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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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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보고] <야생초 편지> 황대권 씨

야생동물 '로드킬'을 다룬 다큐멘터리 <어느 날 그 길에서>가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변변한 광고 하나 없이 입소문만으로 사람을 극장으로 이끈 이 영화는, 관객의 요청의 최근 연장 상영을 이끌어냈다. 이 영화를 만든 황윤 감독의 또 다른 다큐멘터리 <작별>도 극장에 같이 걸린다.

<프레시안>은 생명의 가치가 헐값이 된 시대에, 생명의 가치를 되묻는 이 영화를 응원하는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야생초 편지>의 황대권 씨가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보고 글을 보내왔다. 그는 영화를 보고 "인간 아니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편집자>

☞첫 번째 글 :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죽어간다"
☞두 번째 글 : "그들이 본 세상은 얼마나 추악한지요"

☞세 번째 글 :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로드킬로 죽어가는 야생동물은 편리와 속도와 돈과 무관심으로 출렁이는 세상의 파도에서 희생되는 모든 가엾은 것들의 이름이다."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만든 황윤 감독의 제작 일기)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화창한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경상도 어느 도시에서 강연을 마친 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간밤에 잠을 설친데다 막 2시간짜리 강연을 마친 뒤라 몸이 몹시 피곤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졸음마저 막무가내로 쏟아졌다. 옆에 앉은 동승자가 불안한 눈초리를 계속 보내더니 잠이 깰 때까지 자기가 대신 운전을 하겠단다.

운전 경력이 일천한 그였지만 한적한 시골 길이고 하니 별 일 있으랴 싶어 운전대를 넘겼다. 조수석에 앉아 한참을 졸았을까?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무엇이 나동그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급히 차를 세우라고 하고는 나가 보았다. 고라니 한 마리가 차 앞에 쓰러져 있었다. 아, 이런! 기어코 내 차도 로드킬 딱지를 붙이게 되었구나! 그 때까지도 그 서투른 운전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태파악 조차 못하고 있었다.

나는 차의 주인으로서 응당 이 살상 행위에 책임이 있었다. 졸음이 오면 쉬어갈 일이지 무에 그리 급하다고 초보 운전자에게 핸들을 맡긴단 말인가. 한동안 자신에 대한 분노와 함께 자괴심으로 어찌 할 줄을 몰랐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고라니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일단 고라니를 끌어 도로 옆으로 붙여놓고 인근 경찰서로 전화를 했다.

경찰관은 대수롭지도 않게 근처 아무데나 묻어버리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황당했다. 다시 동물보호협회로 전화를 걸었다. 거기에서는 친절하게도 사고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지부를 알려 주며 그리로 연락하라고 한다. 그러나 그 가까운 지부라는 곳이 적어도 차로 한 시간 이상을 달려야 하는 거리였다. 고라니는 아마도 수 분 내에 숨이 멎을 것이었다.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사체를 싣고 그 먼 데까지 가야 할 필요가 있는가? 어차피 사체를 가져다주어야 장부에 기록만 하고 땅에 묻을 텐데. 나는 도로 옆 풀밭에 묻어 줄 양으로 삽을 구하기 위해 멀리 보이는 공장을 향해 뛰어갔다. 가다가 한 늙수그레한 아저씨를 마주쳤지만 나는 오로지 삽을 구할 생각에 사로잡혀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공장에 들어서니 마침 인부들이 한바탕 일을 끝냈는지 잠시 쉬고들 있었다. 여차저차 사정을 이야기 하고 삽을 하나 빌려서 사고 현장으로 허겁지겁 달려왔다.
▲황윤 감독의 <어느 날 그 길에서>. ⓒ프레시안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영문인가? 고라니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차 안에 기다리고 있던 동승자도 모른다고 한다. 저 멀리에 아까 마주친 아저씨가 걸어가고 있었지만 거기까지 뛰어가서 물어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틀림없이 저 아저씨가 나 몰래 어딘가에 숨겨놓고 내가 어서 떠나기만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는 이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한다.

하릴없이 공장으로 돌아가 삽을 반납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는 나의 심정은 착잡할 뿐이었다. 아, 나란 인간은 정말로 구제불능이구나. 운전자의 기본 수칙도 지키지 못한 상태에서 사고가 났음에도 그 처리마저도 상대방의 절도 행위에 은근슬쩍 묻어가다니! 나는 사고 당시보다 더한 자괴감에 사로잡혀 이참에 야생동물의 철전지 원수인 자동차와 결별해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잠은 이미 멀리 달아났다.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보고 남몰래 감추고 있었던 로드킬의 기억을 끄집어내었다. 부끄러운 일을 공개함으로써 망각에 의한 무책임을 조금은 더 줄여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그런데 황 감독의 영화를 보니 그동안 내가 모르고 밟아 죽인 작은 동물이 훨씬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긴 작은 개구리나 두꺼비, 뱀, 지렁이 등은 육중한 차바퀴에 깔려도 운전자가 알아차리기 어렵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한 그러한 무의식적인 살상행위는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로드킬은 먹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동물을 살상하는 행위와 어떻게 다를까? 법정에서는 의도적 살상을 훨씬 무거운 범죄로 보는데 그 대상이 동물일 경우 의도하지 않은 살상이 의도한 살상보다 더 무겁게 보이는 건 왜일까?

나는 우리 국민 모두가 황윤 감독이 만든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보고 이 문제를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생태계 먹이사슬의 하나로서 인간의 살상행위는 어디까지 허용되며 어떤 조건에서 살상이 일어나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지, 모두에게 안전한 도로 설계는 어떠해야 하며, 늘어나는 도로의 길이만큼 과연 인간의 행복도 커진 다고 볼 수 있는지 등등.

길바닥에 나뒹구는 로드킬의 잔해만큼 약자에 대한 우리사회의 태도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어느 날 그 길에서>, <작별> 개봉관 현황

"이 영화평이 조금이라도 누리꾼 분들의 눈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정말 한 분이라도 더 많이 이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이, 인간만이 살지 않는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관객 'redglass2U'

서울 :
인디스페이스 (명동 중앙시네마. 4/20부터 화, 목, 일요일 상영) http://cafe.naver.com/indiespace
하이퍼텍 나다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4/28일부터 연장상영 시작) http://cafe.naver.com/inada
('하이퍼텍 나다' 극장에서는 <어느 날 그 길에서>만 상영됩니다.)

광주 :
광주극장 (4/11부터 2주일 상영 예정) http://cafe.naver.com/cinemagwangju

인천 :
영화공간 주안 (4/15일부터 상영) http://cafe.naver.com/cinespacejuan

공동체 상영 신청 : http://www.OneDayontheRoad.com | oneday2008@naver.com
(극장 상영기간 동안은 되도록이면 극장에서 관람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극장에서는 좋은 화질과 음질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고, 단체관람 혜택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단, 극장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는 공동체 상영을 통해 영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문의: 이상엽 프로듀서 (유선전화) 070-7578-3628 | 011-9060-9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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