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MB에게 지금 필요한 건 뭐? 절제와 여백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MB에게 지금 필요한 건 뭐? 절제와 여백

<고성국의 정치분석ㆍ43> 이런 말들을 쏟아내는 대통령

"지금까지 가장 비싼 쇠고기를 먹어 왔는데 소비자들에겐 좋은 일"
"(쇠고기 협상 판결에 대해) 미국 측에서도 상당히 고맙게 생각하는 것 같다."

쇠고기 협상 타결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방문 중 기자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이 말로 미뤄 보건데 이번 쇠고기 협상이 미국 측에 매우 유리하게 타결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꼭 대통령의 말이 아니더라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가 해결돼 한·미 FTA를 비준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됐다"고 한 것은 쇠고기 협상이 미국 측에 주는 긍정적 파급효과를 잘 보여준다. 이번 쇠고기 협상이 일방적인 퍼주기 협상이었다는 비판론이 힘을 얻는 배경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인식은 다른 듯하다.

"우리가 양보했다고 하는데 그렇게(말을) 한다는 것은 정치 논리다. (미국 쇠고기를) 강제 공급 받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된다. 국가적 차원에서 양보했다 안 했다로 말할 필요가 없다." 과연 철두철미 시장의 논리로 무장한 대통령답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 며칠 후 경기도 포천의 한 한우농장을 방문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현재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수준인데 10년 안에 4만 달러가 된다고 보면 웬만한 국민들은 비싸도 좋은 쇠고기를 먹을 것"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의 불가피성을 전제로 하면 대통령의 말은 모두 일리 있다. 소비자들 입장에서 비싼 쇠고기보다 싼 쇠고기가 더 좋을 것도 분명하고, 아무리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와도 소비자가 안사면 그만인 것도 분명하다. 그런가 하면 차제에 우리 한우를 고급화해서 1억 원짜리 소를 만들어 경쟁력을 강화할 수만 있다면 축산 농가에게도 더 할 수 없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발상 또한 그렇다. 사실 대통령의 말대로만 된다면 어느 축산 농가가 이번 협상을 마다하겠으며, 어느 소비자가 이번 협상을 환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쇠고기 문제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우리 국민들은 다 "잘" 이해했을까. 대통령의 말을 듣고 올바른 소비자의 자세로 가다듬었을까. 1억 원짜리 한우를 키워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겠다는 각오들을 다졌을까.
▲ ⓒ문화체육관광부

대통령의 말을 들은 사람들 중 일부는 이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 각오를 새롭게 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을 물정 모르는 소리로 치부한 사람들, 국민을 광우병의 위험에 노출시킨 굴욕적 협상에 대한 해명은 한마디도 없이 모든 책임을 소비자한테 미룬 무책임한 말로 들은 사람들은 없었을까?

대통령의 말은 매우 중요한 통치수단 중의 하나이다. 특히 미디어 정치 시대에 대통령의 말은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행사하는 가장 위력적인 상징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의 말은 한없이 신중해야 되고 세심하게 준비돼야 하는 것이다. 아흔아홉마리 양보다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나서는 목자의 심정으로 우리 사회의 그늘 진 곳을 먼저 배려하는 관용의 정서와 어려운 사람의 손을 먼저 잡아주는 연민의 감성에 기반해 행해져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말인 것이다.

"(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친박'은 있을지 몰라도 '친이'는 없다" 는 식의 또 다른 "세 가르기식" 발언으로는 결코 '친이-친박'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다. "현실정치의 '잡다한' 문제는 당이 책임지고 해야 한다"는 식의 하대어법으로는 당이 "잡다한"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없다. "어느 누구도 정치 경쟁자가 아니다. 제 경쟁자는 외국 지도자다"라는 고압적 어법으로 대통령의 격을 올릴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자신을 낮추고 국민을 높일수록, 국민의 소리를 중히 듣고 국민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는 노력을 힘들여 해 나갈수록 지도자의 권위는 더 높아지는 법이다. 그러므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지금 정말로 필요한 것은 '절제와 여백'이다. 터질 듯한 에너지와 넘치는 추진력을 현장 이벤트 정치와 다변으로 표출시킬 것이 아니라 절제와 여백의 정치로 승화시킬 때, 그 에너지와 추진력은 국민의 자발적 동원을 이끌어 내는 무언의 권위와 설득력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점을 깊이 새겼으면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