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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어리면 입 다물라'는 나라가 선진국인가?"

[기고]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막지 말라"

역시 대한민국은 역동적인 나라다. 취임 2개월을 갓 넘긴 현직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며 불과 한 달 남짓의 기간 동안에 130만 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온라인 청원 서명으로 의사 표시를 하는 나라가 지구상 어디에 있었던가?

무기력한 기성세대와 대학생들을 제치고 중고등학생과 주부들이 앞장서서 촛불을 들고 일어선 나라는 또 어디서 찾아볼 수 있으랴.

이 정도면 대한민국은 21세기 인터넷 시대에 새로운 의미의 온라인 민주주의의를 창조하고 있는 나라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다양한 온라인 공간들에서 제안되고 다듬어진 의견들이 오프라인에서의 행동으로 발전되어가는 모습은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또 하나의 인터넷 문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21세기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식민지 시대의 재갈이 물려졌다"

그러나, 그처럼 21세기 지식정보 시대의 새로운 문화, 새로운 민주주의를 앞장서서 꽃 피우고 있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어두운 20세기 식민지 시대의 재갈이 물려지고 있다.

자유와 자율을 중시하는 정권이라면서 '학교 자율화'라는 미명의 교육정책을 발표했던 정부가 채 2주도 지나지 않아 중고생들의 입을 막고 발을 묶기 위해 학교를 통제하고 교사를 동원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첨단에 있는 인터넷 문화의 시대를 앞장서서 열어가면서 21세기의 주역으로 자라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식민지 시대나 독재정권에서 사용되었던 침묵과 굴종의 굴레가 씌워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부 어른들의 독단과 독선 앞에서, 청소년들의 표현의 자유와 기본적인 인권이 짓밟히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아이들이, 단지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의 생명에 위해가 될 문제에 대한 의사표시와 행동을 제약당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땅의 교사들은 불명예스럽게도, 70년대 초 유신정권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정권의 시녀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교육과학부와 교육청이 내려준 지침에 따라 청소년들을 통제하고, 관제 만화책을 활용해서 미국소의 안전성을 홍보하면서 학생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을 강요받고 있다.

국제적인 보편적 기준 - 아동권리협약, 핀란드의 경우

1989년 11월 20일에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아동권리협약은 "자신의 견해를 형성할 능력이 있는 아동에 대하여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견해를 자유스럽게 표시할 권리를 보장하며, 아동의 견해에 대하여는 아동의 연령과 성숙 정도에 따라 정당한 비중이 부여되어야 한다"(12조)고 규정한 일종의 국제 법규이다. 우리나라는 1990년 11월 20일에 이 협약을 비준하였고, 국제법도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한 헌법 제6조 1항에 따라 아동권리협약은 우리나라의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법률인 셈이다.

이와 같은 국제적인 보편적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의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자기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미국산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의 의견을 자유스럽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급식을 통해서 또는 라면이나 조미료나 패스트푸드 등을 통해서 자신도 모르게 광우병에 걸려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어떤 의사표시도 못하게 하는 나라는 이미 정상적인 민주 국가가 아니다. 청소년들에게 자유로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이른바 '선진화'를 외치는 것은 기만이다.

세계 경제포럼(WEF)나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등에 의해 높은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OECD의 국제 학업성취도 비교연구(PISA)에서 한국과 함께 세계 1~2위를 겨루는 핀란드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생각과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당연한 헌법적 책무로 되어 있다. 핀란드 헌법 제6조는 "어린이는 동등하게 그리고 개인으로서 대우받아야 하며, 자신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그들의 발달 단계에 상응하는 정도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허용되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제적 보편적인 기준인 아동권리협약의 내용이 그대로 헌법 안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핀란드에서는 또, 2003~2007년까지 5년간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하는 프로젝트로 '청소년 참여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사회참여를 통해 참다운 민주주의를 배우고 핀란드 사회를 이끌 능동적인 인재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국가 프로젝트였다.

이와 같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헌법으로 보장하고, 정치인과 교육자 등 모든 성인들이 그들의 견해나 주장에 관심과 배려로 지지해 주는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핀란드 청소년들은 핀란드를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 있는 나라로 발전시키게 될 동량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통해 민주시민으로 성장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중고생들의 자발적인 의사표현 행위가 어떤 세력의 조종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듯 폄하하는가 하면, 마치 무슨 위법행위나 되는 것처럼 불참을 종용하고, 불이익을 주겠다고 압박하며, 가정통신문을 보내면서까지 참여를 저지하려 하고 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비준도 거치지 않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관련 협정을 지키겠다는 정부 여당의 독재적인 발상으로 인해서, 그렇지 않아도 위태로운 학생과 교사들 사이의 기본적인 신뢰가 무너지고, 교사들의 교육적 권위가 크게 훼손될 위기에 있다.

물론, 정부나 학교 당국의 압력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설득당하거나 승복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생각과 행동이 지극히 정당하다고 믿고 있다. 더구나, 적지 않은 부모들은 중고생은 물론 초등학생 자녀들까지 함께 동반해 나와 함께 촛불문화제에 참여하면서, 자녀들이 수입 개방의 문제점이나 광우병 쇠고기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바람직한 식습관을 갖도록 하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촛불문화제 참여를 불온시하며 의사표현의 기회를 봉쇄하려 하는 교육당국의 조치들은 실효성도 없고 학교와 교사들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교육당국은, 청소년들의 의견과 주장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그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어른스러운'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 인터넷만 찾으면 너무도 쉽게 확인될 수 있는 사실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면서까지 청소년들의 관심이나 의문, 불안감을 내리누르려 하거나, 애꿎은 교사들을 동원하여 학생들의 휴대폰의 문자메시지를 뒤지도록 하는 등의 치졸한 대응은 중단해야 한다. 오히려,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칠 문제에 무관심하지 않고 일어서 발언하려는 청소년들을 대견스럽게 이해해 주면서 좀 더 교육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나 교육청 또는 교육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할 기회를 학교 안팎에서 적극적으로 마련해주는 것이다. 찬성이든 반대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쇠고기 수입 개방에 대한 특정한 입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정부나 교사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쇠고기를 포함한 먹을거리 문제 전반에 대해 바른 시각을 가지고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는 계기를 갖도록 교육적인 마당을 펼쳐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한 쇠고기'를 넘어서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문화'로

그런 마당은 우선,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미국산 쇠고기나 광우병의 위험, 좋은 식습관과 먹을거리 문제 등에 관한 조사와 탐구활동, 자유로운 토론 수업을 통해서 펼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에서 인터뷰나 기고 등을 통해서 청소년들의 의견을 좀 더 공식적이고 직접적으로 담아내 줌으로써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들이 먹게 될 학교급식에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가 사용되지 않도록 학교마다 학생회가 나서서 교사-학부모와 함께 급식 재료 모니터링을 하도록 지원해주는 등 자신들의 먹을거리를 스스로 가려 먹도록 격려해주는 것도 좋다.

사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미국산 광우병 위험 쇠고기의 문제를 뛰어 넘어 좀 더 본질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먹을거리 교육'이나 '건강 교육'을 위한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즉, 광우병으로 표상되는 무한정한 탐욕의 문제점이나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과도한 육식 문화에 대해 반성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줄 수도 있고, 공장 식 가축 사육 시스템이 갖는 생태적ㆍ윤리적인 문제점이나 패스트 푸드 등 가공된 음식문화의 위험성 등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좀 더 생태적이고 대안적인 먹을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기회로 활용될 수도 있다.

이제라도,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은, 때 묻지 않은 어린이 청소년들의 눈망울 앞에 진정으로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교육과학부 장관이나 시도 교육감 등은 첨단의 인터넷 기술과 정보통신 문화로 소통하고 있는 한국 청소년들에게 21세기 건강한 정보 문화를 꽃피울 수 있도록 더욱 격려하고 지원해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모든 청소년들이 학교와 교실이든, 온라인 공간이든, 오프라인 문화제든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고 조리 있게 드러내고, 조사하고 탐구하고 토론하면서 21세기의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어느 나라도 먹지 않을 광우병 위험 소를 수입하는 쓰레기 처리장이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의 재기발랄한 창의성과 기(氣)를 살려주는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으로 거듭나야 할 시점이다. 정부가 참으로 국민의 편에 서겠다는 진정성과, 문제가 있으면 재협상 하겠다는 각오로 나선다면 이런 '어른스러운 조치'들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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