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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전범국가의 대통령이 되시렵니까?"

[현장] 자이툰부대 출발 저지 위한 밤샘투쟁, 자이툰 오전 7시 파병

2일 오후 1시 광화문 열린시민마당 출발, 오후 4시 경기도 광주시 매산리 자이툰 부대 앞 집회시작, 장장 4시간 동안 폭염속에 진행된 파병반대·파병철회 집회 속에서도 파병저지 열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자이툰 부대 선발대 파병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만큼 오히려 열기와 의지는 더욱 확고했다

부대 정문 앞 진입과정에서 두차례 경찰과의 격한 몸싸움 끝에 정문 앞 점거. 경찰이 분사한 소화 분말가루도 이들을 막지 못했다.

***2시간의 휴식, 한결 다져진 파병철회 의지**

오후 8시부터 2시간의 휴식시간. 이날 집회 참가자의 대부분인 한총련 및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회원들은 휴식시간마저도 파병철회의 결의를 다지는 데 할애했다.

같은 또래의 전투경찰을 뒤로한 채, 이들이 펼치는 율동은 한동작 한동작 젊음의 패기와 열정이 녹아있다. 파병철회·전쟁반대·추가파병결사저지의 구호가 수백번 목놓아 외치지만 지친 기색도, 지겨운 내색도 없다.

자이툰 부대원들이 있는 이 곳도 이내 어둠이 내렸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이름모를 밤 벌레들이 목 언저리를 스친다. 기온은 내려 한결 선선하다. 노란색 불빛을 내뿜는 가로등 아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 속에는 파병관련 토론도 있지만, 으레 또래의 고민들을 나눈다. 스스로를 파병철회의 전사로 자임하지만, 또래의 고민을 나누며 전사를 넘어 우정과 동지애를 더욱 공공히 하는 모습이다. 20대 초반,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한 열정을 파병을 하루 앞둔 이날 다시 한 번 공유한다.

이들의 대화에는 파병을 강행하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짙은 실망감이 베여 있다. 한 대학생은 "수구보수세력에게 탄핵을 당해 사면초가에 빠졌던 노무현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을 들었다. 그 노무현 대통령이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목소리를 이렇게 외면할지 몰랐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전범국가의 대통령이 될 것인가"라고 탄식했다.

좁아진 취업문, 갈수록 격화되는 학점 경쟁으로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도서관과 학원에서 불 밝히고 머리를 싸매고 있을 시간, 이들은 그 시간을 오로지 파병철회를 위해 바치고 있다. 이들이 외치는 당당한 구호 이면에는 어쩌면 '청년실업'이 상징하듯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이들을 옥죄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위별 결의발언을 하던 한 대학생은 "8월달에 할일도 많고 준비할 일도 많지만, 파병철회를 위해 동지들과 이 자리에 함께 한 것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한다.

이들의 모습을 달가와 하지 않을 이들도 많다. '정신나간, 철없는 대학생'이라고 혹평하는 '어른들'도 있겠지만, 이들은 그런 세간의 평가에 당당하다. 다소 거칠지만 이들의 발언 속에는 파병과 전쟁을 지켜보면서 한 걸음 나아간 성숙과 고민의 깊이가 느껴졌다.

인간에 대한 예의, 생명에 대한 사랑, 평화의 중요성을 이들은 2004년 여름, 배워가고 있다.

공교롭게 이날 생일을 맞은 한 학생이 선·후배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동료들이 초코파이와 요플레로 만든 즉석 생일케잌이 그에게 전달됐다. 소박하지만 그보다 큰 선물이 없다는 듯 생일을 맞은 학생은 함박웃음이다. 한 선배는 "파병철회만큼 더 큰 선물이 없다"며 다시 한 번 후배들을 다독인다.

***밤10시, 평화 촛불집회 진행...11시 마무리**

밤 10시 <광야에서>가 멀리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단위별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집회 참가자들은 앉은 자리를 털고 노래를 따라하며 다시 부대 정문 앞에 모인다. 이날 마지막 일정인 평화촛불집회를 참석하기 위해서다.

집회를 주관하는 '파병반대국민행동'은 내일 일정을 위해 촛불집회를 최대한 짧게 끝낸다고 말한다. 정치 발언 두서넛, 함께 한 노래 서너곡으로 이날 마지막 일정은 마무리된다.

이경호 중앙대 총학생회장은 "청년실업,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이라크로 떠나는 자이툰 부대는 바로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며 "친구들이 사지로 가지 않도록 내일도 열심히 싸우자"고 말한다.

한편 파병반대국민행동은 3일 오전 7시 성남공항에서 자이툰 부대 선발대가 이라크로 떠난다고 판단, 3일 새벽 5시에 자이툰 부대 앞에서 재집결하기로 했다. 자이툰 부대가 헬리콥터를 통해 이동한다고 판단, 밤새 이를 막을 전략을 수립할 것으로 보인다.

낮에 데워진 아스팔트는 여전히 뜨겁다.

***3일 오전 7시 성남공항 앞**

3일 새벽 4시30분경 자이툰 부대를 실은 헬리콥터의 엔진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부대 앞에 노숙을 하는 인원들은 인근 지역에 흩어져 있는 동료들에게 긴급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예상된 일이지만 모두들 긴장하고 불안한 모습이다. 긴장과 불안은 거대한 헬기 소음이 커질 수록 증대됐다.

파병반대국민행동 지도부는 새벽 5시 집회 대오를 추스린 다음 버스에 탑승시켰다. 5백 남짓한 대오다. 목적지는 자이툰 부대가 출발하기로 예정된 성남시 서울공항이다.

오전 5시30분경 서울공항에 도착한 집회대오는 서울공항 입구를 전경버스 5여대로 봉쇄하고 기다리고 있는 경찰병력을 마주해야 했다. 자이툰 부대가 탄 민간 항공기가 이륙을 하는 시각은 오전 7시.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경찰과 대치하던 와중, 대오 가운데서 좀더 강한 투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집회대오는 일어섰고, 경찰들은 진압 방패를 바투잡았다. 잠시 후 30여분간의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찰이 능수능란한 병력 이동과 재배치를 보여줬지만,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성난 집회대오를 막아내기 역부족이었다. 일부 경찰병력들은 집회 대오의 힘에 밀려 대오 가운데 갇히기도 했다.

위기를 느낀 경찰은 배가된 병력을 투입했고, 집회대오를 감싸기 시작했다. 이때 일부 한총련 및 민노당 학생당원들이 공항 입구를 봉쇄하고 있는 전경 버스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자칫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긴장감은 더욱 커졌다. 아래 학생들은 필사적으로 올라가려는 동료의 발을 받혔고, 전경 역시 버스 위에서 올라오는 학생을 제지했다.

그러기를 10여분. 이내 전경버스 위를 학생들이 점거에 성공했다. 이들은 '학살동맹 침략동맹 한미동맹 파기하라', '파병을 중단하라, 국가보안법을 철회하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오전 6시 40분부터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비행기 이륙 시간이 20분 남짓 남았다. 공항 맞은 편 산위에 올라가 상황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시시각각 자이툰 부대를 실은 항공기가 이륙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집회의 긴장감은 최고조로 이르렀다.

이윽고 오전 7시. 파병반대국민행동 지도부는 민간 항공기가 곧 이륙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지도부는 파병을 막지 못한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정리 대회를 갖추기 위해 대오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때 전경 버스 위를 점거하고 있던 학생들이 "버스를 넘어 비행장에 들어가자"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며 투쟁을 호소했다. 지도부는 정리 발언을 하는 가운데 일부 집회대오는 자리에 일어서 독자적으로 구호를 외쳤다.

이내 지도부도 마지막까지 투쟁을 하기로 결정하고 다시 경찰들과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버스위는 완전히 집회 참가자들에게 점거됐고, 경찰들도 더 이상 집회 참가자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병력 일부를 철수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오전 7시15분. 자이툰 부대를 실은 항공기가 마침내 이륙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비탄의 목소리가 분노의 목소리에 섞여 들렸다.

지도부와 학생대오간의 잠시간의 갈등은 천영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의 발언으로 잠재워졌다. 천 대표는 "이제 우리는 지금껏 파병철회 투쟁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앞으로는 투쟁의 양상이 변해야 한다"며 "이 순간부터 노무현 대통령에게 가졌던 모든 미련을 버리고 정당의 차이를 넘어,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경계를 넘어 한 판의 큰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회 대오는 천 대표의 호소에 동조하며 "가자. 청와대로!"라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오전 7시30분 집회 대오는 해산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들은 오전 10시 청와대 앞에 집결하기로 했다. 이미 날은 완전히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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