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아이디어는 지난 3월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결의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강화 추진계획 가운데 '사회 공헌적 책임'을 실천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전경련은 "윤리경영, 투명경영, 사회공헌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가운데, 대학생들의 사회봉사활동을 확산시키는 일에 적극 나서기 위해 이런 사업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그랬던' 전경련이 사회봉사 운운한다고?
그런데 참, 한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전경련이 어떤 조직인지를 떠올려 본다면 전경련의 이 계획이 왜 기가 차는지 알 수 있다.
불법적인 세습경영과 세금 포탈을 저지른 이건희 삼성회장 일가의 비리에 대해서는 "눈감자"고 선동하던 조직이 바로 전경련이다. 박용성 두산 회장이 천문학적 규모의 회사 돈을 훔쳐 자기 주머니로 슬쩍했을 때도 강 건너 불구경으로 일관했던 집단이다. 전경련 회장인 조석래 씨와 핏줄로 엮인 조현범 씨가 경영하는 한국타이어에서 십 수 명의 노동자가 죽어나갔어도 애도 성명서 하나 내지 않던 단체다.
부도덕하고 반사회적인 불법 행위를 저지른 재벌회장들을 법대로 처리하라는 국민들의 주장을 '반(反)기업정서'니 '사회주의'니 선정적인 단어를 써가며 몰아치고, 재벌회장 일가의 이익을 위해 계급적 속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집단이다, 전경련은.
국민경제를 위험에 빠뜨리고 회사를 말아먹은 불법을 저지른 재벌회장들을 사면복권 하라며 주장하는 그 입으로 헌법이 보장한 노동기본권을 지키려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행위는 '업무방해'를 걸어 철저히 처단하라고 협박했던 단체다.
이런 전경련이 자기 회원사가 저지른 비윤리, 반투명, 반사회 행위에 대한 반성은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신규입사라는 '무기'를 악용하고 있다. 대학생들을 향해 '재벌사에 들어오고 싶으면 사회봉사 활동 열심히 하라'고 압박하는 모양새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전경련이 말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대체 지구상 어디에?
사실 전경련이 말하는 기업의 '사회 공헌적 책임'은 우리나라 재벌들이 발명해낸 '말장난'일뿐이다. 글로벌스탠더드로 자리 잡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가장 명료하게 규정한 국제기준은 '유엔 글로벌 콤팩트(UN Global Compact)'라 할 수 있다. 이 유엔 글로벌 콤팩트에는 인권, 노동권, 환경보호, 반부패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핵심 요소로 꼽고 있다. 물론 자선기금이나 자원봉사는 언급조차 없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가장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경제협력개발기구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OECD Guidelines on Multinational Enterprises)'도 마찬가지다. OECD 가이드라인은 인권과 노동권 보장, 소비자 권익 보호, 투명한 세금 납부, 반독점과 반부패의 근절 등을 자세히 명시하고 있지만 기부나 봉사 같은 자선행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빈곤층 보호를 위해 진정 '사회적 공헌'을 하고 싶다면, 굳이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재벌들이 세금만 제대로 내면 된다. 그 돈으로 빈곤층 보호는 한층 강화될 수 있다. 법대로만 해도 된다. 재벌들이 법대로만 한다면 기업인들이 따로 장학금을 주지 않더라도 빈곤층 자녀에 대한 교육 기회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자기 회사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에게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한, 회사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종업원들의 경영참가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한, 법률이 정한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한, 재벌들이 외치는 '윤리 경영'과 '투명 경영'은 이뤄질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재벌들이 말하는 기업의 '사회적 공헌'은 위선 가득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사회봉사'를 미끼로 '사상검열' 하시려고?
좀 다른 면에서도 '대학 재학 중 사회봉사활동의 점수화' 계획은 기가 차다. 이 계획을 내놓은 전경련의 또 다른 의도는 '사상 검증'을 통해 기업의 입맛에 맞는 대졸자를 가려 뽑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만약 재벌사에 지원한 대졸자가 사회봉사 활동으로 참여연대 같은 재벌에 비판적인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다면 입사에 더 유리할까, 또는 불리하게 작용할까? 지금 온 국민적인 쟁점이 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단체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면, 입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게 될까 나쁜 점수를 받게 될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자기 입맛에 맞게 자의로 왜곡한 다음,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까지도 교묘하게 이용해 재벌의 이익에 복무하는 인간형을 붕어빵 찍듯이 양산하겠다는 전경련의 행태를 어떻게 봐야 한단 말인가.
전경련의 계획이 실현된다면 대학생들의 다양한 사회활동은 재벌의 이미지용 상업 광고에 등장하는 자선활동으로만 국한될 것이다. 가뜩이나 '돈이면 다!'라는 천박한 물신주의가 성행하는 대학 사회를 더욱 살벌한 곳으로 만들게 틀림없다.
전경련이여, 故 이병철 회장의 '명언'을 되새겨라!
고(故) 이병철 삼성회장은 "발전할 수 없는 세 부류"를 꼽은 적이 있다. "첫째 어려운 일은 안하고 쉬운 일만 하며 제 권위만 찾아 남만 부리는 사람, 둘째 얘기를 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 셋째 알아듣긴 해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그들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하여 전경련과 재벌에게 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이병철 회장의 이 명언을 다시 되새겨보길 권하고 싶다.
혹 지금 전경련이 인권, 노동권, 환경, 반부패 같은 어려운 것은 안하고 '신입사원 채용'을 미끼로 대학생만 부리려는 것은 아닌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와 관련해 오가는 수많은 얘기들을 자신들만 못 알아듣는 것은 아닌지, 혹 알아듣기는 하는데 자기 이익을 위해 일부러 실천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전경련 회장단 여러분! 취직 걱정에 골치 아픈 대학생들 그만 괴롭히고 "너나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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