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배우들 중 '수퍼 히어로'와 거리가 먼 이미지의 소유자 중 한 사람이 바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43)이다. 1992년 <채플린>에서 보여줬던 걸출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하면 가장 먼저 떠오는 것이 바로 '마약'이기 때문이다. <숏컷>(1993) <온리 유>(1994) <원 나이트 스탠드>(1997) <원더 보이즈>(2000) 등 꾸준히 좋은 작품들을 내놓는 가운데에서도 그는 마약 복용으로 인한 체포와 재판 스캔들로 수없이 여러번 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반복되는 체포와 재판들.그 중간중간엔 마약중독재활센터를 제집 드나들듯이 했고, 별거와 이혼으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TV 인기시리즈 <엘리의 사랑찾기(원제 엘리 맥빌)>로 재기하는가 했더니, 이내 마약복용으로 경찰에 체포돼 퇴출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동세대 최고의 연기력을 가졌다고 평가받아온 다우니는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스스로 시궁창에 처박아넣기 위해 안달하는 듯 보였다. 다우니는 이제 그저 고만고만한 작품들에 출연하는 2류 배우로 전전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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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 |
그랬던 그가 달라졌다. 변했다. 그것도 블록버스터영화의 '수퍼히어로'로 말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수퍼히어로'.지금까지 그것은 물과 기름처럼 전혀 어울려보이지 않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기를 만들어 팔아 돈더미에 올라앉은 냉혹하고 방탕한 억만장자에서 '도덕적 깨우침'을 통해 수퍼히어로로 스스로 거듭나는 스타크 역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만큼 딱 들어맞는 배우를 찾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조 파브로 감독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5월 5일자)과의 인터뷰에서 다우니 이외엔 <아이언맨>의 스타크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없다는 사실을 기획단계에서부터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토니 스타크는 도덕적 깨우침을 체험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도 하고, 실수를 인정도 하는 그런 남자다"라고 그는 말했다. 한마디로, 인생살이의 실수와 후회에 관한한 다우니는 준비된 배우란 말이다. 물론 원작사인 마블 코믹스와 투자배급사 파라마운트가 처음부터 다우니를 탐탁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흥행을 위해서는 좀더 젊고 멋진 외무의 남자배우가 유리했기 때문이다. 영화사 간부들의 의구심이 사라진 것은, 카메라 오디션에서 보여준 다우니의 놀라운 연기력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우니가 카메라 오디션을 받기는 17년전 < 채플린> 오디션 때 이후 처음이었다. 그만큼 다우니가 스타크 역할을 간절하게 원했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다우니는 최근 국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채플린>때처럼 내가 나서서 역할을 따내야했던 것이 사실이다. 보통 스크린 테스트 경우 3신을 연기한 다음 결정이 내려지는데, 나는 첫 신의 첫 테이크를 찍고 나서 바로 (감독의) 믿음을 얻었다"고 밝혔었다. 타임에 따르면, 촬영이 들어간 이후에도 반신반의했던 영화사측이 <아이언맨>의 성공을 확신했던 것은 지난 여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한 만화관련 행사 때였다. 여기서 <아이언맨> 골수팬들이 다우니를 열렬하게 환영했던 것. 원래 출판만화광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작품이 영화란 대중적 문화상품으로 변질되는데 못마땅해하거나, 까다로운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하지만 다우니에 대한 반응은 전혀 달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인생의 극적인 부침을 겪고 변화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다우니만큼 제대로 이해하고, 애정깊게 그려낼 배우는 없다는 점을 골수팬들은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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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 아메리카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1965년 미국 뉴욕 예술가 동네인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립영화 감독, 어머니 역시 독립영화에 주로 출연하는 배우였다. 부모는 그가 13살되던 해에 헤어졌다. 다우니는 어린시절부터 아버지 영화에 출연하면서 세상을 배웠다. 그뿐 아니다. 영화 세트장에서 마약도 배웠다. 타임에 따르면, 아버지가 구해놓은 마약을 아들이 복용한 적도 있다고. <백 투 스쿨>(1986) <에어 아메리카>(1990) 등 다양한 할리우드 영화들에 얼굴을 내밀었던 다우니는 92년 인생의 중대한 전환기를 맞게 된다. 바로, 찰리 채플린의 인생을 소재로 한 리처드 아텐보로감독의 <채플린>에서 영화사에 남을 명연기를 펼쳐보인 것이다.그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했다. 다우니는 타임과 인터뷰에서 그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하지만 그 이후 17년동안 진정으로 나의 크리에이티브 에너지를 집중할 만한 그 어떤 모멘텀도 찾지 못했었다." 다우니의 말처럼, 그 이후 그의 삶은 내리막길이었다. 결혼-별거-이혼의 과정을 거쳤고 , 마약중독에 빠져 심신이 파괴됐다. 실오라기 한올 걸치지 않는 맨몸으로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선셋대로에서 경찰에 체포된 적도 있고, 마약에 취해 한밤중에 남의 집을 자기 집으로 착각해 들어가 잠을 자다가 이튿날 발견된 적도 있었으며, 마약중독재활치료소를 수없이 들락거리기도 했다. 2002년 우디 앨런 감독은 <멜린다 & 멜린다>를 촬영하던 도중 다우니를 해고한 적이 있다. 이유는, "다우니를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6년간의 꾸준한 재활치료덕분에 다우니는 현재 마약중독으로부터 벗어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2003년작 <고티카> 촬영 당시 만난 제작자이자 아내 수잔(34)의 힘이 컸다. 2년반전 수잔과의 결혼으로 다우니는 가정의 안락함과 따뜻함을 느끼게 됐고, 이제는 스스로 '패밀리맨(가정적인 남자)'라고 자랑하고 다닐 정도가 됐다. 정서적,심리적 안정은 작품 활동으로 연결됐다. 다우니는 올 한해동안 <아이언맨> 이외에 <트로픽 선더>와 <솔로이스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트로픽 선더>는 흑인병사 역할로 전쟁영화에 출연하게 된 배우이야기를 다룬 블랙코미디이고, <솔로이스트>는 로스앤젤레스 거리의 천재 걸인 첼리스트(제이미 폭스)로부터 인생의 깨닫음을 얻는 저널리스트를 소재로 한 무게있는 작품이다. <아이언맨> 경우 현재 세번째 시리즈까지 출연계약을 맺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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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티카 |
다우니는 요즘 마약 대신 쿵후 훈련과 요가에 푹빠져 있다. 그는 자신을 도와주는 이른바 '팀 다우니'를 이끌고 다니는데 , 이 팀은 쿵후선생님, 요가강사, 마사지 테라피스트, 허브 치료사 등등으로 구성돼있다. 팀장은 물론 아내인 수잔이다. 다우니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랜스 암스트롱에 비유했다. 사이클 선수 암스트롱이 암을 이겨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듯이, 자신도 '서바이벌(생존)'을 위해 '팀 다우니'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국내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특정한 시기나 나이를 지나면 버티기 힘들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끝까지 살아남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면 참 멋질 것 같다." 이제 그는 연기자로서 끝까지 살아남아 '유종의 미'를 거둘 수있을 듯하다. '마약'이란 검은 유혹에 다시 무릎을 꿇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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