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교등급제 금지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공교육 현장에 본격적인 '경쟁' 바람을 몰고 오려 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16일 전국 초·중·고교의 학력 정보를 등급별로 나눠공개하는 방안을 담은 교육관련기관 정보공개 특례법 시행령 개정안을 6월중 입법예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학력 정보는 매년 10월 중 치르는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시험 결과에 따른 것이다. 교과부는 이제까지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만을 대상으로 치렀던 이 시험을 전국 모든 학생으로 확대해 실시하고, 이 결과를 2009년부터 단계적으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교과부의 시행령안에 따르면 2009년에는 학교별로 과목별 '기초학생'과 '미달학생' 비율이 발표되며 2010년에는 이에 더해 학생들의 '학력 향상도'가 함께 공개된다. 또 2011년부터는 여기에 성적을 '우수', '보통', '기초', '미달'의 4등급으로 세분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정보는 각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지며, 광역시도나 시군구별 평균 학력수준도 공개된다.
또 개정안에는 2009학년도 대입 일정이 마무리되면 일반계 고교 출신, 특목고 출신, 전문계 고교 출신 비율을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교과부는 "이달 중 정보공개 특례법이 시행됨에 따라 구체적인 성적 공개 방안을 실무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다"며 "공개 범위나 대상은 조만간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정보공개법은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해 지난해 4월 국회를 통과했고, 오는 5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는 법이다. 그러나 공개 범위를 제한한 시행령으로 인해 이 의원 측의 반발이 계속돼 왔으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1월 교육부에 '학업성취도와 학업성적을 매년 공개토록 하는 교육정보공개법 시행령 입법예고안을 수정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학업성취도 시험은 이제껏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5과목으로 해당 학년의 3%~5% 학생만 선발해 치렀으며 초·중학교 성적은 지역교육청 단위로, 고교 성적은 시·도교육청 단위로 공개하도록 돼 있었다.
"입시 경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당장 교육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는 이날 성명을 발표하고 "전국 학교가 성적으로 서열화되면, 학생들의 인권침해 뿐 만 아니라 학교는 입시 전장화로 전락될 것"이라며 "학교별로 성적 공개까지 하게 되면 학교는 성적 향상을 위한 교육활동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밝혔다.
참교육학부모회는 "이명박 정부는 한달 전에 거짓된 학교 자율화 방안을 통해 이 땅의 우리 아이들을 살인적 학력경쟁으로 내몰더니, 이제는 전국의 모든 학교 성적을 공개함으로써 모든 아이들을 선택의 여지없는 극심한 입시경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며 "교육정책의 변화는 실로 급격하여 학교 현장의 혼란뿐 아니라 학부모들의 혼란도 극에 달해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또 이런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교과부는 교사, 학부모, 시민과 어떤 협의도 거치지 않았으며 진지한 논의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시 분노한다"며 "이런 모습은 교육주체들과 국민의 참여를 배제하는 폭거일 따름"이라고 밝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역시 성명에서 "이명박 정부는 자율과 경쟁을 교육 정책의 기조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미 드러난 것처럼 자율은 입시경쟁 교육을 위한 자율에 불과하다"며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는 아이들의 절실한 호소가 촛불 문화제에 넘쳐 나고 있는 상황에서 학교 간에 성적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는 교육정보 공개가 이루어지게 되면 학교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개탄했다.
전교조는 "진정으로 이명박 정부가 교육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교육정보 공개를 추진하려 한다면, 우선적으로 '교육 여건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며 "교육정보공개법이 이명박 정부의 코드에 맞추어 학교 서열화를 위한 수단으로 뒤바뀌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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