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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치는 아마존강 위에 떠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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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굽이치는 아마존강 위에 떠 있는 삶"

[손문상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ㆍ<18>] 아마존

리마에서 아쉬운 작별을 뒤로 하고 우리는 뿌깔빠(Pucallpa)로 향했다. 에르네스또가 체 게바라로 성장한 지점은 아마존 어디쯤이었고, 뿌깔빠는 아마존이 시작하는 우까얄리(Ucayali)강의 상류에 위치한 도시였다. 우리는 뿌깔빠로 가기 위해 안데스를 넘어야 했는데, 이곳은 구스만이 후지모리에 의해 체포됨으로써 과거 명성(?)을 상당부분 잃은 마오주의자 농민 혁명 단체인 센데로 루미노소(Sendero Luminoso, 빛나는 길 이라는 의미)가 아직까지 출몰한다는 지역이기도 했다.

우스갯소리로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이 당국에서 배포한 정보지보다 더 유용하게 사용했다고 하는 여행 가이드북인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에도 큼지막하게 '경고'가 붙어 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그 경고문의 마지막 문장, "리마에서 뿌깔빠로 가려면 항공편을 선택할 것" 하지만 이 모든 우려에도 우리는 용기를 내어 꿋꿋이 육로를 택했다.(여행 경비를 아껴보겠다는 생각이었다고 오해(?)해도 상관없다.)
▲ 뿌깔빠 항구. 이 곳에서 이키또스까지 가는 정기선이 출항한다. 우카얄리 강의 유량에 따라 항구의 위치는 바뀌게 된다. 그것이 이 항구가 허술해 보이는 이유다. ⓒ손문상

뿌깔빠 가는 길은 지금까지 다녀본 육로와는 차원이 달랐다. 우리가 타고 있는 이 기계장치가 바퀴 네 개 달린 45인승의, 세상 사람들이 흔히 '버스'라 불리는 물건이 아니라 가끔 배가 아닌가 하고 착각할 뻔 했으니까. 뿌깔빠로 가는 승차권이 아니라 승선권을 예약한 게 아닐까? 뿌깔빠라는 곳이 사실 육로로 갈 수 있는 육지의 연장선상에 존재하는 도시가 아닐 수도 있을 거라는 정신병자같은 착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순간 깨어났을 땐, 내가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뻔 했다. 내 몸이 안락한 좌석을 버리고 공중에 얼마간 떠 있었으니까. 최소한 30센티미터 깊이의 지름 1미터짜리 구멍 위를 지나며 바퀴가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지 못해 일어난 상황인 것 같았다.

리마에서 뿌깔빠까지 가는 거리는 지도상에서 눈대중으로 봤을 때 매우 짧아 보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해발 4500미터 이상의 안데스를 넘어야 하며, 포장도로보다 많은 비포장 도로를 지나야 했기 때문에 18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여정이다. 게다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 지역 밤길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긴장을 해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긴장은 때로 현실로 나타났다. 전신주가 들어서지 않아 가로등이 없고, 대신 작은 발전기를 동력 삼아 길을 비추는 목적으로 낮게 박혀 있는 쓸쓸한 조명이 간혹 '발견' 되는 길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어두운 안데스 길을 구우불 구우불 올라가던 버스가 갑자기 멈추어 섰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 하고 있는데, 총을 든 군인 둘이 버스에 올라타는 게 아닌가?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들의 등 뒤에는 시 경비(Ciudad Seguridad)라고 써 있었다. 이들이 도둑인지 시 소속 군인인지, 민병대인지 누가 알겠느냐만은 버스 승무원은 잠자코 이들의 탑승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은 버스 안을 한 번 슥 둘러봤다. 더 놀라운 사실은 버스가 이들을 태우고 출발해버린 것이다. 총구를 겨누고 '다 내놔' 하면 끝장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들 중 한 명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서울 시내에서는 예전에 가끔 이런 일들이 있었다.

"승객 여러분들, 85년도에 처참했던 사시미 호텔 살인 사건을 기억하실랑가 모르것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이제 맘 좀 잡고 살라고 하니 세상이 저를 가만 두지 않습디다. 어쩌고 저쩌고. 저를 불쌍히 여기고 사회 재활 비용 좀 마련해 주시길 바랍니다. 어쩌고 저쩌고."

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대략 이런 식이었다. "이 길은 매우 위험한 길이고, 우리는 당신들을 보호해 주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돈을 좀 달라." 말을 마치자 옆에 있던 다른 군인은 모자를 벗고 뒷좌석부터 훑으며 반 강제 수금에 들어갔다. 중세 시대에도 분명히 존재했을 것처럼 보이는 낡은 산탄총을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메고 있는 이들이 누구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지만, 대 놓고 군모를 들이대는 데에는 제공받을 서비스의 질과 지불하는 금액의 비례 관계를 고려할 수 없었다.

우리는 마침 주머니에 있던 5솔(우리 돈 약 1400원)짜리 동전을 넣어 주었고, 수금하는 녀석의 얼굴 위로 기쁨의 표정이 스치듯 지나갔다. 결국 이 친구들은 약 한 시간 동안 버스 통로에 죽치고 앉아 있다가 어느 지점에선가 내렸다. 똑같은 일이 한 번 더 일어났는데, 그 때엔 이미 동전이 거의 떨어졌던지라, 주머니에 남아 있던 50센띠모(약 140원)를 넣어줬는데, 황당한 표정으로 우리 몰골을 쳐다보더니 씁쓸하게 지나갔다. 우린 이들이 받은 돈에 비례해 경비의 강도를 조금 낮춘다 해도 별로 상관없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마존은 우기를 한창 통과하고 있는 중이었다. 태양이 비추는 동안 우까얄리강을 흐르고 있는 물을 한껏 빨아들인 구름은 밤이나, 아침나절, 간혹은 오후에 비를 뿌린다. 전 날 오후 1시 차를 탔던 우리가 뿌깔빠에 도착한 것은 오전 7시 경. 도시는 잠에서 덜 깨어나 있었고, 버스를 타고 밤새 배멀미 기운에 시달려야 했던 우리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날, 우리는 계속 이동해야만 했다.

▲ 미끄러지듯 파란 물을 타고 떠난다. 물 위에 생긴 무늬는 모두 길이 된다. 헨리 4호를 타고 우까얄리 강을 따라 아마존으로 출발. ⓒ손문상

뿌깔빠에서 배를 타고 우까얄리 강을 통과해 이키또스(Iquitos)로 갈 계획이었던 우리는 몇 군데 여행사를 찾았다. 하지만 어떤 여행사도 그런 배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승객용 배가 있지만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관광선은 아니라고 했다. 게다가 승객용 배는 오늘 아침에 이미 떠나버렸다는 사실. 그러나 전화위복으로 오후 4시에 출발하는 배가 있다고 했다. 화물과 승객을 같이 나르는 배인데, 개인용 객실을 쓸 순 없지만, 오늘 꼭 출발해야 한다면 그 편이 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 다음은 뿌깔빠에서 이키또스까지 가는 3박 4일 아마존 여행을 위한 준비물이다.

해먹 두 개(하나당 20솔)
밥그릇 두 개(하나당 3솔)
숟가락 두 개(하나당 1솔)
4일 동안 버틸 식수로 생수 2리터 들이 3통(하나당 2.5솔)
그 외, 담배, 술, 군것질 거리 등 기호식품

담배와 술은 배 안에서 살 수 있지만, 두 배 이상의 가격 폭등을 감안하여 미리 넉넉히 사야 한다. 승선비는 배 안에서 먹게 될 10끼를 포함해 100솔(약 31000원) 정도다. 메뉴는 매일 똑같은데, 아침엔 달짝지근한 코코아 죽, 점심엔 흰 쌀밥에 감자와 닭고기가 들어간 수프, 저녁엔 닭고기와 삶은 바나나를 곁들인 (분명히 낮에 남은 밥으로 했을) 볶음밥이다. 사람에 따라 입맛에 맞지 않는 향료 덕에 식사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대충 먹을 만하다. 배 어디에도 물탱크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봤을 때, 밥을 짓고 국을 끓이며, 음식을 삶아내는 물은 아마존 강물로 추정된다. 물론 화장실 물과 세면대 물 역시 똑같은 성분의 누런 강물이다. 민물 돌고래의 배설물과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음식 찌꺼기들이 흐르고 있는 그 강물을 사람들은 마시기도 한다. 하지만 물갈이를 하는 외국인이 강물을 마시는 일은 절대 금물.

우리가 탄 배는 '헨리 4호'라는 이름이 붙은 배였다. 헨리 시리즈는 8호까지 있는데, 4호는 승객을 나를 수 있지만, 중간 크기에 불과하다. 우리는 헨리 6호를 목격할 수 있었는데, 2층으로 된 헨리 4호와 달리 3층으로 되어 있고, 배 크기도 훨씬 컸다. 트럭을 두 대 실은 헨리 4호였지만, 6호는 적어도 다섯 대까지는 너끈히 실을 수 있다고 한다.
▲ 배 위에서 찍은 별들의 항로에는 우리가 탄 배가 물결 무늬에 따라 출령이는 모양이 같이 새겨졌다. '헨리 4호' 위에서. ⓒ손문상

우리는 3시 쯤, 일찍 배에 올라타 2층의 공터와 같은 곳에 적당한 위치를 잡고 여유롭게 해먹을 걸었다. 4시쯤 되자 승객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급기야 우리가 친 해먹 위에 또 해먹을 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해먹은 공중에 촘촘히 '막'을 형성했다. 사람들은 모두 기어서 다녔다.

하지만 4시 반 쯤 되자 그마저도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우리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태우는 '악덕 선주'를 욕하면서 해먹을 걷고 아예 갑판 위로 올라가버렸다. 그리고 짐이 가득 들어찬 창고 앞에 삐져나온, 비를 막아줄 약간의 지붕 아래 해먹을 쳤다. 좁지만 안락하고 조용했다. 그러나 이곳을 발견한 다른 승객들이 해먹을 들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최초의 발견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의 불문율에 따라 자리를 비켜주지 않고, 여유를 부리며 딴청을 피웠다. 하지만 승객들은 막무가내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급기야 선원들이 이 사태를 통제하기 위해 올라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힘없는 승객들이 눈물을 머금고 내려갔다.
▲ 해질녘의 우까얄리 강. ⓒ손문상

하지만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끝까지 해먹을 부여잡고 딴청을 부리고 있는 이 신기한 이방인을 발견한 선원이 우리 앞에 와서 손짓 발짓을 하더니(물론 전혀 못 알아듣는 척 했다.) 이내 포기하고 내려가 버린 것이다. 선장에게 보고되었지만, 선장은 단 한마디로 일축했다. "거 외국인들이니 그냥 놔 둬". 일종의 특혜였던 셈이다. 특혜를 받은 사람은 또 있었는데, 배에 탄 고참 선원의 친구 가족이었다. (역시 '혈연'과 '지연'의 힘은 대단하다.)

그리하여 이 가족 5명과 우리 둘은 최종 승자가 되어 선상 위에 남을 수 있었다.(하긴 일곱 명으로도 선상 위에서 확보할 수 있는 지붕의 면적은 부족했다.) 내려간 승객들은 선실 통로에 방수천 따위를 뒤집어쓰고 자리를 잡았다. 배가 출발하기 전까지 그 모든 것들은 자연스럽게 배치되었다. 이제 배에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 아마존 상류는 현재 우기를 통과하고 있다. 매일 비가 내렸다가, 또 거짓말처럼 맑게 갠다. ⓒ손문상

이날 새벽,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더니 금세 줄기가 굵어졌다. 우리는 안락하진 않지만 비를 피할 수 있을 아래 선실의 추억을 상기하며 모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제 3박 4일의 지난한 여정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라틴아메리카는 배 위에 뜬 삶과 같다. 그것은 '발견'으로 이름지어지는 '삶의 부채' 같은 것을 안고 이방인과 불완전하게 결합해 살아가는 불안한 삶이다. 그들에게 '정착지' 따윈 없으며, 언제나 뒤를 따라가거나 위를 부유한다.
▲ 크고 작은 마을에 멈출때마다 사람들은 내리거나 타고, 또 물건을 팔거나 사는 진지한 행위에 몰두한다. ⓒ손문상

▲ ⓒ손문상

▲ 북적이는 사람들과 지나치게 많은 살림살이 덕에 미처 내리지 못한 가족이 짐을 싣고 이미 떠나버린 헨리 4호에서 분리된다. ⓒ손문상

혹자는 라틴아메리카가 유럽인들에게 디저트와 같은 곳이라거나, 유럽인들의 재충전을 위한 휴양지 같은 곳일 뿐이라고도 한다. 하나 덧붙이자면 유럽(물론 미국과 함께)인들의 훌륭한 월급 봉투 같은 것이기도 하다. 커피, 담배, 설탕, 심지어 디저트를 위한 마약을 제공하거나, 경이로운 자연 경관과 독특한 풍속으로 관광객들을 유혹하거나, 혹은 석유, 구리, 주석, 그리고 은과 같은 이물질이 쏟아져 나오는 광구를 지갑 벌리듯 마음껏 벌려준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근본을 서구의 그것과 기이하게 결합시키고, 나아가 모델로 삼기도 한다.
▲ 자연은 잠깐 동안의 쇼를 보여준 후 이내 어둠으로 아마존을 덮어버린다.
ⓒ손문상

하지만 부당하든 그렇지 않든 그 모든 평가가 의미 없는 것은 그 곳에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부유하는 삶이며 발견의 부채를 부당하게 안아야만 하는 삶이지만 이들은 살아가고 있다. 며칠 밤, 며칠 낮을 배를 타고, 또 내리듯 삶을 타고 내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땅에 살면서도 이방인이 되는 떠도는 정착민.
▲ 샐러드를 만들어 독점으로 판매하던 친구. 배 안 풍경. ⓒ손문상

우리가 '엔살라다(ensalada, 샐러드) 아저씨'라고 부른 이 사람의 삶이 그렇다. 그는 푸칼파와 이키토스를 오가는 배를 타고 며칠씩 강물에 몸을 맡기며 샐러드를 만들어 판다. 배 안에서 제공되는 음식은 대개 간단한 것이어서, 추가로 야채 섭취를 갈망하는 승객들을 위해 마련된 일종의 '외판업'을 '분양'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엔살라다 아저씨는 선원이 아니다. 단지 수익을 나누는 목적으로 배 안에서 독점으로 장사한다.

첫날 이 친구가 밥 배식을 위해 식당 앞에 줄을 서 있는 내가 신기했는지 나에게 샐러드를 사라고 강요했다. 내가 사양하는 표정을 짓자 "치노들(동양인, chino)은 샐러드도 안 먹나?"라며 연극배우처럼 과장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기분이 나빠져서 "응, 치노들은 샐러드 따위 안 먹어"라고 응수했고, 엔살라다 아저씨는 어깨를 으쓱 해 보이더니 "엔살라다, 엔살라다, 1솔 50센타보"를 외치며 가버렸다. 신이 나 큭큭대는 것은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꼬맹이들뿐이었다.

여하튼 이 친구는 우리 곁을 맴돌며 은근히 우릴 놀리는 것을 즐기는 모양새였는데,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나와 이야기를 하다가 생애 최초의 발견을 했다는 듯, 갑자기 배 안에 탄 흑인 혼혈의 인디오를 가리키며 "저 친구 보여?"라고 물었다.

"응, 보이는데?" "내 친구 둥가둥가야" "둥가둥가?" "응, 둥가둥가" 나는 "둥가둥가"가 정말 그 친구 이름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내 추측에 확신을 보탰다.

"그 옆에 있는 여자애 보여?" "응" "쟤도 둥가둥가야. 둥가둥가 여자들이 화끈하기로 소문이 났지" 그리고선 날 보고 비죽비죽 웃더니, 가리킨 여자의 이름을 불러 눈인사를 나누었다. 브라질과 가까운 이 곳 페루의 아마존 지역에는 흑인계 원주민이 살고 있는데, '둥가둥가'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 없고 다만 막연히 '아프리카'를 떠올릴 때 사용하는 이 친구의 의성어였다.
▲ 아마존에서 배는 삶이다. ⓒ손문상

아마존을 따라가는 배 안에서 여인들은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아이들은 패거리를 조직하며, 남자들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죽였다. 삶을 이어가기 위해 여행하는 상인들이나, 고향을 방문하는 젊은이들이나, 이주를 위해 배를 탄 가족들은 모두 여행객이다.

배에 함께 동승한 아이스크림 트럭 두 대 중 한 대의 운전수인 펠릭스(Felix)는 아야쿠초(Ayacucho)에서 밤무대 가수로 활동한 바 있다고 쑥스러운 소개를 마친 후 기타를 가져와 손문상 화백과 음악 배틀을 하기도 했다.

잉카 토착어인 '케추아어' 노래를 많이 알고 있다는 그에게 케추아어로 고맙습니다가 뭐냐고 물었지만, 그는 얼굴을 붉히며 모른다고 말했다. 의미는 모르지만 잉까 전통 언어로 된 노래니 '외워서' 부를 수는 있다는 말이다.
▲ 8년 동안의 군생활을 접고 선원 일을 한 지 5년 되었다는 항해사 에르네스또(Ernesto). 이 배에는 피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도 있었고, 에르네스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조종실 풍경. ⓒ손문상

또 다른 트럭 운전수인 피델(Fidel)은 우리에게 아마존 지역 전통 담배라는 두툼한 '마포초' 담배를 권하기도 했다. 도로망이 전혀 없는 아마존 지역은 트럭마저도 배를 타고 가야 했고, 이들은 이 뱃길이 몇 번째인 지 셀 수 없다고 말했다.
▲ 우리를 실은 배는 셀 수 없이 많은 마을에 정박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삶의 끈을 이어준다. ⓒ손문상

▲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마존 오지 마을은 없다. 이들은 벌거벗지도 않았고, 수렵을 하지도 않는다. 띠띠까까 호수의 우로스 섬 주민들이 아직까지 갈대를 엮어 전통 삶을 이어가는 이유와도 같이, 티비의 아마존 오지 마을도 그렇게 삶을 이어가는 것뿐이다. 사람들은 많은 투어 비용을 지불하고 아마존 '오지' 마을에서 며칠 씩 묵는다. 그 뿐이다. ⓒ손문상

▲ 정박하는 배는 생활의 끈이기도 하지만 구경거리이기도 하다. ⓒ손문상

▲ 오늘도 삶을 싣는다. ⓒ손문상

▲ ⓒ손문상

▲ 관상용, 또는 애완용으로 거북이나 앵무새를 팔기도 한다. ⓒ손문상

▲ 생선, 옥수수, 바나나, 코코넛, 각종 열대 과일들을 팔기위해 마을의 상인들이 경쟁적으로 배에 올라탄다. ⓒ손문상

▲ 이 앵무새는 피델(Pidel) 이라는 이름의, 아이스크림 트럭 운전사에게 팔렸다.
ⓒ손문상

▲ 삶은 바나나, 생선구이, 그리고 동전. ⓒ손문상

▲ 또 한 명의 앵무새 상인. ⓒ손문상

▲ 우리에게 마포초(아마존 전통의 두툼한 담배)를 나눠주었던 아이스크림 트럭 운전수 피델. 앵무새 따위를 사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우리의 예상을 빗나가게 했다. ⓒ손문상

한 번은 새벽에 총소리를 알람 삼아 깨어난 적이 있었다. 밤에 선원들이 한 명씩 교대로 총을 매고 갑판 위를 어슬렁거린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그 날 근무자였던 친구에게 총을 쏜 이유를 물었다. 새벽에 맞은 편에서 확인되지 않은 배를 발견하고 "우리도 총을 가지고 있으니 허튼 수작 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였다고 설명했다.

그 총성은 배에 탄 승객들로 하여금 묘한 운명 공동체의 느낌을 갖게 했음이 분명한 것 같았지만, 그것도 잠시, 승객들은 다시 서로 몸을 비비며 각자의 삶을 이어갔다. 나는 여기에 어떤 은유 같은 게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배 안에서 만났던 사이 좋은(?) 형제. ⓒ손문상

서로를 구분지으면서도 간혹 서로를 동일시한다. 별일도 아닌 것 가지고 논쟁하다가도 별일도 아닌 것 가지고 공감한다. 아마존을 따라 내려가는 뱃길 중간중간 수많은 마을에 정박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탄다. 전기가오리나 앵무새, 악어나 거북이를 팔러 도시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고, 승객들에게 구운 생선과, 열대 과일, 그리고 음료수와 초콜릿 따위를 판 후, 재빠르게 마을로 돌아가며 돈을 세는 사람들도 보인다. 새로 탄 승객은 자연스럽게 해먹을 치고, 중간 마을이 목적지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해먹을 걷는다.
▲ 복잡하고 어수선하지만 즐겁고 화기애애한 배 안 풍경. ⓒ손문상

▲ 복잡하고 어수선하지만 즐겁고 화기애애한 배 안 풍경. ⓒ손문상

▲ 이 아이들도 자라 이 배를 타고 이 강을 따라가며 그 자신의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칠 것이다. ⓒ손문상

이러한 삶 속에 무엇이 숨어있을까? 전통을 치장한 꾸스꼬나 따라따, 뿌노에서의 삶은 차라리 뻬루를 왜곡하는 것이다. 이들은 그냥 살아간다. 여기에 전통 따위는 없다. 펠릭스는 께추아어로 노래를 하지만 께추아어를 말할 줄 모른다. 독립기념일을 이름으로 한 광장이나 공원, 혹은 기념비가 지천으로 깔려 있지만, 대부분 스페인을 동경한다. 일종의 '모국'으로써 스페인의 그것을 받아들인다. 이런 것들을 '떠 다닌다'는 말로 함축할 수 있다면 너무 경솔한 표현일까?
▲ 보트를 타고 나와서 본 헨리 4호. ⓒ손문상

▲ 보트를 타고 나와서 본 헨리 4호. ⓒ손문상

▲ 배가 정박하는 날은 마을의 일대 사건이다. ⓒ손문상

▲ 석양. 갑판 위에서. ⓒ손문상

▲ 돼지도 탑승하고. ⓒ손문상

▲ ⓒ손문상

▲ 배에 탄 이상 이 친구들도 승객이다. ⓒ손문상

▲ 배 위에서 발은 쉰다. 그럼으로 '부유하는 여행'은 완성된다. ⓒ손문상

아마존 여행은 지루했다. 하루 24시간 중에 12 시간은 비가 내렸다. 많은 사람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겨우 몸을 가릴 만한 지붕을 의지해 노천에 해먹을 쳤던 우리는 비가 올 때마다 몸을 깊숙이 숨겨야 했는데, 비가 오면 사람들이 모두 2층의 승객 칸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오히려 조용한 시간을 즐길 수 있기도 했다.
▲ 배 화장실 앞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꼬마 아이들. ⓒ손문상

▲ 어린이들은 언제나 즐겁다. ⓒ손문상

하지만 비가 그치면 어김없이 꼬맹이들이 먼저 올라와 우리와 놀았고, 어른들은 짐짓 점잖은 표정으로 '신비주의 전략'을 유지하며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은 혼자 앉아 있거나, 혼자 경치를 구경했다. 그리고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었고, 누구와도 담배를 나눠 피웠다.
▲ 선원이자 경비병이자 보트 운전수인 토마스 씨. 내 사진을 위해 친히 보트를 몰아주었고, 나는 맥주로 화답했다. ⓒ손문상

강의 신이며 물고기의 보호자라고 불린다던 희귀종 중의 희귀종인 민물 돌고래 보또(Boto)가 핑크 빛 몸매를 들어내며 강 위로 올라오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이 떠다니고, 마을 근처의 강가엔 바나나 등 야자열매를 재배하는 밭이 보인다.

본격적인 아마존은 우카얄리 강과 마라뇽 강(Rio Maranon)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두 거대한 물줄기가 만나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강을 만든다. 그리고 검은 강과 흰 강이 만나는 지점을 도는데, 강 한 복판에 섞이지 못한 검은 물과 누런 물이 공존하는 진풍경도 보았다.
▲ 떠 있는 삶. ⓒ손문상

드디어 선박 여행의 마지막 날. 아마존의 석양을 몇 번인가 눈에 새겨 넣었고, 나는 책 한 권을 덮었다. 한국을 떠나올 때 사왔던 '스페인어 입문' 책이다. 혹독한 스페인어 선생 몇 명은 그런 나를 보고 대견해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처럼 아마존 강에 내던져진다거나, 팬티 한 장 걸치고 하선한다거나, 총에 맞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 배 안에서 마지막으로 본 석양. ⓒ손문상

우리가 이키또스에 도착한 것은 예상 시간보다 5시간이 늦어진 저녁 8시였다. 입맛에 맞지 않는 식사에 질려가던 중이었고, 며칠간 제대로 샤워를 못해 몸이 근질거리던 중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사두었던 생수가 동이 난 시점이어서 이키또스의 불빛이 마냥 반갑기만 했다.

여행에서 물리적인 목적지를 설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함으로 목적을 상실케 만드는 것이 바로 여행이리라. 이 아이러니 속에서 여행은 단지 과정의 연속이 되고 만다. 목적지가 중요해 보이는 것은 우리의 착시일 뿐이다. 그렇게 부유하는 삶이란 오히려 가식적인 '목적 달성'의 강박관념을 희석시켜주는 것일 수도 있다. 목적은 결국 소멸되어야 의미 있는 것. 그저 그런 낡은 지표일 뿐이다.

('뻬루' 대신 '페루', '잉까' 대신 '잉카' 등으로 적는 게 바른 표기법이지만, 여행기라는 특성을 고려해 현지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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