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지난 7일 문자 메시지와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는 소위 '광우병 괴담'을 놓고 '엄정 대처'에 나서겠다고 밝혔으며 경찰은 이날 실제로 경기도 지역 고등학교를 방문하는 등 수사에 착수했다. 교육과학기술부도 이날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전국 16개 시·도교육감 회의를 개최하고 학생들의 촛불문화제 참여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했다. 한승수 총리도 8일 허위사실 유포와 불법집회에 대한 엄정 대처 방침을 대국민 담화를 통해 분명히 했다.
'출처가 불분명한 괴담'?
"국민이 출처도 불분명한 괴담에 혼란을 겪거나, 국가 미래가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유언비어에 발목 잡히는 일이 없도록 사이버폭력 척결에 검찰역량을 집중해 서로 믿을 수 있는 신뢰분위기를 조성하겠다."
7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민생침해사범 전담부장검사 회의'에서 임채진 검찰총장이 한 말이다. 그런데 이 말에는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많다. 우선 임 총장이 지목한 '괴담'의 내용이 무엇인지 보자.
'5월 17일 전국 모든 중·고등학생들 단체 등교거부.' 이날 일선 고교에 방문해 수사에 나선 경찰은 광우병 등에 반대하며 벌이자는 '등교 거부' 문자 메시지에 '교육기관 업무 방해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우선 자발적인 동참을 권유하는 제안에 불과하다.
또 '등교 거부'는 정부나 학교의 부당한 정책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시위 수단으로 널리 쓰여오기도 했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지난 달 경기도 수원의 한 초등학교에서 불법찬조금을 요구한 교사에 항의하는 의미로 1100명의 학생이 등교를 거부한 일도 있었다. 과연 이 문자 메시지에 경찰이 '불법'이란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6월부터 수도 민영화과 건강보험 민영화로 수돗물 값과 감기 치료비가 하루에 14만 원, 10만 원에 이를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물산업 육성 5개년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물은 더 이상 공공재가 아닌 경제재이며, 먹는 물을 공급하는 '공공수도 사업'을 '물산업'으로 규정하겠다"고 밝혔다. 세계적으로 물 산업이 석유 산업에 이어 '황금 시장'이 된다는 판단 아래 본격적으로 물 산업 육성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환경부도 물산업지원법'(가칭)을 만들어 올해 상반기 중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또 최근까지 정부는 모든 병·의원, 약국이 국민건강보험 환자 진료를 의무화하는 당연지정제 완화를 언급해 왔었다. 당연지정제를 완화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보험 의료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목표였다. 비록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이를 없던 일로 하겠다고 밝혔지만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 민영의료보험 확대 등은 여전히 정부의 추진 대상이다. 최근 개봉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는 우리 정부가 전철을 밟으려 하는 미국 민간의료보험 체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유언비어 날조 유포죄' 시절도 있었지만…
이 밖에도 경찰과 검찰은 광우병 위험에 대한 논란, 인터넷종량제 등을 싸잡아 비과학적이고 사실무근인 '괴담'이라고 규정했다. 물론 다소 과장된 면이나 일부 사실이 아닌 부분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어느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비방도 아닐 뿐더러 논란이 벌어졌던 현안에 기반한 불안에서 나온 것이다.이를 '불법'이라 규정짓고 공권력을 동원해 입단속에 나서겠다는 검찰과 경찰의 행태는 상식에서 한참 벗어나 보인다.
실제로 과거 군사정부 시절에는 검찰과 경찰의 이런 단속이 판을 친 적도 있었다. '유언비어 날조 유포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가나 사회의 안녕질서를 해치거나 사회를 불안하게 할 우려가 있는 사실을 거짓으로 꾸며 퍼뜨린 경우'에 경범죄로 처벌할 수 있게 했던 이 조항은 권력 남용의 소지가 크다는 이유로 20년 전인 1988년 폐지됐다.
사회단체들이 현재 검찰과 경찰을 '공안 정국'이라 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6일 성명에서 "검찰과 경찰은 국민의 정당한 저항을 범법으로 몰아붙이며 불온시하는 구시대적 발상을 당장 거둬야 한다"고 질타했다. 인권단체연석회의도 "명백히 시대착오적인 과잉 수사"라며 경찰이 즉각 수사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 반대하는 '표현의 자유'에 민감한 경찰
사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정면으로 반하는 정부의 '시대착오적' 행태는 최근 들어 잇따라 물의를 일으켰다. 경찰은 지난 6일 청계천 광장에서 예정됐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대해 애초에는 '금지'하겠다고 밝혔다가 반발이 거세자 '정치적 구호'만 금지한다고 밝혔었다.
또 최근에는 경찰과 국가정보원이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전국교수모임(운하반대교수모임)' 참가교수들의 성향을 광범위하게 조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정치사찰' 파문이 일었다. 당시 서울대, 충남대, 가톨릭대, 한남대, 목원대, 안동대, 한국해양대 등에서 참여교수에 대한 성향 조사가 이루어졌다. 일산 초등학생 납치 미수 사건 등 수많은 민원에는 인력이 모자라 수사가 힘들다던 경찰이 유독 정부 정책에 반하는 움직임은 재빨리, 그것도 알아서 조사에 나섰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새 정부 들어 경찰은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조치를 줄줄이 발표해 왔다. 지난 3월에는 경찰이 집회나 시위 참가자의 복면 착용을 금지하고, 쇠파이프·죽창 등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미 체포 전담반 부활, 전기 충격총(테이저건) 사용, 시위 예상자 사전 검거, 참가자 즉결 심판 강화, 경찰의 면책권 보장 등의 조치는 발표됐다.
정부의 발표는 '유언비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나
정말 '괴담' 때문에 청소년들이 촛불문화제와 대통령 탄핵 서명에 참가한 것일까. 집회와 시위가 너무 무분별하게 벌어져서 사회 분위기를 흐리게 만드는 것일까. 온라인 서명에 동참하는 누리꾼과 촛불문화제에서 터져나오는 재기발랄한 발언은 정부의 입지를 더욱 옹색하게 만들 뿐이다. 촛불문화제를 단속하려 전경만 현장에 내보내지 말고 경찰과 검찰 고위공무원들이 잠시라도 그 자리에 나와봤다면, 국민의 불안감이 얼마나 심각한 정도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같은 여론을 '공안식'으로 억누르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경찰도 익명으로 발송된 문자 메시지의 발신지를 추적하기가 어렵다고 실토한 바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상임활동가는 "문자 메시지, 인터넷과 같은 네트워크 방식으로 조직된 이들을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막기는 힘들 것"이라며 "유일한 방법은 이들의 요구에 귀기울이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에 나서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정부도 분위기를 바꿔보려 나름대로 여론몰이까지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각 부처에서는 메일링 리스트에 등록된 기자들을 상대로 '광우병 안전'에 대한 홍보 메일을 발송했다. 농림부의 말바꾸기 행태가 줄줄이 드러나는 마당에 정부는 홍보 메일에 담긴 내용을 100% '유언비어'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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