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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재협상,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 자동관세화론, 도하협상과 쌀재협상 놓고 격론

쌀재협상이 한창 진행중이다. 지난 1월20일 우리 정부는 WTO사무국에 쌀 관세화 유예기간 연장을 위한 협상의사를 통보했고, 이에 따라 미국·중국·캐나다 등 9개국과 순차적으로 양자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1차협상을 마무리짓고 중국(6.18), 미국(6.13), 태국(7.9)과 2차 협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지난 95년 UR협상에 따른 농업협정에서 일본·필리핀 등과 함께 쌀 품목에 대해 한시적인 관세화 유예 조치를 인정 받았다. 쌀의 시장가격이 농산물 수출국에 비해 3배 이상 비싼 식량 수입국인 우리 현실을 국제사회가 일정 수용했던 결과다.

하지만 당시 농업협정은 한시적 관세화 유예기간을 10년으로 한정짓고 이 조치가 만료되는 2004년 재유예 여부 혹은 관세화 여부를 관련 당사국들이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10년 전이나 10년이 지난 현재나 쌀에 관해 별로 나아진 조건이 없는 우리로서는 다시한 번 10년 전의 절체절명의 줄타기를 해야하는 시점이다. 일단 농민들은 쌀 관세화가 기정사실이 될 경우 '더 이상 벼농사 짓고는 살 수 없다'는 입장이다. 농민의 운명이, 한국 농업의 기로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쌀 재협상 테이블에 올려진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한화갑 의원(민주당), 강기갑의원(민주노동당)이 중심이 되어 '농어업 회생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결성하고, 첫 번째 행사로 "쌀 재협상, 이대로 좋은가?"란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쌀 재협상과 관련한 최초 국회차원의 본격토론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으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외교통상부와 쌀재협상에 비판적인 시민사회진영의 입장차만 확인하는 한계에 머물렀다. 토론회는 16일 오후 2시부터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4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도하협상과 쌀 재협상의 관련성>**

이날 토론의 첫 번째 쟁점은 지난 8월 1일 WTO 일반이사회의 결정과 쌀 재협상과의 상관성을 어떻게 볼것인가란 문제였다.

제네바에서 열린 WTO 일반이사회는 1일 <농업분야의 세부원칙 마련을 위한 기본골격>(이하 <농업기본골격>을 포함한 '일반이사회 결정문'을 채택했다. 이 결정문에는 "도하 협상(DDA)'의 타결 시한을 2004년 12월 31일로 정했던 도하각료선언(2001.11) 45항의 협상일정을 연장하여 계속 협의하기로 하고 6차 각료회의를 2005년 12월 홍콩에서 개최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만약 현재 진행하고 있는 쌀재협상이 WTO 일반이사회의 결정문과 연관지어 생각을 한다면, 우리의 협상 만료시점은 2004년 말이 아닌 2005년 말로 1년 연기된다.

***송기호 변호사, "WTO일반이사회 결정은 법적구속력 있다"**

이날 토론회의 주발제자인 송기호 변호사는 이 입장에 서 있다. WTO 전문가인 송 변호사는 "WTO 일반이사회의 결정문은 법률적 구속력이 있다"며 "95년 농업협정에 의해 부여된 개발도상국의 특례 지위는 <농업기본골격>에 따라 2004년 12월 31일 이후로 연장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송 변호사는 "<농업 기본골격>도 재확인하고 있는 일괄타결 원칙에 의해 쌀 재협상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덧붙였다. 즉 2005년 12월 지나서 타결될 도하 협상과 관계 없이, 한국 쌀 재협상만이 미리 별도로 타결되어야 할 그 어떠한 법리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재길 외교통상부 DDA협상대사, "연내 마무리 지어야"**

송 변호사의 이러한 주장은 실제 협상을 담당하고 있는 이재길 외교통상부 DDA협상 대사에 의해 반박됐다.

이 대사는 일단 UR 농업협정과 DDA협상은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에 서있다.

이 대사는 먼저 "2001년 11월의 도하각료 선언문이 여러협상들을 2004년 12월31일까지 일괄 타결할 것을 규정한 것과 95년 농업협상에서 한국 등 개도국의 쌀에 한해 한시적 관세유예 만료시점이 2004년 12월 31일로 정한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 대사는 "도하각료선언문과 농업협상을 연계시켜 사고하는 것은 옳지 않은 접근"이라며 쌀 재협상 관련 "농업협상에서 2004년 말까지 관세화 유예를 정하고 있기 때문에 관세화 유예여부나 관세화로의 이동 여부를 결정짓기 위한 모든 논의도 이 시점에 완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사의 주장에 따르면, 결국 이번 1일 WTO 일반 이사회의 결정은 단지 도하협상에만 영향을 줄 뿐 쌀 재협상을 비롯 농업 협정 결정사항에는 어떠한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된다.

송 변호사와 이 대사의 이러한 '해석'의 차이는 일차적으로 쌀 재협상에 대한 입장차에 기인한 것이지만, 우선 농업협정과 도하협상 과정과 절차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입장과 주장만 존재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자동관세화론>, "연말까지 미타결시 자동적으로 관세화 조치를 수용해야 한다"**

두 번째 주된 논점은 소위 '자동관세화론'에 대한 논박이었다.

'자동관세화론'이란 2004년 12월 31일까지 쌀 재협상이 타결되지 못할 경우, 2005년부터 자동적으로 관세화 조치가 적용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2001년 외교통상부에서 주되게 주장됐고, 시민사회일각에서 '자동관세화론'은 농업협정안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따른 것이라며 반박해 왔다.

***이재길 대사, "자동관세화론은 잘못된 표현, 재협상 미타결시 2005년부터 관세화 의무가 발생한다는 의미"**

일단 이날 토론회에서는 쌀 재협상 타결 실패시 2005년 1월1일부터 자동적으로 관세화 조치가 이뤄진다는 과거의 주장에서 외교통상부가 한 발 물러섰다. 이 대사는 이와 관련 "자동관세화론은 표현에 있어 문제점이 있어 보이고, 보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2005년 1월1일부터 한국정부가 관세화를 해야하는 의무가 발생한다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즉 관세화 유예를 협상 대상국으로부터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할 경우, 농업 협정에 따라 2005년부터 쌀에 관한 관세화가 적용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관세율을 설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즉각적인 관세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송 변호사, "당사국의 협상결과에 따라 관세화 혹은 관세화 유예가 결정"**

송 변호사는 이 대사의 주장에 대해 "자동관세화론과 별반 다르지 않은 해석"이라고 잘라 말했다.

송 변호사는 "2004년 안에 협상을 타결하도록 규정한 농업협정 부속서 5.8항은 2004년이 지나면, 협상이 마치 자동 중단되고, 그 어떠한 협상도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담겨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농업협정 부속서 5.8항에는 '...shall be completed..the time-frame of the 10th year...'라고 표현되고 있는데, 이 중 'shall be completed' 해석이 관건이다. 이 대사는 이를 '종결된다'로 송 변호사는 '완료되어야 한다'로 해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옥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이 대사의 설명에 따르면 특례조치(쌀에 대한 관세화 유예)의 계속 여부는 '무의지적 시간'이 결정할 수 있게 되어 협상을 하는 도중이라도 2004년이 경과하는 순간 한국은 법적으로 관세화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오류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shall be completed'를 자동관세화론의 관점에서 해석을 하게 되면, 관세화를 기대하는 협상대상국의 경우 굳이 쌀 재협상을 성실하게 할 필요가 없게 된다.

송 변호사는 "협상이 결렬될 경우 현재 WTO 법은 이를 규정할 법률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윤석원 중앙대교수(산업경제학)도 "자동관세화론은 바른 해석이 아니라는 것이 통상법 전문가들과 통상관련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이고, WTO 내부에서도 인정하고 있다"며 "국익에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자동관세화론'을 주장한 정부 관료나 학자, 연구자들은 스스로 책임을 지고, 국제협상이나 쌀 정책에 대해 논하지 않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농, "국민합의가 우선, 현재 진행중인 쌀 재협상 전면 중단해야"**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박웅두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이번 쌀 재협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의 합의를 전제로 하지 않은 점"이라며 "정부는 쌀 재협상을 전면 중단하고 먼저 국민투표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국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는 당초 선대책, 후협상을 약속했으나, 지금은 밀실협상만 진행되고 있다"며 "농민 생활안정과, 쌀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내놓기 전에는 협상을 중단하고, 현재 진행중인 협상도 최대한 투명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도 역시 시간적 제약에 의해 심도있는 논의까지 나아가지 못한 아쉬운 점이 많았다. 특히 이번 쌀 재협상의 최대 쟁점 중 하나가 관세화 유예 전략과, 관세화 전략 중 어떤 것이 국익에 부합하는 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지 못한 점은 이후 숙제로 남을 전망이다.

***한화갑의원, "12명 동의 받기도 힘들다"**

한편 토론회에 앞서 열린 "농어업 회생을 위한 국회의원모임" 창립대회에서 이 모임 회장인 한화갑의원의 한 마디는 우리 국회의원들의 농어업에 대한 인식 수준을 가늠케했다.

한 의원은 "농어업을 위한 모임을 만들려고 한다고 하자, 주위 의원들이 '농촌문제 들고 나와서 잘 풀린 사람없다'며 하지 말라고 조언하더라"면서 "지난 한-칠레 FTA 협상때 반대를 주도한 의원이 70여명 가량 되는데, 모두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해, 대다수 국회의원들이 농어업이나 먹거리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상황을 꼬집었다.

한 의원은 "의원모임이 정식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12명의 의원의 동의서가 필요한데, 이마저도 동의서 받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현재 '농어업 회생을 위한 국회의원모임'은 13명이 등록회원이고, 30여명이 일반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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