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왜 이런 합의를 한국에게 관철시켰을까? 중국산 마늘은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전에는 거의 수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6년의 2,900톤(t)에서 시작해 급기야 1999년에는 2만2200톤까지 수입이 크게 늘었다. 국내 마늘 값이 폭락했다. 망연자실한 의성, 남해, 제주 등의 농가들은 긴급 수입 제한 관세 부과를 신청하였다. 그리고 한국의 재정경제부 장관은 1999년 11월 18일, 잠정 조치 고시를 공고해 중국산 마늘에 대한 긴급 수입 제한 관세를 매겼다. 그리고 2000년 6월 1일에는 정식 고시를 공고했다. 그 결과 중국 마늘 수입량은 줄어들었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즉시 한국산 휴대전화 단말기 등에 대해 수입 중단 조치를 취했다. 놀란 한국은 중국에 달려가, 위와 같은 마늘 합의서를 체결했다. 그 결과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위와 같이 앞으로 2002년까지만 마늘 긴급 수입 제한 관세를 매기기로 한 합의가 미리 성립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한국의 법률(당시엔 대외무역법, 현재는 불공정무역행위 조사 및 산업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긴급 수입 제한 관세의 해제는 어디까지나 재정경제부 장관의 재량 권한이었다. 그리고 장관이 이를 해제하려면, 애초의 부과 원인 사실이 소멸돼야만 했다. 더욱이 마늘 농가들에는 긴급 수입 제한 관세 부과를 더 연장해 줄 것을 신청할 법적 권리가 보장되어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법적 쟁점과 만난다. 중국과의 마늘 합의는 위에서 본 한국의 국내법적 절차에 우선하는가? 다시 말하면, 한국의 국내법 제도에도 불구하고, 재경부 장관은 중국과의 마늘 합의서에 따라, 긴급 수입 제한 관세를 해제해야만 하는가?
약 6년 전에는, 이 법적 질문은 마늘 농가만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 법적 질문은 지금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다. 법적 쟁점은 같다. 미국과의 광우병 검역 기준 합의는 국내법적 절차에 우선하는가? 한국의 국내법 제도에도 불구하고, 농림부 장관은 미국과의 합의대로만 검역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가?
지난 4월 22일, 농림부 장관은 "국민에게 널리 알려 의견을 듣고자",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검역 기준을 입안 예고했다. 알다시피 우리는 경악했다. 그래서 그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헌법과 법률이 보장한 우리의 권리이다. 헌법은 우리에게 인간답게 살 권리와 행복추구권과 건강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행정절차법으로 우리에게 입법안에 대한 의견 제출권을 법적 권리로 보장하고 있다. 농림부 장관은 우리가 제출한 의견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존중해야만 한다(제44조 제3항). 가축전염병 예방법은 농림부 장관에게 가축방역과 공중위생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수출국의 검역 내용 및 위생 상황 등 검역기준을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제 34조 제2항).
과연 미국과의 광우병 검역 기준 합의는 이러한 국내법적 절차에 우선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 땅의 마늘 농민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헌법재판소 판례를 남겨 주었다.
이 사건 부속서의 경우 (…) 한국이 이미 행한 3년간의, 중국산 마늘에 대한 긴급 수입 제한 조치를 이 이후에는 다시 연장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선언한 것으로 집행적인 성격이 강하고, 특히 긴급 수입 제한 조치의 연장은 국내법상 이해관계인의 산업 피해 조사 신청이 있는 경우 무역위원회의 조사와 건의를 거쳐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결정하도록 되어 있어 중국과의 합의로 그 연장 여부가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으로 볼 수 없[다]. (헌법재판소 2004. 12. 16. 선고 2002헌마579 결정) |
이 헌법재판소 판례의 의미는 무엇인가? 중국과의 마늘 합의가 재경부 장관을 최종적으로 구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법적 효력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중국과의 마늘 합의가 국내법적 절차에 우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경부 장관이 중국과의 마늘 합의대로 긴급 수입 제한 관세를 반드시 해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헌법재판소 판례에 의할 때, 미국과의 광우병 검역 합의는 농림부 장관을 최종적으로 구속하지 못한다. 국내법적 효력이 없으며, 국내법적 절차에 우선하지 않는다. 농림부 장관은 미국과의 합의한 대로만 검역 조건을 고시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과 미국이 합의한 것은 기껏해야 농림부 장관의 고시 내용에 관한 것으로서, 이는 한국의 헌법-법률-대통령령-총리령-부령에 우선할 수 없다.
나아가, 나는 미국과의 합의가 국제법적으로도 구속력이 없다고 해석한다. 미국과의 합의는 한국 농림부 장관의 정책 수행상의 약속에 지나지 않을 뿐, 한국이 이를 이행해야 할 국제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 가령, 한국이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여,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시 수입 중단 권한을 한국이 갖는 것으로 고치더라도,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단지 도덕적 신의적 문제만 생길 뿐이다.
나의 이러한 해석론은 외교통상부에게 빌린 것이다. 외교통상부 장관은 2003년 5월 9일, 헌법재판소장에 보낸 하나의 공문을 보냈다. (문서번호 통아태 27200-332) 조금 길지만 인용하자.
살피건대 정부대표에 의한 정부 간 합의가 있을 경우 (…) 그 합의가 국제법적으로 권리 의무를 설정하고 규율을 받는 합의인지 아니면 신의에 기초하여 정치적·도덕적으로 준수하여야 하는 정책 수행상의 약속인지를 구별해야 합니다. (…) 2000.년 6월 28일부터 7월15일까지 북경에서 전개되었던 한중 마늘 협상에서 한국 측 수석대표는 정부 간 신의에 기초하여 선언적인 성격을 띤 이 사건 조항을 서한으로 작성하여 중국 측에 교부하면서 위와 같은 취지의 정책 수행상의 약속을 한 것이고, 이는 우리 정부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하여 그 내용을 준수하려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합니다. 청구인 측은 이와 관련하여 외교통상부 장관이 무역위원회에 마늘 세이프가드 조치 연장에 대한 반대 의견을 보내며 그 이유로 양국 간 합의 내용의 위배에 따른 중국 측과의 심각한 통상마찰가능성, 중국 측 보복 조치시 예상되는 심대한 정치 경제적 손실가능성을 들었던 점 등을 거론하면서 마치 우리 정부에서 이 사건 조항의 법적 구속력을 인정한 듯이 주장하고 있으나, 만약 이 사건 조항에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였다면 그에 따른 의무 이행의 강제 내지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 문제를 거론하였어야지 상호 통상 분쟁 등 이 사건 조항과 직접적인 관계없이 신의성실의 원칙 및 정치적 또는 외교적 관계에서 파생되는 반작용을 그 불이행의 결과로 거론할 이유가 없는 것이며 단지 합의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고 하여 법적 구속력을 인정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2면, 4면) |
이 긴 주장의 핵심은 바로 위에서 본 중국과의 마늘 합의는 재경부 장관의 정책 수행상의 약속일 뿐, 거기에 국제법적 구속력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국과의 마늘 합의서에 의해 국제법률 관계가 설정되지 않으며, 합의서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국제법적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도덕적 문제만 생길 뿐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외교통상부의 공식 견해였다! 그리고 앞에서 본 헌법재판소의 판례는 바로 이러한 외교통상부의 견해를 반영한 것이었다.
한국 정부가 다른 나라와 체결한 합의에 대하여 그 국제법적 구속력을 부인한 사례는 또 있다. 한국은 2005년에 쌀 협상을 미국과 하면서, 쌀 협상 결과 이행을 위한 별도의 기술적 절차적 사항에 대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합의서의 내용은 매우 구체적인 것이었다. 가령 한국은 미국산 쌀에 독점 부여된 쿼터를 경쟁 입찰을 통해 구입하며, 3회 유찰되면 입찰 물량은 미국산 독점 입찰 대신 국제 경쟁 입찰에 부치며, 한국 정부가 구입한 미국산 쌀을 한국 시장에서 공매를 통해 판매하며, 인터넷 등을 통해 공매 일자나 공매 일량 등을 사전에 공표한다는 등의 매우 세세한 것이었다. 과연 이 합의는 국제법적 구속력이 있을까?
농림부 장관은 2006년 2월 7일에, 소송대리인을 통해서 헌법재판소에 다음과 같이, 쌀 협상 과정에서 미국과 체결한 쌀 협상 양자간 합의문의 국제법적 구속력을 부인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양자 간 합의라고 하여 다 조약이라고 볼 수 없는데, 실제로 이 사건 합의문은 관련 국가들을 확정적으로 구속한다기보다는, 상호 노력한다는 신사협정적인 내용과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상의 조약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고, 오히려 국제법상 신사협정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입니다. (10면) |
위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쌀 협상 이행 합의 문서가 헌법재판소에 제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국제법적 구속력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판단하지 않았으나, 이동흡 헌법재판관은 농림부 장관의 의견을 받아들여, 미국과의 쌀 협상 이행 합의문이 구속력 없는 신사협정에 해당한다고 명시적으로 판단했다. (헌법재판소 2007. 7. 26. 선고 2005헌라 8 결정) 즉 이동흡 헌법재판관의 해석에 의하면, 미국과의 쌀 협상 이행 합의문은 국제법적 효력은 없는 것이다.
나는 미국과의 광우병 검역 합의 또한 중국과의 마늘 합의와 미국과의 쌀 협상 합의와 마찬가지로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해석한다. 미국과의 검역 기준 합의는 선언적인 것이다. 신사협정(gentlemen's agreement), 곧 농림부 장관의 정책 수행 상의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 그 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는 미국과의 합의에 대하여 조약 체결 절차인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 공포 등의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다. 이는 정부 스스로가 미국과의 합의를 국제법상 조약 체결로 의도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둘째, 합의문 부칙 1항은 아래와 같이 농림부 장관이 그 내용을 정식 고시하지 않으면 미국과의 합의는 효력이 없도록 합의되었다.
1. This notice will go into effect on the date of its notification. (이 고시는 공고일로부터 유효하다.) |
보다시피, 미국과의 합의는 그 자체만으로는 완결적인 효력을 갖지 못하는 불완전한 것이다. 만일 어떤 국제간의 합의가 그 발효 자체를 한 나라의 일개 장관이 알아서 정하는 고시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로 되어 있다면, 이러한 합의는 하나의 정책 약속으로 보아야지 이를 국가간에 직접 구속력이 있는 조약으로 볼 수는 없다.
셋째, 미국과의 합의 의사록(Agreed Minutes) 자체에 한국의 행정절차법에 의한 한국민의 의견 수렴(public comment)을 위한 입법예고가 명시되어 있다. 입법예고 내용의 수정 가능성을 처음부터 완전히 배제하고 시작하는 입법예고는 본질상 입법예고라 할 수 없다. 미국이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 21장에서 입법예고 기간을 현행 20일에서 40일로 늘리는 것을 관철한 것은 입법예고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미국과의 합의 사항은 그 수정이 가능함을 처음부터 전제한다. 최종적인 구속력이 없다. 농림부 장관의 정책 수행 상의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
넷째,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의 손해 배상과 같은 강제력 조항이 없을 뿐 아니라, 합의문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는 강제적 방식에 대한 조항도 없다. 그저 합의문 25항은 합의문의 해석(interpretation)이나 적용(application)에 관한 문제가 생길 경우 상대방에게 협의(consultation)를 요청할 수 있도록 되어 있을 뿐이다. 즉 합의문의 법적 효력을 담보할 법적 장치가 없다. 합의문은 한국 농림부 장관이 자신의 정책 방향을 미국에게 제시해 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미국과의 합의는 국내법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법적 효력이 없다. 그것은 국내법적으로는, 국내법에 우선하지 못한 낮은 등급의 합의이며, 국제법적으로는 구속력없는 신사협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재협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농림부 장관의 고시 공고이다. 놀랍게도 농림부 장관은 오는 15일, 그러니까 오는 13일, 입법예고가 끝나는 날로부터 불과 이틀 후에 고시 공고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입법예고인가?
만일 정말로 농림부 장관이 15일에 고시를 강행한다면, 이제 정말로 이명박 정부에게 시간과 기회가 더 없을지 모른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입법예고 제도의 본질에 맞는 충실한 입법예고를 하는 것이다.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제도 선진화라고 자랑했다. 정부가 먼저 이번 광우병 합의부터 그를 실천하는 것이 좋겠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규정대로 입법예고 기간을 최소한 40일, 아니 그 이상으로 연장하기 바란다. 미국 정부는 애완동물 개와 동물에게 사료로 먹여서는 안 되는 광우병 위험 부위를 결정하는 데에, 무려 3년 10개월 동안에 입법예고 및 국민의견 평가를 하였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지금 한국인에게 제공되어서는 안 되는 광우병 위험부위를 결정하는 작업을 불과 22일 만에 끝내려 하고 있다. 그러면 안 된다. 국민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독소조항을 수정하여 추후에 공고하기 바란다. 만일 정부가 이렇게 할 의지만 분명하다면, 미국이 먼저 재협상을 제안할 것이다. 아쉬운 쪽은 미국이다.
정부가 진정 문제 해결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오는 15일로 예정된 공고를 연기하라! 그렇더라도 국제법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한국이 충실한 입법예고 절차를 위해 공고를 연기했다고 해서, 이를 미국이 시비 삼을 수 없다.
우리는 미국과의 합의 내용 중 독소 조항을 국제법 기준에 맞게 합리적으로 수정하여, 공고할 국제법적 권한이 있다. 가령,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 발생할 경우, 한국은 세계무역기구 협정에 따라 잠정적으로 수입중단을 취할 수 있도록 공고할 수 있다. 국제법상 정당한 이 조항에 대해, 미국은 이를 법적으로 따지지 못한다.
누가 재협상을 불가능하다고 하는가? 모든 것은 우리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 정부가 재협상을 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재협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광우병 협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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