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고도에 불편한 교통편, 일주일만에 수백 킬로미터를 주파하는 잉까인들이 되지 않고서야, 정복의 편의를 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계획적으로 건설한 도시가 리마다.
태평양을 맞대고 있는 리마는 거대한 메갈로폴리스다. 위험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고, 물가는 다른 도시에 비해 단연 비싸며 매연은 최악이었다. 리마 시내버스 70% 이상이 16년에서 54년 된 차량으로 매연의 주범이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도시임엔 분명하다. 흉측한 절벽으로 둘러쳐진 해안이지만 절벽 위에서 보는 석양은 그 어떤 도시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을 선사한다. 하지만 부에노스 아이레스, 그리고 산띠아고, 두 곳의 대도시를 차례로 둘러본 우리는 경험적으로 혹은 체질적으로 대도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우리는 그린하우스라는, 산 보르하(San Borja)지구의 한인이 운영하는 숙소에 적을 두었다. 어떤 모든 욕망도 한국 음식을 실컷 먹어보자는 생각을 방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하는 게 솔직할 것이다. 재료를 사오면 그 재료로 식사를 준비해 주실 수 있다는 말에 우리는 '해산물'을 떠올렸고 시장을 찾기로 했다.
초리요스(Chorrillos) 수산 시장. 저 멀리 리마의 압구정동쯤 될 듯한 '미라플로레스' 지구가 보이는 곳에 자리한 이 시장은 싱싱한 해산물을 찾는 동양인들이 단골로 드나든다고 한다. 우리는 보리멸 한 가지만 십 육년 동안 다듬어 왔다는 '달인'의 손길을 담아왔고(실제로 16년간 보리멸 한 가지만 다뤘다고 했다.), 게와 조기(이곳 조기는 정말 커서 회를 떠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었다.)를 샀다.
시장에서 나오는데, 젊은이들 몇 명이 우리가 들고 있는 카메라를 발견하고는 "야, 저 카메라 봐. 죽이는 걸"이라고 외치며 우리와 눈을 마주쳤다. 쵸리요 시장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5분 정도만 더 도심 반대 방향으로 가면 빈민가가 나온다.
펠리컨들이 제비 새끼 모양으로 시장 주변에 모여들었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는 내게 생선 내장을 들어 보이더니 '먹이 주는 데 1솔'이라고 말했다. 나는 서울에 남아 있을, 내가 밥을 사야 할 사람들이 생각나 펠리컨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이유를 생각해 내곤 정중히 거절했다.
이런 사소한 신생 사업들을 빼면 시장 분위기는 한국의 여느 수산 시장과 다를 게 없었다. 사람 사는 곳이란. 다음 날엔 새벽 시장에 들렀다. 보다 살벌한 분위기였지만, 그 틈을 뚫고 싼 값에 싱싱한 조개와 새우, 각종 횟감을 잔뜩 샀다. 주차되어 있는 차 위로 한 소년이 달라 붙어 유리창을 닦아 주었다. 협의 되지 않은 이 서비스에서 유일하게 규칙이 하나 있다면, 다 닦고 난 후에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많은 뻬루인들이 리마에서의 삶을 지속시킬 것이었다.
이날 밤엔 정원에 숯불을 피워 구워먹으며 주인 내외, 그리고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서로의 무용담을 공유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린 짧은 리마 체류 일정 중에 뻬루-미국 FTA 반대 시위를 볼 수 있길 바랐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리마에서의 화제는 FTA 외에도 단연 칠레 관계다. 산 마르띤(San Martin)이라는 해방자를 동시에 기리면서도 1879년의 태평양 전쟁으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뻬루는 칠레에 관해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칠레 아따까마 사막에서 만난 앤드류는 "미국인들이 이라크로 여행가지 않잖아? 칠레인들이 볼리비아, 페루로 여행가지 않는 이유랑 같아"라고 농담한 적이 있다. 물론 칠레인들은 뻬루 관광객들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최근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는 칠레는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뻬루 시장을 장악해가고 있다. 우리가 리마에 도착했을 때, 한 가지 상징적인 사건에 관해 들을 수 있었는데, 토종 뻬루 자본으로 만들어져(소유자는 독일계 페루인이었다.) 뻬루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대형 슈퍼마켓 체인 웡(Wong) 그룹이 칠레 기업인 센꼬수드(Cencosud)에 5억 달러로 매각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웡은 뻬루 전체 슈퍼마켓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회사로, 웡 매각을 통해 칠레 자본은 뻬루 수퍼마켓 시장의 73%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로써 뻬루 내 칠레 자본은 60억달러에 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난 편에서 이야기했던 꾸스꼬 관광 사업권에 대해서도 세계 굴지의 호텔업계 못지 않게 칠레 기업의 공격적 투자도 활발히 일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반발은 2007년 8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새삼스레 터져 나온 뻬루-칠레간 해안 경계선 분쟁과도 심리적으로 닿아있는 문제다. 뻬루 국방장관인 알란 바그너(Alan Bagner)가 국제 사법재판소에 고소장을 제출함으로써 본격화되었다. 두 나라 국경선인 꼰꼬르디아(Concordia) 가 시작하는 태평양 상의 지점에 양국이 일치를 보지 못하다가 벌어진, 예상된 일이다.
우리는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다른 우리끼리 미라플로레스의 '코엑스'라고 불렀던 라르꼬마르(Larcomar)에 다른 여행자들이 가 있는 동안, 우리는 도심으로 향했다. 관광객들이 다니는 미라플로레스와 달리 도심은 한결 우중충한 빛을 띤 건물들이 마작패처럼 붙어 있었다. 우리는 각종 자동차 중고품을 파는 곳과 기름 냄새 나는 정비소가 모여 있는 곳에서 '티코 재조립 공장'을 볼 수 있었다. 리마에서 중고차가 어떻게 '생산' 되는 지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곳이었다. 완전히 찌그러진 차라도 정비소를 거치면 새 차로 변신할 수 있다 한다.
그곳에서 만난 알베르또(Alberito) 라는 이름의 아이는 나이 먹은 정비공에게 열심히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었다. 기름때에 절은 옷을 입고 바닥에 누워 고참 정비공의 지시사항을 열심히 실천하는 모습을 사진기에 담았다. 13 살의 이 소년은 방학 기간을 맞아 친척 아저씨의 소개로 이 정비소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방학이 끝나기 때문에 다시 학교로 돌아갈 예정이란다.
기술을 배워 나중에는 전문 정비공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런 정비소를 하나 소유하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글쎄요... 저는 축구 선수가 될 거예요. 정비일은 돈이 되고, 또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일 뿐이죠."
나이 지긋한 다른 고참 정비공 하나가 소년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곤 허겁지겁 달려와 만류한다. "기름때에 절은 아이를 찍어가서 나중에 아동 노동 착취로 고발하려는 거 아니예요?" 우리에게 이런 식으로 따지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정비일을 배우는 축구 선수 지망 소년의 삶에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설명하느라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아동 노동 착취라니. 그런 일들은 이런 도시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도 잘 알고 있다. 도시는 그냥 '가난'을 발명할 뿐이다. 이제는 '자연 법칙'처럼 되어버린 자본 권력이 '아동 노동 착취'라는 물리적인 형태로 작동되는 것은 나이키, 혹은 스타벅스 따위의 생산 시설이 들어선 제 3세계의 거대한 공장지대에서의 일이다. 도시는 가난을 발명할 뿐, 발명된 가난은 자연스럽게 도시의 삶으로 스며들며 새롭고 무자비한 법칙들을 다시 발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어떤 손 같은 것에 의해 움직일 뿐이다. 그렇다 우린 그 손을 볼 수 없다. 따라서 통제할 수 없다.
그래서 도시는 착취당하는 것 보다는 '범죄'의 형태로 스스로 앓고 있는 질병의 증세를 드러낸다. 리마 시민의 60%는 빈민이지만, 도시의 물리적인 공간은 부자와 빈민을 차별하지 않는다. 쉽게 이야기하면 전 세계의 모든 사치품들이 모이는 미라플로레스는 빈민가에서 자동차로 불과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다. 이것은 현실이라기보다 차라리 환상이다. 천국과 지옥이 이웃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매한 '시장의 논리'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경쟁을 위한 노력을 선택하는 대신 '범죄'를 선택한다.
고참 정비공은 우리를 못 믿겠다며 아이가 소년 축구단 유니폼을 든 사진을 찍으라고 권유했다. 그리고선 소년에게 축구 유니폼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만류했고, 아이는 유니폼을 가지러 뛰어갔다.
우리의 안내인은 뻬루가 빈부 격차로 신음하고 있긴 하지만, 저 소년처럼 뭐든 배우려는 자세가 뻬루인들의 기질과 닿아 있기 때문에 이 나라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 이야기 해 주었다. 엄청난 자원을 믿고 여유를 부리며 사는 베네수엘라나 칠레, 아르헨티나 같은 다른 남미 국가들과 다른 점이라고 덧붙였다. 과연 그럴까?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지만, 우리가 들고 있는 커다란 카메라를 보고 "와, 죽이는 걸"이라고 지껄이며 눈을 마주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어느새 우리 주위로 '신기한 동양인들'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사실 이 지역은 관광객들이 절대 다니지 않는 지역이기도 했다. '커다란 카메라를 든 동양인'은 '삐라냐'에게 당할 확률 99%'라는 이론을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한 한 젊은 정비공은 친절하게도 '삐라냐'가 무엇인지 눈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이 시범을 위해 동네 아저씨 한 분은 무참히 희생당했다. '안녕' 하고 지나가던 뻬드로라는 아저씨에게 이 젊은 정비공이 '삐라냐다!'를 외치자 우리 주변에 모인 다른 정비공들이 득달같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열 명이 휘두르는 스무 개의 손이 무력하게 저항하고 있는 뻬드로의 주머니를 몽땅 털어버렸다. 사람들은 웃었지만 뻬드로는 기분이 나쁜 모양이었는지, 한 정비공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며 욕을 해댔다. '봤죠? 이게 삐라냐에요. 하지만 밤엔 조심하세요. 삐라냐가 아니라 상어같은 아이들이 총을 들이대니까.' 실제로 몇 년 전쯤엔 국내 모 방송국 취재팀이 대낮 거리에서 장비를 몽땅 털린 일도 있었다고 했다.
누가 뻬루인인가? 삐라냐? 아니면 소년?
우리는 섬유, 원단 시장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중간 중간에 모래를 마대 자루에 담아 파는 가게들이 눈에 띠었다. 이 모래들로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이 집을 짓는다고 했다. 매일 조금씩 모래를 사서 벽돌을 구운 다음 올리는 지루한 과정의 반복이다. 그래서 리마 빈민가 뿐 아니라 우리가 들렀던 도시 외곽 지역의 건물들은 흉한 철골이 튀어 나온 '미완성' 집들이 많았던 것이다.
시장의 풍경은 여느 나라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군데군데 로꾸또리오(Locutorio, 전화방) 노점상들이 핸드폰을 잔뜩 진열해 놓고, '1분에 30센타보' 하는 식의 가격표를 붙여 놓고 영업을 하고 있다.
원단을 잔뜩 실은 수레를 끌고 가는 이들이 많이 눈에 띠었다. 출출해진 우리는 감자 한 덩이와 야채 조금, 그리고 삶은 달걀 하나에 소스를 끼얹은 1솔(우리 돈 약 300원) 짜리 식사를 했다. 석양이 낮게 깔리기 시작했다. 해가 지는 쪽이 바다 쪽이라는 것을 상기하고 미라플로레스에서의 삶을 생각했다. 석양빛을 받으며 일하는 시장 상인들과 노동자들의 근육에 힘줄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수레를 끌고 가는 이의 발놀림이 재다.
무슨 무슨 슈슈 어쩌고 아이스크림 하나에 15솔(우리 돈 4700원) 정도를 주었다. '차가운 커피'를 주문했는데, '식힌 커피'를 들고 나왔다. 나는 '냉커피'를 말한 것이었는데, '얼음 커피'라고 말했어야 했나보다. 5솔(약 1600원). 밥을 먹었다. 닭고기와 야채를 곁들인 밥, 그리고 맥주 한 잔. 28솔(우리 돈 약 9000원). 오락실에 들러 오락을 했다. 한 게임에 1솔 8 센타보(우리 돈 600원 정도), 쇼핑센터에 들어가 아마존에서 필요할 샌들을 구경했다. 샌들 하나에 싼 것이 약 70솔(2200원), 빅토리녹스 다용도 칼 하나에 250솔(78000원).
어디가 리마인가? 시장통? 미라플로레스? 그도 아니라면 꾸스꼬? 따라따?
미라플로레스의 해변가에 세워진 늘씬하고 높은 쇼핑센터들과 전망좋은 아파트에서 개를 끌고 산책하는 백인들의 여유로운 틈을 비집고 태평양의 석양을 바라보았다. 깎아지른 듯한 사막 지형의 절벽 위에 서서 바람이 실어주는 맑은 공기를 들이 마셨다.
도심은 사막 지형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먼지가 많이 섞여 있어서 답답하기 그지없다. 석양은 아름답고, '사랑 공원(Parque de amor)'의 연인들은 행복해 보인다.
('뻬루' 대신 '페루', '잉까' 대신 '잉카' 등으로 적는 게 바른 표기법이지만, 여행기라는 특성을 고려해 현지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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