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캐나다 등 9개국을 대상으로 올초부터 진행된 쌀재협상이 2차협상을 마무리 짓고 3차협상에 돌입했다. 2차협상까지 상대국에 대한 탐색전이었다면, 연말 타결을 목표로 진행중인 3차협상은 이른바 '주고받는 막판 줄다리기'가 될 전망이다.
이처럼 협상이 중대국면에 접어든 시점에 WTO범국민연대가 25일 오후 협상 핵심 실무자와 관련 정당관계자들을 초청 '2004 쌀협상의 진로'란 주제로 농협중앙회 서울지역본부 2층 대회의실에서 토론회를 개최했다.
***쌀 재협상단, "관세화 10년 유예가 기본"**
쌀 재협상은 지난 5월6일 미국과의 협상을 필두로 3개월간 진행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과 한국 협상단의 전략이 일절 공개되지 않아 '밀실협상'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쌀 재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이재길 외교부 DDA협상 대사와 윤장배 농림부 국제농업국장이 이날 토론회에 참석, 대략적인 협상단의 전략과 협상 쟁점에 대해 설명해 다소 쌀 재협상에 대한 궁금증이 해갈됐다.
이재길 대사는 먼저 협상단의 최대 기조는 '실리추구 및 쌀농가 피해 최소화'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번 쌀 재협상의 기본 구도에 대해 "관세화 10년 유예를 기본으로 하면서 협상 진행상황에 따라 '관세화 또는 관세화 유예'라는 선택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대사는 이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관세화와 관세화 유예 모두에 유연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며 "국내적으로 지나치게 한 방향(관세화 유예)으로 몰아가는 것은 이로울 게 없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 요컨대 우리 협상단은 관세화 유예 연장을 기본적 입장으로 하면서 만약 협상 상대국이 관세화 유예 연장의 대가로 무리한 요구를 해올 경우 관세화도 고려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쌀 재협상이 여러 가지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협상에 매우 어려움이 따른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대사가 말하는 몇 가지의 불확실성이란 ▲ 세부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DDA 농업협상 ▲국제 쌀 시장 수급상황의 불확실성 ▲국내 쌀 시장 수급의 불확실성 등을 의미한다.
***협상상대국들, "수입 물량 늘리고 민간판매 허용하라"**
윤장배 농림부 국제농업국장은 현재 쌀 재협상 과정에서 관세화 유예를 관철하기 위한 '조건'들에 대해 설명했다.
윤 국장에 따르면, 협상 대상국들은 관세화 유예의 대가로 '무리한 요구'를 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 예로 관세화 유예 연장 기간에 대해 대부분의 국가들이 우리가 제시한 10년은 너무 길다는 입장을 보이며, 연장 기간이 늘어날수록 의무적 최소시장접근물량(MMA) 물량, 우리가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의 양을 크게 요구하고 있다. UR협상 결과 10년간의 관세화 유예 조치를 받는 대신 10년동안 국내소비량(1986~88년 기준)의 4%까지 MMA 물량을 수입했으나, 이 비율을 대폭 늘려달라는 것이다.
협상상대국들은 또 MMA 물량의 국내시장판매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매년 들어오는 상당량(10년간 약1백만t)의 MMA 물량을 가공용에만 쓰이도록 하고, 나머지 물량은 창고에 쌓아두고 일절 시중에 풀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협상상대국들은 일본의 경우 수입량의 15%를 시중에 풀어 소비자 밥상에 수입쌀이 올라가게 하고 있는 점 등을 예로 들며, 수입물량의 일부를 민간업자들이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
요컨대 협상상대국들의 요구는 한국의 관세화 유예 대가로 수입물량 확대와 민간판매 허용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윤 국장은 이같은 협상과정을 소개하며 "관세화 유예 연장에 대한 대가가 매우 비쌀 경우 관세화 유예만을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해 이재길 대사의 입장에 동조했다.
***한나라당-민노당 "협상단 사력을 다해 관세화 유예 관철해야"**
이재길 대사와 윤장배 국장의 설명에 대해 정당 관계자들은 "협상 실무진으로서의 고충은 이해하지만 쌀 관세화 유예 관철을 위해 다시 한 번 고삐를 죄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순은 한나라당 제4정조위 부위원장은 "한국 협상단에게서 사력을 다해 쌀 개방을 막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질타한 뒤 "쌀과 농업은 화폐가치로 온전히 환산할 수 없는 숨은 가치들이 많은 만큼 협상단은 농업에 대한 철학부터 다시 한 번 철저히 다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농업과 쌀은 자연환경과의 관련성을 고려하면 단순히 농민 몇 명의 운명만이 달린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 혹은 나라 전체의 명운과도 관련이 깊다"고 덧붙였다.
장경호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은 "협상단의 자세를 보면 총구를 거꾸로 하고 있는것은 아닌가라는 의심이 든다"며 "쌀 재협상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만큼 단결된 국민 여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도 협상단은 '협상 중'이란 이유로 어떠한 협상 내용도 철저히 비밀에 붙여 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협상단은 국민들에게 관세화와 관세화 유예 중 둘 중 하나 선택하라고 설득하는 듯 하다"며 "어느 것 하나 농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안을 두고 강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김충실교수, "협상단 강화해야"**
한편 쌀 재협상과 DDA 농업협상에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민간전문가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충실 경북대 교수는 협상 능력 배가를 위해 협상단을 확대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기존의 협상 대표들을 중심으로 한 '협상실무단'을 협상창구로 활용하면서 이를 자문-지원하는 별도의 '협상지원단'을 구성해야 한다"며 "자문단에는 장관급 정부대표와 농민대표, 학계, 언론, 국회대표 등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해 명실상부한 쌀재협상 '드림팀' 구성을 촉구했다.
김 교수의 제안에 대해 정성표 열린우리당 농림해양수석전문위원은 "쌀 재협상의 결과에 따라 우리 농정의 운명이 결정되는 만큼 국가적 대응이 어느때 보다 절실하다"며 "빠른 시일내에 '협상지원단' 구성을 건의하겠다"고 수용의사를 밝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