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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끝을 내려고 다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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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끝을 내려고 다시 시작합니다"

파업 800일 KTX승무원 "남자를 만났으면 결혼하고 애도 가졌을 시간에…"

벌써 몇 번째 이 계단에 앉았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그랬다. "800일? 남자를 만났으면 벌써 진작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졌을 시간이네"라고. 날짜를 헤아리는 것조차 무의미해진 것도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지난해 연말 그토록 다시 입고 싶었던 승무원 유니폼까지 포기하면서 받아들인 '역무 계약직 채용' 노사잠정합의안이 끝내 무산되고 지난 1월 있었던 이사회에서 잠정합의안에 이사들이 최종적으로 부정적 입장을 정리한 이후, KTX 승무원들은 오랜 시간 말이 없었다.

유독 바람이 강했던 겨울도 지나고, 어느덧 봄도 끝자락에 선 9일, 이들이 오랜만에 서울역 광장에 섰다. 이날은 이들의 파업이 800일을 맞던 날이었다.
▲ 800일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당사자들에게는 아득하기만 한 "험난하고 기나긴 여정"의 시간이었지만, 어쨌든 800일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그들을 잊어가고 있었다. ⓒ프레시안

800일, 점점 잊혀져가던 시간…

800일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한 승무원의 말대로 "남자를 새로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나을 수 있는" 시간이었고, 지독하게 사랑했던 사람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당사자들에게는 아득하기만 한 "험난하고 기나긴 여정"의 시간이었지만, 어쨌든 800일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그들을 잊어가고 있었다.

철도노조 KTX승무지부 오미선 지부장은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고립된 섬처럼 느껴진다"고 표현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 홍희덕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당선자, 김은주 민주노총 부위원장, 철도노조와 운수노조 임원 몇 명만이 참석해 이들의 '외로움'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들이 "자랑스러울 것도 없다"는 파업 800일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서울역 광장에 다시 선 것도 "'우리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란다.

"도대체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날 30명 남짓의 승무원들은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을 더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말할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대선 이후 이철 코레일 사장이 물러난 이후 아직 새로운 사장도 오지 않았다. 대화를 하려고 해도 할 상대가 없다. (☞관련 기사 : '손 털고' 떠난 이철, '손 묶인' KTX 여승무원)

안 해본 일도 없다. 역사를 점거하기도 했고, 노동부가 유례없이 두 차례나 불법파견 조사를 했고, 교수님들이 거리에 서기도 했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도 받았고, 몸에 쇠사슬도 묶고 삭발도 해 봤다.

법원도 이미 진작에 승무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법이 "철도공사가 KTX 여승무원의 사용자"라고 판결한 데 이어 고등법원도 최근 비슷한 판결을 또 내렸다. 지난 4월 서울고등법원은 "철도공사는 위장도급 형식으로 근로자를 사용하기 위해 유관단체인 홍익회나 자회사인 철도유통이라는 법인격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며 "실질적으로는 철도공사가 승무원들을 직접 채용한 것과 마찬가지로서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한다"고 판시했다. (☞관련 기사 : 파업 20개월 KTX 승무원, 법원 "철도공사가 이미 사용자")
"고등법원까지 원청의 사용자성을 얘기하면 뭘 하나요. 철도공사는 아무 반응도 없는데.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하자고 모였지만 대체 무엇을 또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답답한 마음이었습니다." 800일을 맞은 오미선 지부장의 말이었다. ⓒ프레시안

그래서다. "긴 호흡으로 가자고 마음을 먹으면서도 무엇을 보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모르겠는 것은.

"고등법원까지 원청의 사용자성을 얘기하면 뭘 하나요. 철도공사는 아무 반응도 없는데.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하자고 모였지만 대체 무엇을 또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답답한 마음이었습니다."

800일을 맞은 오미선 지부장의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 800일을 보내며 어느덧 "고립된 섬"처럼 되어버린 KTX 승무원들의 오랜 침묵 끝 기지개가 다시 날개를 달 수 있을까?ⓒ프레시안

오미선 지부장은 "이제 더 이상은 싸울 수가 없어 이 자리에 섰다"고 덧붙였다. 파업을 더 오래 끌 수는 없어 다시 시작하려 한다는 말이었다.

최근 철도노조 조합원들을 만나기 위해 현장순회를 벌이고 있는 승무원들은 이날 저녁 8시 서울역 앞에서 800일 촛불문화제를 연다. 오는 21일과 22일에는 철도웨딩홀에서 'KTX 승무원 연대의 밤'도 계획돼 있다.

'KTX의 꽃'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꽃'으로 주목을 받았던 승무원들은 조심스럽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를 말하고 있다.

이날 KTX 승무원들 앞에서 노회찬 대표는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울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고 했다. "역사에 기록되는 상징적 사건으로 남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어떻게든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800일을 보내며 어느덧 '고립된 섬'이 되어버린 KTX 승무원들이 오랜 침묵 끝 기지개가 다시 날개를 달 수 있을까? 노회찬 대표를 비롯해 이날 참석한 사람들은 그들의 날개 속 하나의 깃털이 되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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