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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론 덮친 버마…마음이 무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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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론 덮친 버마…마음이 무너집니다"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 <59> 본국의 재해에 발만 구르는 이주노동자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을 하다 보면 자연히 이들의 본국상황에 관심을 갖게 된다. 교회에서 운영하거나 단체대표가 종교인인 단체라면 종교적 이유에서라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보통인데, 종교와 무관한 사회단체에서 일상 활동에 치이면서 다른 나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기는 솔직히 쉽지 않다. 특히 본국의 누군가와 함께 뭔가를 하고 있지 않다면 더욱 쉽지 않다.

그런데 어떤 핑계도 댈 수 없고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번 버마의 사이클론 사태가 말하자면 그런 상황이 된다.

나와 가까이 지내는 어떤 버마인의 집은 양곤 외곽에 있는데 그 곳은 이번 태풍 피해지역이다. 그는 아직 부모형제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한국에 거주하는 3000여 명 정도의 버마인 중 이번 태풍피해지역이 고향인 버마인이 수백 명 정도 된다. 그중에는 부모형제가 피해를 당한 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이미 한 친구의 부모가 돌아가셨음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한 버마인의 집은 양곤이긴 하지만 높은 지역이어서 무탈하다고 하자 나와 가까이 지내는 그 버마인은 그의 부모님께 자신의 집에 가 봐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별일 없을 거야'라고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하긴 했지만 내심 걱정이 된다.

이번 재해뿐 아니라 2004년부터 동남아시아를 강타한 자연재해- 인도네시아의 쓰나미, 파키스탄의 지진, 스리랑카의 쓰나미, 필리핀의 태풍 등으로 이들 나라가 엄청난 피해를 당하게 되면 당장 그 나라 사람들이 자주 찾는 단체에서는 덩달아 우울해진다. 혹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굴을 보는 것이 민망해진다.

때로는 피해지역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한국에 오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 피해자 구호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민망하고 미안해진다.

방 보증금 때문에 우리 단체를 찾아왔던 파키스탄인 하산을 만났을 때 그랬다. 파키스탄에서 지진이 발생한 지역이 그의 고향이었는데 당연히 동네의 모든 집과 하산의 집이 무너졌다. 형은 돌무더기에 깔려서 죽었고, 자기도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다고 한다. 당시 파키스탄의 지진피해자들을 위해 외국에서 구호물자와 구호대원들이 오긴 했는데, 도로가 모두 무너졌기 때문에 구호물자는 일찍 도착하지 않았다. 하산은 구호물자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그 며칠간이 정말 춥고 고통스러웠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 얘기를 듣는 나는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그 늦게나마 도착했던 구호물자를 위해 나는 어떤 보탬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버마에서는 버마 군부의 폐쇄적인 조치로 인해 국제구호단체들의 입국이 지연되고 구호물자는 유용하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피해자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급격히 증가해서 사망자가 10만 여 명에 피해자가 150만 명에 달하며, 말라리아와 설사병이 창궐할 것이라는 등의 흉흉한 예측마저 돌고 있다.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는 외국에서 이런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국제적인 구호단체와 함께 구호활동을 한다든가 모금을 하는 등의 일로 잠시 바빠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있는 버마마인들이 조국과 가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모금뿐이다. 이미 버마마인들로 구성된 조직에서는 모금을 시작하였다. 이런 참상을 보고 한국인도 다음넷에서 모금을 시작하였다. 우리 단체에서도 피해자 구호를 위한 모금을 시작해야겠다. 큰 규모가 아닌 우리 단체에서 막대한 돈을 모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꼼지락대면서 작은 것이라도 시도해야 나중에 그 나라 사람들을 만났을 때 덜 미안할 테니 없는 돈을 쪼개서라도 보탤 일이다.

이번 버마의 사이클론 피해에 대해 버마인들 사이에 괴담이 떠도는 것 같다. 버마인들 말에 의하면 버마는 그 사이 자연재해를 겪은 적이 없는 나라다. 버마의 국토가 면한 안다만 해에서 사이클론이 자주 발생하는데 그 사이클론이 늘 버마를 비켜가서 바로 옆의 방글라데시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사이클론이 버마를 칠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군부조차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사이클론이 버마를 휩쓸고 간 것은, 작년 9월 민중항쟁 때 군부가 스님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죽이고, 심지어는 여스님들을 성희롱하는 등의 폭거를 행했기 때문이라고 일부 버마인들은 믿고 있다. 그동안 버마가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했던 것은 스님들의 깊은 불심 덕분이었다는 것. 정말 괴담 수준의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버마인들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내게 이 얘기를 전해준 버마인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해주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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