 거... 뭐지? 총처럼 생겼는데...' '이 아저씨 팔에 커다란 문신이 있잖아? 살인을 할 때마다 하나씩 새겼을 것 같이 생겼는데...' '그런데, 우린 뭘 믿고 이 택시기사에게 목적지 선정을 맡겼을까?'
시간은 어느덧 새벽 1시. 두 군데 호텔에서 방이 없다고 퇴짜를 맞았다. 상심한 표정으로 다시 차에 올라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제 친구가 하는 곳에 데려다 드리죠. 거긴 방이 있을 겁니다."
'진작에 그래주시지. 깍쟁이 같으니라고.'
"그런데, 일반 여행자 숙소는 아니에요."
"상관없어요."
그래서 간 곳이 러브호텔이었다. 조명은 붉었고, 복도에는 손님과 종업원이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배려한 여러 장치들이 있었다. 우린 당황했다. 하긴 새벽에 술에 취한 남녀가 아니라, 25킬로그램짜리 배낭을 멘 꾀죄죄한 두 동양인을 손님으로 맞게 된 러브호텔 종업원도 황당해 하긴 마찬가지였을 거였다.
어디에서부터 이야기를 할까? 2008년 3월 17일에 20달러의 현금을 가지고 까라까스를 방문할 두 명의 한국인들을 골탕먹이려는 목적으로, 2003년 2월 5일, 베네수엘라에 까디비(외환운영위원회, Cadivi)라는 기구가 탄생한다.
베네수엘라는 철두철미했다. 사전에 매우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었음 역시 나중에 드러난다. 경제 장관과 국립은행장, 그리고 우고 차베스(Hugo Chavez) 대통령이 이 두 한국인의 정보와 남미 일주 계획 일정을 어디에서 입수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나, 옥션이나 개인 블로그, 혹은 다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하튼 차베스 대통령은 '21세기 사회주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달러로부터의 독립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달러 통제 정책을 시행한다. 까디비는 1달러를 2150 볼리바르(Bolivar)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해외 여행, 유학, 모든 종류의 생산품 수입 등에 필요한 달러는 까디비에 신고되어야 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달러 경제를 유지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국가들은 정작 미국이 아니라 한국을 포함해 달러로 결제하는 모든 다른 국가들일지 모른다. 달러가 사실상 '세계단일화폐' 노릇을 하면서 세계 경제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가 되었다.
물론 아직도 지도자 한명만 잘 뽑으면 일국의 경제가 거짓말처럼 살아난다고 믿는 이들이 없잖아 있는 게 사실이긴 하다. 그런 지도자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도 베네수엘라처럼 세계 경제와 굿바이를 해야 할 것이지만, 석유도, 자원도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그런데 이걸 꼭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식의 말로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베네수엘라는 어찌되었든 거대한 실험을 하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은 생각 이상으로 심하다. 고정환율이 채택되고 달러 유입이 통제되는 상황에서 암시장 환율이 생겨났다.
달러를 통제하면 자국 화폐로 자국 내에서 생산되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자급자족형' 사회로 나아가야 마땅한데, 국내 생산 기반이 현저히 딸리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생필품을 '수입'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다른 모든 사치품은 그렇다하더라도 수출입 외화 통제로 인해 생필품의 수입마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참고로 작년인 07년의 인플레이션 22.5% 였다. '살인적' 이라는 수식어가 왠지 어울린다. 물론 산유국답게 석유값은 싸다. 우리 돈으로 1갤런에 150원 정도. 하지만 석유를 마실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만성적인 달러 부족으로 달러 실질 환율, 즉 암시장 환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른다. 2006 년까지는 2500~2800 볼리바르의 변동폭을 보였지만 2007 년에는 1 달러에 6000 볼리바르까지 올랐다고 한다.(우리가 까라까스를 방문할 당시 1달러는 암시장에서 약 4000 볼리바르에 거래되고 있었다. 사실상 택시기사가 횡재를 하게 된 비밀이다.)
이렇게 볼리바르 화의 실질적인 가치가 떨어짐으로써 물가의 오름폭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달러로부터의 독립이 실현되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달러를 원하고 있고, 교역 상대국이 결제 수단을 유로와 같은 제3의 화폐로 바꾸지 않는 이상, 베네수엘라 경제는 아이러니하지만 달러로 돌아간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런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목적들 중 하나로, 2008년 1월 1일 부로 화폐 개혁(리디노미네이션, redenomination)을 실행했다.
현재 통화에서 '0' 세 개를 뺀 새 화폐를 발행한 것이다. 이에 따라 볼리바르화(BS)는 "강한 볼리바르화(BsF, Bolivar Fuerte)로 이름을 바뀌었다. 즉 과거 1000BS는 현재 1BF로 바뀐 것이다.
나는 Fuerte라는 단어가 맥주 캔이나 담배 갑에 같은 곳에 붙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우리를 괴롭힌 사소한 문제는 구화폐역시 신화폐와 함께 6개월에서 1년간 함께 유통된다는 데서 비롯했다. 가뜩이나 새 화폐 단위에 적응해야 했던 우리는 미치도록 헷갈리기 시작했다.
즉 이제는 1 달러에 2150볼리바르가 아니라 2.15 볼리바르가 된 것이다. 자 이제부터 이 글에서는 신 화폐 단위를 쓰겠다.
차베스 대통령은 결국 팔을 걷어붙이고 '암시장 통화 안정 정책'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달러 양을 늘리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암시장 환율은 4 볼리바르다. 우리가 까라까스에 머무는 동안 '암시장 환율을 3 볼리바르까지 내리겠다'고 호언장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첫 날은 그야말로 '모험' 이었다. 사람 사는 문화나 사회를 경험을 통해 새로운 나라의 풍속을 체화시킨다는 멋진 말도 있지만, 일단 닥치고 통화 단위와 물가, 상품의 일반적 시세 등을 알아내야 했다.
먼저 숙박비를 계산하기 위한 환전이 필수였다. 아침에 여관을 나와 지도를 들고 거리에 있는 표지판을 확인했다. 대충 우리의 현위치가 파악되었고, 은행을 찾기 위해 볼리바르 광장(Plaza Bolivar)으로 나갔다. 남미 해방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얼굴과 쿠바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 얼굴이 온통 도배되어 있는 광장 주변을 돌며 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출금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비밀번호 외에 아이디 번호를 입력하라는 ATM기의 요구 사항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경우가 지금까진 한 번도 없었으니까.
아니, 아이디 번호라니. 은행 직원에게 물었더니 "아이디 번호 없어요?" 라고 한다.
"아이디... 번호라니요?"
"그 왜 있잖아요. 국민 식별 번호 같은..."
"아, 여권 번호요?"
그런데 내 여권 번호 따위를 ATM 기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곰곰 생각해봤더니, 통장을 개설할 때 입력했던 내 주민등록번호가 생각이 났다.
세상에 베네수엘라에 와서 내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사용하게 될 줄이야... 여하튼 출금에 성공.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1 달러에 2.15 볼리바르로는 생활 자체가 어려운 거였다. 예를 들어 여관비가 일인당 60 볼리바르였는데, 우리 돈으로 무려 3만 원 정도 된다. 둘이 6만원.
거리에서 또르띠야처럼 생긴 빵과 주스로 아침을 해결하는데, 빵 하나에 5 볼리바르, 주스 한 통에 5 볼리바르다. 둘이 합쳐서 결국 20 볼리바르. 우리 돈으로 만 원. 서울 물가는 저리가라다.
물론 베네수엘라에서 살면서 베네수엘라 화폐를 사용하는 현지인들은, 물가 상승 자체를 제외한다면, 큰 부담이 없다.
하지만 원화로 입금한 후, 달러 환율을 적용받아 베네수엘라 은행에서 출금하는 우리 같은 한국인은 은행가는 게 무서울 정도다.
이 같은 사실을 발견해낸 후, 은행 직원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우리가 달러로 현금을 인출할 방법은 없는 건가요?"
은행직원, 처량하게 쳐다본다.
"없어요."
거기에 쐐기를 박는다.
"전~혀요"
"그렇다면 유로나 캐나다 달러, 혹은 엔화로 출금하는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아... 네..."
최대한 울상을 짓고 한숨을 쉬며 은행 문을 나서려고 하는데, 보다 못한 직원이 불러 세운다.
"저기요, 암시장 이용하세요"
은행 직원의 입에서 나온 저 말. 암,시,장,이,용,하,세,요...
충격은 잠시, 우리는 어디에 가야 그 '암시장' 이라는 곳이 있는 지 물었다.
은행 직원은 웃으며 말했다.
"제가 그것까진 말해드릴 수 없죠. 그냥 거리에 나가 보세요."
은행 직원에게 황당한 답변을 들은 후 거리로 나섰다. 어디에서 암시장을 찾으란 말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우릴 지켜보고 있던 한 사내가 접근한다.
"깜비오?(Cambio, 환전)"
그렇다. 지천에 널린 게 암달러 환전상이다.
여긴 은행 앞이란 말이다, 라고 외쳐야 하나?
"1달러에 얼마죠?"
"3.8 볼리바르요."
"그렇군요. 제가 들은 건 4 볼리바르인데..."
"아, 그건 어제 이야기예요."
세상에, 하루에 5%가 왔다 갔다 한다. 영어가 유창한 이 친구는(특히 비속어 F~~K가!) 자신을 관광 가이드라고 소개했다.
"빌어먹을 이곳 베네수엘라에서 관광 가이드라는 직업을 가졌다면 쫄쫄 굶기에 딱 좋답니다. 누가 관광을 와야 말이죠. 안 그래요?
거리에선 심심치 않게 총성이 들리고, 사람들은 F~ 같고 말이죠. F~ 베네수엘라는 F~ 같은 나라예요. 특히 당신 같은 동양인들은 F~ 같은 범죄의 타겟이 되죠. 그러니 관광객이 들어오겠냐고요.
정작 F~ 가이드 하는 것 보다 이렇게 F~ 거리에서 F~ 달러 환전해 수수료 받아먹는 게 더 많이 남아요.
젠장. 저 F~ 차베스 좀 어떻게 F~ 해야 하는데, 그래도 이번 F~ 헌법안 부결은 불행 중 F~ 다행이예요."
그러더니 갑자기 혼잣말로 크게 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 F~ 얼굴을 평생 볼 뻔했어요!"
이게 차베스 대통령을 대하는 사람들의 두 가지 태도 중 하나의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한참을 이야기 하던 중, 이 친구에게 우리가 달러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더니, 금세 "바이 바이" 하고 사라져버렸다.
달러를 구할 방법이 없다. 우린 차베스가 치밀하게 파 놓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남미 여행 최대의 고비를 겪고 있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주 베네수엘라 한국 대사관에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개인적으로 달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인 한 분을 소개해 주었고, 우리는 달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차베스는 지금 칩거 중이다. 얼마 전 있었던, 대통령의 연임 제한을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새 헌법 개정안 부결의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게다가 이웃 나라인 꼴롬비아와도 사이가 좋지 않다. 차베스 반대파들이 활동하기 좋은 시기인 게다.
1999년 집권한 차베스 대통령이 내건 기치는 '21세기 사회주의 건설'과 수입 대체 산업화를 통한 '내생적 경제성장' 이었다.
물론 남미병에 잘 듣는 백신이랍시고 무분별하게 수입해다 쓴 미국산 '신자유주의' 정책이 남미는 물론 베네수엘라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강력한 믿음의 발로이기도 했다.
이 '근본 없는' 군인 출신 혁명가에게 금고 열쇠를 빼앗긴 사람들은 2002년, 두 번의 보수 쿠데타 기도의 실패와 2004년 소환 투표 실패의 악몽을 떨치고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중이다.
러브 호텔에 계속 머물 수 없어서 호텔을 옮겼다. 시내 중심가에서 벗어나, 까라까스 시의 압구정동 쯤 될 법한 알따미라(Altamira) 지구로 이동했다. 그곳이 가장 안전할 것이라는 러브 호텔 주인장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 곳에 머문다면 몸은 안전할지 몰라도 지갑은 안전하지 않았을 거였다. 고급 빌라와 아파트 주위로 높은 담장과 철조망이 쳐진 거리를 걸었지만 고급 호텔이 간혹 눈에 띌 뿐, 어디에도 우리를 위한 장소는 없었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멋쟁이 백인 아저씨에게 우리가 가진 예산 따위로는 알따미라에 머물 자격이 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확인받고 '사바나 그란데(Sabana Grande)' 지구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쇼핑몰과 대학 그리고 유흥가가 모여 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또 다른 친절한 사람을 만나 겨우 호텔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호텔 부르노'라고 하는, 전망도 좋고 꽤 근사한 곳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일대에서 가장 싼(그것도 희한할 정도로 싼) 곳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우선 당장에 달러를 환전해야 했다. 이런 고민을 호텔 주인에게 은밀히 상의했는데, 갑자기 커다란 소리로 호텔 청소부 한 분을 부른다.
부스스한 표정으로 우릴 신기하게 쳐다보는 키 작은 이 양반이 바로 암 달러 상인.
이런 상황은 이제 더 이상 황당하지 않았다. 심지어 거리에 있는 경찰들도 대 놓고 달러 장사를 한다고 하니까.
문제는 이 날 환율이 3.6볼리바르로 떨어져 있다는 데 있었다. 우리는 3.8에 해달라고 했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승강이를 하고 있는데, 이 청소부 아저씨가 갑자기 밖에 볼일이 있다며 나갔다.
10분쯤 후에 다시 나타난 아저씨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해 왔는데, 우리에게 3.4 이상으로 절대 쳐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새 환율이 떨어진 것이다. 더 이상 황당한 일은 없으리라는 우리의 예상은 무너졌다. 그래도 어쩌랴.
일상에서 이중환율의 폐해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 "차베스의 달러 독립 정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어본다면 욕을 바가지로 해 줄 것이다.
하지만 사태는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 법. 수많은 부작용과 현실로 나타나는 기형적 경제 뒤에 다른 게 숨어있을 수도 있다.
베네수엘라의 경제 독립은 과연 가능할까? 일반적으로 고정환율제는 안정적이고 변동이 없는 통화에 자국의 화폐 가치를 고정시킴으로써 국내 시장의 안전을 꾀하는데 목적이 있다.
또한 석유처럼 '불로소득'으로 이윤을 취하는 자원부국이 국내의 인플레이션을 완화시킬 목적으로 시행하기도 한다. 고정환율제를 취했던 나라나 취하고 있는 국가들이 주로 '경제 성장률 기록'을 연이어 갱신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이거나 중동 지역의 산유국들이라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차베스가 시행하는 고정환율제는 조금 다르다. 실제로 2003년 차베스가 이 조치를 취하기 전 볼리바르화의 환율은 무섭게 오르고 있었다.
베네수엘라국영석유(PDVSA)가 국유화되면서 서구 기업이 지불해야 할 로얄티를 30% 이상올리는 등 국부 유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한 차베스는 폰데스빠(Fondespa)라는 기금을 설립하고 PDVSA의 수익을 관리할 권한을 부여했다. 차베스의 복지정책은, 정부의 기획 - PDVSA의 자본 - 뽄데스바의 운용, 이라는 시스템을 큰 틀로 한다.
이 과정에서 시중에 많은 돈이 유입되자 물가가 통제의 범위를 넘어서게 된 것이다. 결국 차베스는 고정환율제를 시도함과 동시에 본격적인 외환통제(특히 달러)에 들어갔다. 이 기회에 달러를 서서히 밀어내겠다는 심산이다.
베네수엘라의 대미 교역량(수출 : 전체의 40%, 수입 : 전체의 30%)을 따져볼 때, 위험한 도박이긴 했지만, 얼마 전 '석유대금 결제를 유로로 바꿀 계획이다'고 발언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만큼 차베스의 의지는 굳건한 듯 하다.
그러나 외환통제의 부작용은 보다시피 심각한 수준이다.
이를테면 베네수엘라엔 우유가 비싸다.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전부 수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에 젖소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베네수엘라의 축산, 낙농업은 규모 면에서 다른 남미 국가에 뒤지긴 해도 꽤 탄탄한 기반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수출을 한다.
다만, '존재하지 않는다'에 가까운 형편없는 유통망과 도로, 철로 등과 같은 사회 기반 시설의 부족, 그리고 생필품 통제 정책으로 인해, 기업이 도시로 납품하는 것 보다 수출하는 편이 훨씬 이익이 된다는 판단을 내리는데 구조적인 문제의 핵심이 있다고 한다.
차베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에 꽤 큰 로컬 우유 회사를 인수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식량 자급율이 떨어지고 국내 제조업이 전무한 베네수엘라의 현실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차베스 체제를 맹목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차베스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비판하는 문제다.
하지만 차베스 대통령이 기간 산업을 키우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석유로 번 돈을 교육, 의료, 복지나, 심지어 해외 원조 등에 무차별적으로 낭비하고 있다는 전자의 비판은 부당하다.
대개 모두가 동의하는 지점은 국가 기간 산업 부족의 유산이 차베스 정권 이전부터 뿌리 깊게 존재해왔다는 데 있다.
하지만 현재 베네수엘라의 시멘트, 알루미늄, 섬유 등 제조업 분야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더 빠른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2006년엔 제조업이 전체 GDP의 17%를 차지할 정도였다. 인프라 부족과 지나친 통제 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현재의 모습만을 보고 차베스의 경제정책을 비난하는 것은 섣부른 일일 수도 있다.
또한 근본적으로 혁명의 속성을 '인성 혁명'에 맞추어야 한다고 보고 있는 차베스의 여러 교육 정책들이 '차베스의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다는 점도 사실 부당한 비판이다.
60 퍼센트의 아이들이 교육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많은 민중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찾아가는 것은 무리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
교육 내용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왈가왈부할 순 없지만, 적어도 "위대한 대통령 차베스 동무"라는 식이나, "민족 중흥을 위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가르치는 정도는 최소한 아닌 것 같다.
차베스 반대파들이 주장하는 피교육자의 '교육을 선택할 자유' 따위보다는 일단 '교육의 기회'가 베네수엘라에선 훨씬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할 시기다.
미국물 먹은 관리들과 비즈니스맨들이 설치는 산업판에서 베네수엘라적인 기술력과 경영철학을 담보할 인재를 키워내는 기초를 마련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차베스의 교육 정책을 반대하는 이들은, 세련된 유학파 경제학자와 관료, 경영자들뿐이다. 이들은 반 차베스 세력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불안한 이야기와 희망찬 이야기를 교차시키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가장 근본적인 불만, 특히 여행자 입장에서, 왜 까라까스가 최악의 도시일 수밖에 없는지 성토해 볼 시간이다.
이를테면 이렇다. 까라까스 시의 밤은 일찍 시작된다. 오후 6시 정도가 되면 웬만한 가게와 식당은 셔터를 내린다.
전화방과 피시방도 문을 닫아버리는데, 그 날 우린 급하게 전화할 일이 생겨 숙소에서 꽤 멀리 떨어진 쇼핑몰에 다녀와야 했다. 오는 길에 젊은 경찰 한명이 우리를 잡았다.
"여권 보여주세요."
"네? 여권이요. 왜요? 저흰 잘못한 게 없는데요? 그냥 길을 걷고 있었단 말입니다."
"왜냐고요? 저는 경찰이기 때문이죠."
"네?"
자신이 경찰이기 때문에 여권을 보여줘야 한다니, 그런 법은 세상 어디에서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 사람이 경찰이든 말든 우린 합법적으로 인도를 걷고 있었을 뿐이었다. 여권을 보여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화를 내자 우리를 임시 방범 부스로 데려가서 앉혀버렸다.
직업을 물었고, 우리는 기자라고 답했다. 증명할 수 있냐기에 프레스 증을 보여주었는데, 이 경찰, 갑자기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 나중에 우리와 친해진 호텔 직원에게 이 경험을 들려주었더니, 백퍼센트 돈을 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라고 말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는 칭찬도 들었다. '뭐 이런...'
그런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정치인', '관료', 그리고 '기자'란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생활 속에 꽃핀 부패.
우리는 까라까스에 온 최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쿠바 대사관을 찾았다. 소박하고 깔끔하게 생긴 대사관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농담 삼아 '적성국 대사관에 들어왔다'고 말하며 키득거렸는데, 그게 담당 직원의 심기를 조금 불편하게 한 것 같았다.
결국 이 분은 우리에게 상당히 불친절했다. 물론 다른 모든 직원들이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쿠바에 들어가기 위해선 쿠바 정부에서 발행하는 관광비자를 받아야 한다. 마치 매표소에서 표를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비자가 나오는 데는 채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일인당 60 볼리바르.
대사관 밖으로 나오니 할아버지 한 분이 대사관 마당에 의자에 앉아 세상에서 제일 평화로운 표정으로 커다란 시가를 물고 우릴 향해 웃어보였다. '영화'나 '티비' 등지에서 많이 본 '전형적인 쿠바의 풍경'의, 그런 '포스'를 느꼈다.
가까스로 '기대 진작'를 통해 '추억'이 압도하고 있는 머릿속의 온갖 잡생각들, 이를테면 '나 한국으로 돌아갈래' 따위의 생각들을 밀어내며 꾸바 대사관을 나왔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눈앞에 헐리우드 스펙터클 서스펜스 느와르 영화가 펼쳐질 것이라는 사실을 그 땐 미처 몰랐었다.
경찰차 한 대가 서 있었고, 경찰들은 농담을 즐기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무전을 받은 한 경찰관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갔던 경찰 한 명이 바지 지퍼를 올리며 전속력으로 달려와 뒷좌석으로 점프했다.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고, 어디선가 경찰들이 총을 뽑아들고 튀어나왔다. 뒤이어 시속 100킬로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속도로 경찰차 대여섯 대가 지나갔다. 불과 1분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우린 잠시 그 자리에서 기자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할지 말지에 대해 작은 논쟁을 해야 했다.
그 날은 대사관 직원에게 대사관 근처의 한 은행에서 강도 사건이 발생해 3명이 사살당했다는 사실을 들었던 날이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가 어쩌고, 정치가 어쩌고 해도 '범죄'일 것이다. 범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21세기 사회주의'와 같은 구호는 공허할 뿐이다.
물론 범죄를 만든 것은 가난이지만.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더라도 총기 소유만은 금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명백히 위험한 물건을 자연스럽게 사고팔도록 놔두는 것일까?
하나 더, 쿠바에 가기위해 공항을 찾았는데, 우릴 기다리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짜릿한 검색 절차였다. 우린 똥색 군복을 입은 커다란 덩치의 군인이 우리 몸을 마음껏 농락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자, 개인적으로 충고 한 마디하고 넘어가겠다. 당신이 베네수엘라로 배낭여행을 가고 싶다면 진지하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진심이다. 이 모든 불편에도 불구하고 난 가야해, 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다.
아직 베네수엘라는 실험 중이다. 사람들은 실험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운다. 베네수엘라 역사에 한번도 존재하지 않은 어떤 체제를 익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평가도 지금은 부당하며, 또 불완전하다. 후에 역사가가 차베스를 세계 최고의 반미 엔터테이너로 기록할지, 새로운 사회주의 모델의 주창자로 기록할 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참, 마지막으로 잊을 뻔 한 이야기, 우리가 묶었던 '호텔 부르노'가 왜 그렇게 '터무니없이' 쌌을까? 까라까스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커다란 배낭을 메고 호텔을 나서는데, 호텔 앞 중국 음식점에서 간혹 마주쳤던 이웃 호텔 직원을 만났다. 손에 큼지막한 '다윗의 별' 반지를 끼고 있었다.
-여, 오늘 까라까스를 떠나시나 봐요?
-네. 하하, 안녕히 계세요. 까라까스는 이제 굿~바입니다. 하하하. 속이 다 후련하네요.
-어디로 가시나요? 살또 앙헬?(Salto Angel, 세계 최고(最高)의 폭포, 높이가 무려 950미터에 달함) 아니면 마르가리따 섬?(Isla Margarita, 카리브해의 휴양 섬)
-아뇨, 쿠바로 갑니다.
-오 쿠바, 매우 좋은 곳이죠. 그런데, '호텔 부르노'에 묵으셨나 봐요?
-네.
-이런, 왜 그런 곳엘 묵었어요?
-아니... 왜요?
-삼 주일 전에 살인 사건이 났어요. 게이 혐오증이 있는 사람이 호텔에 들어와 게이 배에다 대고 복도에서 총으로 붐, 붐!!! 하하하. 새벽이었죠.
-.... @$%&@&*
-공항 가시는 방법은... 비싸도 그냥 택시 타는 게 제일 안전해요. 그럼 쿠바 여행 잘 하시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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