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정규직 0명' 공장이 늘어간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정규직 0명' 공장이 늘어간다

[노동절특집①] 기아차·STX중공업·도루코의 경우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20년이 흘렀다. 그 해에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된 세월이다. 그만큼 노동자의 처지도, 그를 둘러싼 환경도 바뀌었다. 급작스럽게 늘어난 비정규직이 사회적 문제가 됐고, 같은 노동자 사이에서도 차별과 갈등이 존재한다.

2008년 오늘 노동절의 의미는 무엇일까.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금속노조 박점규 미조직비정규사업부장이 3편의 글을 보내 왔다. 20년 전의 '노조민주화 운동'이 오늘날엔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다. <편집자>

# 기아자동차 모닝공장
▲ '잘 나가는' 모닝공장 생산라인에 정규직 노동자는 얼마나 될까? 믿을 수 없겠지만 '0'명이다. ⓒ금속노조

충남 서산의 한적한 시골길에 있는 '모닝' 공장은 요즘 '대박'이 터졌다. '모닝'이 올해부터 경차로 분류된 데다 고유가로 인해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4월 14일 기준으로 누적계약대수는 6만3000대인데 출고차량이 2만8784대다. 주문하고 3개월을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을 정도다. 기아차는 부족한 엔진을 현대차 인도 공장에서 역수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잘 나가는' 모닝공장 생산라인에 정규직 노동자는 얼마나 될까? 믿을 수 없겠지만 '0'명이다. 자동차를 만드는 라인은 13개 업체 85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로만 채워져 있다. 모두 1년 계약직이다. 동희오토 소속 150여 명의 정규직은 품질관리, 생산과정 체크 등 사무관리직으로 현장을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자동차공장의 영원한 비정규직

이 공장은 기아자동차 공장이 아니다. 기아차와 자동차부품업체인 동희산업이 공동 출자한 최초의 자동차 외주공장이다. 회사 이름은 동희오토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자동차는 기아자동차 이름을 달고 팔린다.

시골 마을에 자동차공장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주민들은 너나없이 기뻐했다. 울산처럼 공업도시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꿨다. 군대를 막 제대한 20대 후반의 젊은이들은 '정규직'인 줄 알고 이 회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헛꿈'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원한 비정규직'이었다.

이들의 월급은 얼마나 될까? 2007년 법정최저임금은 3480원, '모닝'공장 1년차 노동자는 이보다 20원 많은 3500원이었다. 2년차는 3550원 수준이었다. 이 공장 설립과 동시에 입사해 만 5년을 근무한 노동자들이 주야 10시간 노동에 주말 특근까지 온 몸이 파김치가 되도록 일해서 받는 연봉이 2200만 원이다.

법정최저임금보다 20원 많은 시급

더 심각한 문제는 끔찍한 노동 강도다. '팔팔한' 청춘들인데도 1~2년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다. 85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 중에서 2003년부터 5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는 채 100명이 되지 않는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살인적인 노동강도·비인간적인 대우…. 1980년대 공장 그대로다. 이를 <조선일보>는 "기아차 화성공장의 생산성 2배"라며 치켜세웠다.

자본이 노리는 또 하나는 바로 '노조의 무력화'다. 회사는 2004년 3월 하청업체별로 일제히 기업별노조를 만들었다. 2005년 9월 4일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를 결성했지만 노동3권은 사실상 박탈되어 있다. 파업을 하면 원청회사는 하청업체와 계약을 파기하면 되고, 하청업체는 노조원과 계약을 해지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 STX중공업

선박용 저속디젤엔진을 생산하는 STX중공업에도 생산직 노동자 중에 정규직이 한 명도 없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노동부 창원지방노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담당 감독관은 생산 공정에 정규직은 몇 명인지, 하청업체가 몇 개 있는지, 하청노동자는 몇 명인지를 전혀 알고 있지 못했다.

강력히 문제를 제기하자 한참 후 담당 감독관은 정규직은 506명(계약직 27명 포함)이고 26개의 사내하청업체에 1840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고 알려왔다. 본사까지 포함된 인원이었다. "506명은 사무직과 관리직일 테고, 현장에 생산직이 한 명이라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그것까지는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28일 STX중공업에 전화를 걸어 생산 공정에 정규직이 있는지 묻자 한 직원은 "잘 모르겠다. 관리감독도 있을 수 있고, 현장에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26개 하청업체 1840명의 하청노동자들이 STX중공업 공장에서 배 엔진을 만들고 있는 것이고, STX중공업은 하청업체를 70명 규모로 잘게 쪼개 '관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금속노조 마창지역금속지회 소속 한 노동자가 이 하청업체에 들어갔지만 노동조합을 만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고, 노조를 만들었다가는 업체를 폐업하고 계약을 해지하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 도루코 문막공장
▲'정규직 없는 공장'은 대기업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는다. 식칼과 커터날을 만드는 도루코 문막공장에서 일하는 정규직은 사무직뿐이고 '칼 가는 노동자'들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금속노조

'정규직 없는 공장'은 대기업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는다. 식칼과 커터날을 만드는 도루코 문막공장에서 일하는 정규직은 사무직뿐이고 '칼 가는 노동자'들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7년 전인 2000년 도루코는 생산 공정을 4개로 나눠 팔았다. 부강, 원흥, 혜성, 선교라는 4개의 업체에 10여 명씩 나눠 모두 비정규직으로 만들었다.

아침 7시 50분에 일을 시작해 밤 8시까지 꼬박 12시간을 넘게 일하고, 때로 밤샘노동을 해서 받는 월급이 120만 원이 되지 않았다. 이 노동자들은 작년 10월 14일 금속노조에 가입했고 회사에 교섭을 요청했지만 도루코는 "우리 직원이 아니다"라며 교섭에 나오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은 2008년 4월 전북 군산에 선박블록공장을 가동하기 위해 2007년 460명, 2008년 200명 등 총 660명의 연수생을 모집했다. 2010년 선박건조 도크시설을 갖춘 제2조선소를 완공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18만 톤 급 20척을 생산하고 6500명의 고용효과를 유발한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이 660명은 모두 연봉 2000만 원인 사내하청 노동자들이다. 현대중공업은 만 1년이 지나면 정규직 응시 자격을 준다고 하고 있지만 군산지역 노동자들에게는 '정규직 없는 공장'을 만들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자본에게 사내하청은 '도깨비 방망이'

자본에게 사내하청 노동자는 도깨비 방망이다. 정규직 대비 40~50%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면 그만이다. 학자금 등 복지후생을 포함하면 30% 수준이다. 무엇보다 업체 계약해지와 폐업을 통해 '해고의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정신 나간' 하청노동자들이 '행여나' 노동조합을 만들라치면 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면 그만이다. 교섭 요구에 대해서는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그 뿐이다. 엇갈린 판결을 내리고 있긴 하지만 법원도 대체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수준이 아니다. '1석(石) 10조(鳥)'다.

'정규직 없는 공장'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118주년 노동절, 노동권을 박탈당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한숨과 절망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