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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 우리가 안한 게 있으면 알려달라"

[인터뷰] 장애인권활동가 김정하 씨

지난 20일 오후, 서울 원효대교 인근 강변북로 일산방면이 30분간 점거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장애인의 날'이었던 이날, 휠체어를 탄 장애인 20여 명이 도로에 뛰어들어 '자립생활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며 기습 시위를 벌인 것이었다. 이들은 애초 도로를 점거하고 행진을 하려 했지만 쫓아온 경찰의 제지로 포기해야 했다.

이곳에서 장애인들이 시위를 벌이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해 9월에도 50여 명의 장애인과 장애인 학부모가 마포대교 인근 강변북로를 점거하고 몇 시간동안 생존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었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단체들은 대통령, 서울시장 등이 나온 공식석상에서 기습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서울시청, 세종문화회관 앞, 국가인권위원회 등지에서 장기간 농성을 벌여왔다.

이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그토록 절실하냐는 호응도 있지만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비난이 적지 않은게 사실이다. 도로를 점거한 장애인에게 욕을 하는 운전자들, 이들을 도로에서 내몰려는 경찰들, 청사 앞 천막을 철거하려는 시청 직원의 표정에는 한결같이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장애인단체 역시 역시 이런 반응이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활동가는 "우리라고 왜 이렇게 힘든 방법을 택하겠나"라고 되물었다. 지난 10년간 장애인운동계에서 뼈가 굵은 그는 장애인권과 관련해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비장애인 활동가 중 하나다.

그는 "정부와 사회가 이런 것을 유도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조용히', '합법적으로' 할 수도 있는 일을 공연히 '시끄럽게' 만드는 배경에 대해 우리 사회가 관심을 보인 적이 얼마나 있었냐는 것.

서울 통인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실에서 김정하 활동가를 만나 보다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합법? 우리가 안 한 게 뭔가"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활동가 ⓒ프레시안

"얼마 전 남산에서 오세훈 시장이 축사를 하는 '사회복지인 남산걷기 대회'에서 기습 피켓팅을 벌였다. 장애인 복지시설 문제를 해결하라며 2년전부터 요청했던 면담을 해달라는 요구였다. 시장을 쫓아다녔더니 아랫선에서 이제야 만나자고 연락이 오더라. 그전에는 그나마 이런 연락도 없었다. 아무리 요구를 해도 그냥 생색내기, 대충 때우기 수준의 면담이었다."


그는 답답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난 3월 25일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장애인단체들은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다. 석암재단, 성람재단 등 비리가 드러난 복지시설에 대해 서울시가 조속한 조치를 취해달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한달 가량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울시 측과 장애인단체 사이에 제대로 된 면담이나 대화가 이뤄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다만 농성장을 치우려는 직원과의 싸움과 강제 해산을 경고하는 계고장만 날아왔을 뿐이었다.

"정부는 자꾸 '합법'을 얘기한다. 우리는 합법적으로 공문을 보내 면담을 요청하고, 민원을 제기했다. 또 1주일에 한 번씩 기자회견도 했다. 이를 서울시가 무시하니까 농성까지 들어간 거다. 그런데도 반응이 없다가 시장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약간 망신을 당하니까 연락이 온다.

관공서의 태도는 항상 그런 식이었던 같다. 종로구청, 양천구청, 서울시. 구두상, 서류로 요구하면 무시하다가 그 앞에서 집회를 하거나 농성을 하면 오직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나서는 거다. 우리는 정부가 이런 일을 유도한다고 생각한다."


"알면서도 놔두는 관료주의가 문제를 끌고 있다"

장애인시설의 인권침해와 비리 문제는 이미 잘 알려진 고질적인 문제다. 국내 최대의 복지재단 중 하나인 성람재단은 지난 2006년 1개 시설에서 27억 원의 횡령 혐의가 밝혀지는 등 비리가 속속 드러났다. 관리감독을 맡았던 서울시는 성람재단으로부터 강원도 철원 지역 세 개 시설을 기부채납 받기로 결정했지만 정작 재단 측이 채납을 미루고 있는 상태다.

석암재단 역시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긴 마찬가지다. 석암베데스다요양원 등 장애인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석암재단은 지난해 3월 서울시 감사 결과 약 1억700만 원의 장애수당을 부적절하게 집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재단을 설립했던 이부일 전 이사장은 지난달 6일 보조금 횡령, 사회복지사업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 전 이사장과 인척 관계인 제복만 현 이사장을 비롯해 시설장 2명도 공모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법적인 근거'가 없다며, 혹은 '재판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이유로 이제껏 마땅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장애인단체들은 법인허가취소, 보조금 중단 등 '합법적'인 규제 권한을 갖고 있는 서울시가 정작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한다.

"성람재단 문제는 8년 전인 2000년에 이미 서울시 안에서 보고가 됐다. 당시 서울시가 만든 자료에는 '성람재단에 인권유린과 국고보조금 횡령, 유용사태가 벌어지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이를 시설에서 가까운 철원군이 감독할 수 있도록 바꿔달라고 건의한 내용이 있다. 그런데 그런 문제를 인지했으면서도 제스처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공무원들이 보이는 태도다. 2~3년에 한번씩 자리가 바뀌다보니 자신이 이 업무를 맡았을 때 최대한 조용히, 아무 문제 없이, 편안하게 넘어가길 바라는 거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서는 순간 굉장히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발목 잡혀서 그 부서에 계속 남아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 테두리 이상을 하지 않는 거다. 이런 관료주의가 문제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본다."


"병 걸린 군인, 식중독 발생한 학교는 언론에 나와도 장애인은…"
그는 "모든 이가 밥 잘 먹고 등 따뜻하면 인권이 보장된다고 얘기할 수 있나"라고 되물으며 "우리 사회가 발전한 만큼 이제 장애를 갖고 있든 그렇지 않든 다양한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

김정하 활동가는 그간 정부와 장애인단체의 싸움이 소모적라고 인정했다. 시설 비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그는 특히 시설문제가 유독 지리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공개적으로 장애인을 차별하자, 교육을 못 받게 하자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장애인 시설은 법인이나 운영자 같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이들이 있다. 사태 해결이 되지 않고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지난 11일부터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있고, 지난해 4월에는 장애인교육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복지시설에 대한 공익이사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은 아직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복지시설은 100% 국가보조금으로 운영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법인 이사진들을 중심으로 한 반발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또 김정하 활동가는 "사회적으로 보편적인 인권 의식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서 교육이나 차별에 대해서는 일정 수준의 합의선이 있다"며 "그런데 시설 문제는 유독 수준이 굉장히 저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언론과도 싸워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언론이 시설을 취재할 때면 극심한 인권침해에만 관심을 갖고, 선정적인 보도를 추구한다. 성폭력, 감금, 사망이 있어야 기사가 된다. 그래야 인권문제로 등치가 된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의 호소는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밥 잘 먹고 따뜻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생각해봐라. 모든 이가 밥 잘 먹고 등 따뜻하면 인권이 보장된다고 얘기할 수 있나? 우리 사회가 발전한 만큼 이제 장애를 갖고 있든 그렇지 않든 다양한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시설에 고립된 사람들에게는 연고가 없거나 중증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이런 기회를 주지 않는게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또 그는 "장애인 문제가 사회적으로 소외된 문제"라고도 지적했다.

"군대에서 위암이 걸려 의과사 제대를 했는데도 사망한 군인 장병 얘기가 나왔다. 이후 군부대의 건강검진, 의료시설 개혁, 타 병원 이용 등이 바로 개선됐다. 그런데 더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장애인시설은 이슈가 되지 않는다.

시설 내 정신장애인들이 사망한 원인을 조사한 결과가 있다. 원인 중 폐결핵이 제일 많았다. 얼마나 의료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길래 이제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사망원인으로 간주되지도 않는 폐결핵이 원인으로 꼽히나. 말이 안 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주목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식중독 음식이 나왔다? 교장이 해고된다. 그런데 시설에서 그런 음식이 나왔다고 해서 시설장이 해고되나?

장애인 문제는 사회적으로 급이 다른 거다. 식중독 걸린 학생들도 불쌍하다. 그렇지만 시설 안에서 그런 삶을 20년 동안 강요받은 사람들이 더 절박하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언론조차도 이 문제에 주목하지 않는다."

"얼마나 소외되고, 고질적인 문제인지 얘기하고 싶다"

김정하 활동가는 결국 사태의 근본 원인에 대한 언론의 무관심과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가 장애인단체들이 끊임없이 시위와 농성을 벌이게 만드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저는 얼마나 소외됐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문제인가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장애인단체들이 지금까지 전형적인 형태만 밟아온 게 아니냐고들 얘기한다. 그런데 장애인들은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해결을 촉구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식은 대부분 다 해본 것 같다. 제보, 민원, 진정, 고발, 기자회견, 탄원, 캠페인, 집회, 농성까지… 의사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수단은 다 써본 것 같다.

정부는 시청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우리에게 파트너십을 갖자고 한다. 그런 얘기는 면담을 요구했던 2년 전에, 아니면 최소한 기자회견 때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서울시는 우리에게 협박하는 거냐고도 한다. 일개 장애인단체의 피켓팅을 협박이라고 하면 그동안 서울시가 직무유기를 한 건 뭔가.

정부는 농성장을 철거하라는 계고장은 보내면서 요구안에 대한 답변서는 보내지 않는다. 이게 우리 정부의 행태라고 본다. 불법 시위가 왜 들어왔나, 핵심은 뭐고 무엇을 해결해야하는가에 대해서는 보지 않고 시청 앞에서 나가라고 쫓는…."


"빵조각이 아닌 '권리의 메뉴'에 관심가져 달라"
김정하 활동가는 "정부는 시청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우리에게 파트너십을 갖자고 한다. 그런 얘기는 면담을 요구했던 2년 전에, 아니면 최소한 기자회견 때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2월 서울 혜화동 오세훈 서울시장 공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장애인활동가들의 모습. ⓒ프레시안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김정하 활동가는 "뭐가 해결되는 게 있어야 다른 걸 할 것 아닌가"라며 자조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난 9일 총선에서는 어느 때보다도 장애인계를 대표하는 비례대표들이 각 당에서 골고루 당선됐다. 1997년 처음 장애인 국회의원이 당선됐을 때와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다. 김 활동가는 "과거에 비하면 굉장히 정치권 내에서 입지가 넓어진 건 사실"이라며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 당사자보다 법인에 가까운 국회의원이 있는 한 앞으로의 전망은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 당사자인데도 법인 대표 입장에 서서 이런 행위를 했다.

그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시민의식' 역시 힘겨운 싸움이 좀처럼 끝나지 않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건 앞으로의 과제라고 본다. 외국에서도 보편적 시민의식이 생기면서 어느 누구도 강제로 공권력에 의해 수용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는 주장이 확대됐다. 이전에는 감호 문제만 봤다면 이제 사회복지시설, 정신병원, 정신요양시설 등까지 포괄해서 수용 문제를 보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은 그러지 않지만 그렇게 바뀔 거라고 기대한다. 희망 없이 어떻게 운동하겠나. 희망을 가져야 운동이 되지."


그는 마지막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벌여왔던 데스몬드 투투 주교의 말을 인용하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데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당부했다.

"신부님의 말 중 '나는 주인이 식탁에서 던져 주는 자선의 빵조각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완전한 권리의 메뉴를 원한다'고 한 명언이 있다. 나는 사회복지사, 정부, 시민 모두 장애인에 대해 '이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권리를 가진 인격체'라는 것을, 그래서 이들도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으레 '장애인의 날'이든 장애인 관련 행사가 열리면 그저 먹을 것과 기념품을 챙겨주고, 웃고 사진찍고 헤어지는 것만 생각하는 것 같다. 보편적인 선량한 마음까지도 싸잡아서 비난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빵조각을 주는 문제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지 말고 그들의 '완전한 권리의 메뉴'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달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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