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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구경 길이 살생의 길이었네"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보고] 홍성태 교수

야생동물 '로드킬'을 다룬 다큐멘터리 <어느 날 그 길에서>가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변변한 광고 하나 없이 입소문만으로 사람을 극장으로 이끈 이 영화는, 관객의 요청의 최근 연장 상영을 이끌어냈다. 이 영화를 만든 황윤 감독의 또 다른 다큐멘터리 <작별>도 극장에 같이 걸린다.

<프레시안>은 생명의 가치가 헐값이 된 시대에, 생명의 가치를 되묻는 이 영화를 응원하는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가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보고 글을 보내왔다. 그는 "<어느 날 그 길에서>가 전하는 끔찍한 현실을 개선하려면, 토건국가 개혁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편집자>

☞첫 번째 글 :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죽어간다"
☞두 번째 글 : "그들이 본 세상은 얼마나 추악한지요"

☞세 번째 글 :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네 번째 글 :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다섯 번째 글 : "아! 도로장(道路葬)"

꽃구경 길이 살생의 길이었네.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보면서 현대 문명의 참혹성을, 토건국가 한국의 잔인성을 다시금 깨닫는다. 벚꽃이 만발해서 감탄하며 지나가는 강가의 아름다운 도로가 수많은 동물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끔찍한 살생의 길인 것이다.

미국의 생물학자였던 레이첼 카슨은 1962년에 DDT라는 살충제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침묵의 봄>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오늘날 환경호르몬 물질로도 널리 알려진 DDT는 당시 최고의 살충제로서 현대 문명의 위력을 한껏 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카슨은 살충제는 사실 '살생제'로서 자연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위협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케네디 대통령도 미 의회연설에서 카슨의 책을 언급하며 환경 정책의 수립을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침묵의 봄>은 현대 환경운동의 형성을 촉진했다.

오늘날 도로는 DDT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사실은 DDT보다 더 위험하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DDT는 산과 들을 오염시키고 먹이사슬을 통해 모든 생명체를 오염시킨다. 대부분의 도로는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되는 데, 아스팔트도 시멘트도 대단히 유해한 오염물질이다. 그런데 아스팔트나 시멘트를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엄청난 문제들이 발생한다. 태안 기름오염사고나 영월, 동해 지역의 시멘트 공해는 그 단적인 예이다. 더욱이 DDT는 그냥 산과 들에 뿌려지는 것이지만 도로는 산과 들을 마구 파괴하고 건설된다.

도로의 위험이 가장 명확하게 나타나는 것은 바로 '로드 킬'(road kill), 즉 '도로 살생'이다. 수많은 생명들이 도로에서 무차별적으로 참혹하게 살상당하고 있다. 2005년에 그 실태의 일부가 실증적으로 조사되었다. 88고속도로, 섬진강변 도로 등 지리산 주변의 120km 도로에서 30개월에 걸쳐 조사한 결과 거의 6000건에 이르는 '도로 살생'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영화의 주인공인 조사팀이 전국 고속도로 3000km를 2일 동안 완주하며 조사한 결과 무려 1000여 건의 로드킬 흔적이 발견되었다. '도로 살생'은 특정 구간에서 심하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도로의 모든 구간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도로 살생'은 전면적 지속적 살상행위인 것이다.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이 획기적 조사를 기록한 귀중한 '기록영화'다. 이 기록영화는 끔찍한 '도로 살생'이 얼마나 무심하게 발생하고 있는가를 전해주고 있다. 자연의 파괴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이 기록영화는 잘 보여준다. '어느 날 그 길에서'가 아니라 자동차가 질주하는 '모든 길에서 언제나' 참혹한 살상행위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 참혹한 살상 행위는 자연의 파괴를 너무나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파괴적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가 얼마나 끔찍한 괴물이 되었는가를 깨닫게 한다.

어떤 시민은 이 기록영화를 알리는 글에 댓글을 달기를, 너무 참혹해서 도저히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토건국가와 위험사회의 현실이 자연을 파괴하고 우리를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바꾸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으며, 그렇다면 '언제나 모든 길에서' 참혹한 살상행위가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어느 날 그 길에서>가 보여주는 우리의 비참한 현실을 머리와 가슴에 담아야 한다.

영화는 언제나 감독과 배우가 의도하는 것 이상의 것이 된다. 모든 영화는 그 자체로 언제나 시간을 담아두는 '시간의 통조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영화에서 감독과 배우가 의도하는 것 이상의 것을 읽을 수 있다. 나는 모든 영화를 이런 관점에서 본다. <어느 날 그 길에서>에서 나는 '도로 살생'을 처음으로 실증한 연구원들을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어떤 분들인지 마음속으로 감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안내판을 보면서 반생태적 도로와 수로뿐만 아니라 반문화적 안내판도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이 기록영화의 후속작은 아마도 '한국도로공사'에 관한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2005년에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2005년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도로 총연장은 2004년 말 기준 10만278㎞로 1년 동안 무려 3026㎞나 늘었다. 지구를 두 바퀴 반이나 돌고도 남는 길이이다. 가장 무서운 길인 고속도로는 2006년에 3000㎞를 돌파했는데, 모두 25개 노선에 3106.3㎞이었다. 그런데 한국도로공사는 전국 어디서나 30분 안에 고속도로에 접근하도록 6000㎞ 이상의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한국도로공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 맹렬히 온갖 도로를 건설하고 있다.

<어느 날 그 길에서>가 잘 전하고 있듯이, 우리는 이미 끔찍한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그야말로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대운하'라는 이름으로 전대미문의 토건사업을 벌이겠다고 한다. 광우병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 소의 전면 수입을 허용해서 나라를 극심한 불안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정부이니 '한반도 대운하'도 강행하고 말 것 같다. 그러나 '한반도 대운하'는 '한반도 대파괴'일 뿐이다. 동물들은 이제 강마저 자유롭게 다닐 수 없게 될 것이다. 수많은 동물들이 운하에서 죽을 뿐만 아니라 운하 때문에 아예 멸종되고 말 것이다. 필경 <언젠가 그 운하에서>가 제작되어야 할 것이다.
▲국내 최초의 야생 동물 이동 통로 '구룡령 야생 동물 이동 통로'. 휴게소 바로 옆에 위치해 야생 동물 이동 통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홍성태

토건국가는 불필요한 대규모 토건사업으로 재정의 파탄과 국토의 파괴가 구조적으로 자행되는 기형국가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최악의 토건국가로 손꼽힌다. 거대한 개발 사업을 전담하는 '개발공사'들이 토건국가 한국을 주도하고 있다. 도로공사, 주택공사, 토지공사, 수자원공사, 농촌공사, 한국전력 등 6대 개발공사들이 그 대표적 예이다. 1969년 2월에 설립된 도로공사는 법정 자본금 25조 원, 납입 자본금 20조1362억 원(2007년 9월 30일 현재)의 초거대기업이다. 2005년 전체 재계 순위에서는 6위를 차지해서 2위인 한전에 이어 공기업으로는 2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도로공사는 전국 곳곳에서 불필요한 도로를 대단히 파괴적인 방식으로 건설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여기서 나아가 경영평가 조사를 조작한 사실에서 드러났듯이 청렴도에서도 꼴찌를 기록한 공기업이다. 행복을 이어주는 사람들'인가, '불행을 퍼트리는 사람들'인가? 2007년 10월에 '김진균기념사업회' 주최로 '토건국가를 넘어서 생태복지국가로'라는 제목의 연속토론회가 열렸고, 그 성과를 이어받아 지난 1월에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에서는 '개발공사'의 전면적 개혁을 요청하는 정부개혁안을 발표했다. 이런 실천에 대한 관심이 더욱 널리 퍼지고 깊어져야 한다.

<어느 날 그 길에서>가 생생히 전하고 있는 참혹하고 절박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토건국가 문제의 개혁에 깊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추상적인 '공생'을 논하거나 막연히 좋은 얘기를 하는 것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도로공사 등의 거대한 개발주의 주체들을 하루빨리 전면 개혁해야 한다. 도로공사를 비롯한 개발공사들이 '공익'을 내세워서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오래된 미래'는 갑자기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소중하다.
<어느 날 그 길에서>, <작별> 개봉관 현황

"이 영화평이 조금이라도 누리꾼 분들의 눈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정말 한 분이라도 더 많이 이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이, 인간만이 살지 않는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관객 'redglass2U'

서울 :

인디스페이스 (명동 중앙시네마. 4/20부터 화, 목, 일요일 상영) http://cafe.naver.com/indiespace
하이퍼텍 나다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4/28일부터 연장상영 시작) http://cafe.naver.com/inada

인천 :

영화공간 주안 (5/18일부터 상영) http://cafe.naver.com/cinespacejuan

공동체 상영 신청 : http://www.OneDayontheRoad.com | oneday2008@naver.com

(극장 상영기간 동안은 되도록이면 극장에서 관람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극장에서는 좋은 화질과 음질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고, 단체관람 혜택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단, 극장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는 공동체 상영을 통해 영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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