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송두율은 '김철수'가 아니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송두율은 '김철수'가 아니었다"

[기고] 대법원의 '송두율 무죄' 판결을 보고

세계적인 사상가 위르겐 하버마스를 지도교수로 삼아 철학박사가 돼 독일의 유명 대학에서 사회학과 철학을 강의하는 교수, 일곱 권의 독일어 저서와 열 권이 넘는 한국어 책을 집필한 저자, 1974년에 독일에서 만들어진 재독 반독재 단체 민주사회건설협의회 초대의장, 여섯 차례의 남북해외학자통일학술회의를 평양에서 성사시킨 열정의 학자, 37년간 조국의 북쪽도 남쪽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던 말 그대로의 경계인, 두 아들과 부인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환갑의 아저씨, 칭호번호 65번 서울구치소 11동 상층 1방의 미결수, 9개월 만에 출소하던 날 리영희 교수, 이돈명 변호사와 포옹하며 아이처럼 웃던 출소자, 쫓기듯 독일로 돌아가 '내게 고향은 없었다'라며 고향의 봄을 노래한 슬픈 실향민…. 내가 들어 알고 2003년부터 송두율 대책위원회의 한구석에서 느낄 수 있었던 송두율 교수의 단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7일 재독 사회학자 독일 뮌스터대 송두율 교수 사건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렸다. 일부 파기 환송이 되어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시 재판이 열리기는 하겠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사실 이 사건은 이제 다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한 부분은 모두 원심 그대로 확정했고, 송 교수가 독일 국적을 취득한 이후 북한을 방문 한 것에 대해 유죄를 판결한 것에 대해 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하였다. 우선 오늘 판결의 중요한 핵심을 꼭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름을 들먹이기도 싫은 몇몇 일간지의 인터넷 보도는 마치 대법원이 송두율 교수에게 내려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형량이 너무 가벼워 더 높은 형량을 주라는 뜻으로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오보 아닌 오보들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송 교수를 거짓말쟁이, 빨갱이로 몰게 만든 혐의인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와 동일인물이라는 검찰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정된 것이다. 김철수의 자격으로 북으로부터 공작금을 받고 지도적 위치에서 간첩 활동을 했다는 것도 사실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김일성 주석의 장례에 참석한 것은 단순한 조문에 해당되어 죄가 아니라고 하였고, 독일 국적을 취득하고 북을 방문한 것은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도 하였다.
  
  거기에 대해 대법원은 "국가보안법상 탈출이란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지역을 떠나는 행위나 대한민국의 국민에 대한 통치권이 실지로 미치는 상태를 벗어나는 행위인데, 외국인이 외국에 살다가 반국가단체 지배 지역(북한)에 들어가는 행위는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송두율 교수가 독일 국적 취득 전에 북한을 방문한 것은 국가보안법상 제6조 1항 '탈출'에 해당하지만, 독일 국적 취득 뒤 북한을 방문한 것은 외국인의 신분으로 방문한 것이므로 '탈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사건을 되돌려 보냈다. 이는 대법원의 기존 판례를 완전히 뒤집는 판결로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 따라, '외국인의 북한 방문도 국보법상 특수 탈출에 해당된다'고 판단해 온 기존 판례를 변경한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분단된 조국의 남과 북, 동양사상과 서양사상, 부자나라와 가난한나라 등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 서로를 아우르고 공존하는 제3의 공간을 열고자 하며 스스로 경계인으로 살고자 했던 송두율 교수는 독일로 돌아간 후 많은 상념에 잠겼을 것이다. 독일로 돌아간 이후 발간한 송 교수의 저서에서 그는 37년 만에 찾았던 고향에 대해 "그리던 고향은 아니었네"라는 유행가 가사를 빌어 표현했고 2003년 가을부터 2004년 여름까지의 짧은 한국 생활을 "미완의 귀향"이라고 말했다.
  
  그의 강연을 듣고 싶어 하고 그의 저서에 서명을 받으려 줄을 서던 이들이 한순간에 등 돌리는 순간 그 노학자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자신을 독일까지 와서 억지로억지로 설득하여 한국에 데려온 기관과 그 사람들이 "송두율이 김철수인줄 알았다면 부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가 '국정원에 가서 조사 받을 것을 약속했기 때문'에 초청했다라고 하며 발뺌을 할 때 송 교수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준법서약서를 쓰거나 국정원의 조사를 받을 것이었다면 송 교수가 한국에 들어올 기회는 그 이전에도 많았다. 송 교수도 서울행 왕복 비행기 티켓 정도는 살 수 있는 경제력도 있었다. 그는 아마 자신을 한 평짜리 독방에 가두어 둔 한국의 공권력과 법원보다 자신을 그 한 평짜리 독방으로 친절히 안내하고도 냉큼 돌아선 이들이 더 밉지는 않았을까? 이성의 지혜는 엄숙하고 아름답다고 말하며 결코 그를 옹호하거나 그를 위해 변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일부 학자들은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
  
  국가보안법이라는 녹슨 칼이 세계가 존경하는 학자이자, 조국을 사랑하는 '한국인'을 다시"경계인"으로 만들어 37년 만에 찾아 왔던 조국을 떠나게 했다. 오늘의 이 판결이 송교수나 그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우연의 일치인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12월 19일 이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이들의 보도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사회과학서점에 대한 사찰과 20년간 진행해온 민가협 목요집회에 대한 감시가 시작되었다. 두 번의 정상회담으로 평화통일의 시대가 다가오는 듯 했지만 남북은 다시 험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관계의 살얼음판을 걷게 되었다. 국가보안법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냉전과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권력을 보위하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국가정책에 반하면 무조건 잡아 가두는 신공안정국의 도래를 걱정해야하는 답답한 시절이 다시 오고 있다. 이런 시기 대법원이 임동규 전 범민련 광주전남의장이 2001년 평양축전에 참석하여 북측 범민련 인사들과 미리 보고 되지 않은 회의를 한 것에 대해 "탈출·동조죄"를 인정한 원심을 무죄취지로 파기한 판결은 그래도 작은 희망을 보게 한다.
  
  흐르는 물을 산꼭대기로 끌어올려 뱃길을 만들려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이란 칼을 다시 빼어드는 것은 국민의 뜻과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다. 송두율 교수에 대한 무죄판결이 계기가 되어 국가보안법이 없어져야만 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국가보안법이 반인권, 반통일 악법이기도 하지만 너무 재미없고 너무 자존심 상하는 법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국가보안법, 이제 좀 제발 없애자고 말하고 싶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