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지나갈 것 같지 않은 시간이 지나갔어. 엄마는 지난 9일간 시간과의 싸움을 했단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은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피검사를 하러 가는 날이야.
대개 수정된 수정란이 내려와 자궁에 완전히 착상되기까지는 1~2주의 시간이 필요하지. 체외수정 때도 수정된 날로부터 2주, 즉 14일째에 임신 여부를 확인하게 돼. 별이는 수정된 지 5일째 날에 냉동되었으니, 해동시켜 엄마 자궁에 착상된 지 9일 만에 테스트를 하게 되었어. 얼음 속에 있던 기간은 5개월이 넘는데, 별이에게 있어 그 시간은 멈춘 시간이었으니까.
엄마는 지난 9일 동안 참 많이 궁금했단다. 과연 별이가 엄마 뱃속에 자리를 잡았을까, 세 명의 별이가 이식되었는데 그 중에 몇이나 엄마와 연결되었을까, 혹시나 이미 엄마 곁을 떠나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9일 내내 끊이지 않고 떠올랐어. 아마도 체외수정 전 과정 동안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이 기간이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과배란 주사도 난자 채취도 복수(腹水)도 힘들었지만, 내 안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을지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초조하고 힘들었지. 정말 내 안에 별이가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니까.
사람을 비롯한 포유류는 엄마의 몸 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자궁 속에서 아이를 키우기 때문에 임신 초기에는 임신을 진단하는 것이 쉽지 않아. 임신 후반기에는 태아가 커져서 배가 불룩하게 나오고 태동도 느껴지니까 아이가 무사히 있는지를 엄마 스스로 확인할 수 있지만, 초기에는 그게 쉽지 않거든.
물론 입덧이나 월경이 멎는 등의 간접적인 방법으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입덧은 사람에 따라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월경은 임신 외에도 다른 이유로도 건너뛸 수 있거든. 예를 들어 배란 주기를 관장하는 호르몬이 분비되는 뇌하수체에 이상이 있거나, 지나친 굶주림이나 다이어트로 인해 몸에 체지방이 부족한 경우에는 무월경이 나타날 수 있어. 특히 월경 주기는 정신적인 것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거나, 혹은 너무나 아이를 간절히 원할 때도 사라질 수 있어. 그래서 요즘에는 구별이 힘든 초기 임신을 판정하는 방법으로 호르몬의 일종인 hCG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단다.
hCG(human chorionic gonadotropin, 융모성 성선자극 호르몬)란 태반단백호르몬의 일종으로 태아의 태반 조직에서 생성되어 임신을 유지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야. 태아는 매우 일찍부터 hCG를 만들어 내는데, 임신 초기에는 hCG의 농도가 계속 증가했다가 임신 10주쯤에 정점에 달하고, 이후 약간씩 감소하기는 하지만 임신 후반부까지 지속적으로 분비되어 임신을 유지시켜주는 호르몬이야.
콩알보다 작은 태아는 장차 태반이 될 부위인 영양세포막에서 hCG를 분비해서 스스로를 보호한단다. 일반적인 상태에서는 체내에 hCG 농도가 극히 낮지만, 임신을 하게 되면 태아가 분비하는 hCG가 엄마의 몸속으로 유입되기 때문에 엄마의 혈액과 소변에 hCG가 급격하게 증가해. 따라서 혈액과 소변의 hCG의 검출 여부를 통해 임신을 초기에 진단할 수 있단다.
보편적으로 많이 쓰이는 방법은 소변 속의 hCG를 검출하는 거야.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임신 진단 시약은 바로 이 방법을 이용해. 임신 진단 시약 속에는 hCG 항체가 들어 있지.
임신진단시약이 임신 여부를 판명해 주는 원리는 항원-항체 반응을 이용하는 거야. 우리 몸에는 면역계가 있어서 외부 물질이 몸 안으로 유입되면 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물질이 만들어지지. 이 때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질을 항원(antigen), 항원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물질을 항체(antibody)라고 해. 항원과 항체는 마치 열쇠와 자물쇠 같아서, A 항원에 대해서는 A 항체만이 꼭 맞게 작용을 해. A 항원과 B 항체는 서로 맞지 않아서 결합하지 못해. 마치 하나의 자물쇠에 꼭 맞는 열쇠는 오직 한 종류 밖에 없어서, 다른 모양의 열쇠로는 자물쇠가 열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바로 이 항원-항체 반응을 이용하면 임신을 진단할 수 있지. 먼저 임산부의 소변에서 hCG를 추출해서 이것을 동물에 주입해. 주로 토끼를 많이 쓰는데, 토끼에게 사람의 hCG를 주입하면 토끼 몸의 면역체가 hCG를 항원으로 인식하고 이에 맞는 항체를 만들어내게 된단다. 우리가 할 일을 토끼가 항체를 만들 때까지 좀 기다렸다가 토끼의 혈액에서 hCG 항체를 추출해 내는 거지. 그리고 이 hCG 뒤에 색깔을 나타내는 색소 단백질을 달아서 막대기에 묻혀 놓은 것이 바로 임신 진단 시약이야.
이 진단 시약에 소변을 떨어뜨리면, 소변 속의 hCG가 진단 시약 속의 hCG 항체와 결합하게 돼. 꼭 맞는 열쇠와 자물쇠가 만나면 문이 열리듯이, 이렇게 꼭 맞는 항원과 항체가 만나면 항체 끝에 달린 색소 단백질이 색깔을 나타내게 되어 있어. 그래서 임신을 한 경우, 소변 속의 hCG가 진단 시약 속의 hCG 항체를 만나 뚜렷한 색깔을 나타내게 되지. 소변을 임신 진단 시약에 묻히면, 임신인 경우 보통 1~5분 내에 보라색이나 분홍색의 선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생겨난단다. 임신이 아닌 경우는 선이 생기지 않고.
임신 진단 시약의 검사창이 왜 두 개일까? 임신 진단 시약을 살펴보면 선이 생기는 검사창이 두 개가 있어. 설명서를 보면 검사를 했을 때, 색이 한 줄만 나오면 비임신이고 두 줄이 모두 나와야 임신이라고 쓰여 있지. 우리가 검사하는 것은 hCG 한 가지 뿐인데, 왜 검사창은 2개가 있는 걸까? 그건 검사 외에 항체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려주는 대조군이 있기 때문이야. 만약 진단 시약이 hCG 하나만을 검출하게 만들어졌다면, 검사창에 아무 것도 뜨지 않는 경우 임신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혹시 유통 과정에서 항체가 변질되거나 상해서 검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어. 항체는 단백질의 일종이기 때문에 변질될 수 있거든. 그래서 대조군 검사창에 따로 있는 거야. 대조군 검사창에 색이 나타나면 이 진단 시약은 변질되지 않은 제품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거지. 따라서 만약 hCG가 검출되지 않은 것처럼 나온다 하더라도 대조군 검사창도 깨끗하다면 이건 임신이 안 돼서가 아니라, 진단 시약 자체가 불량이라는 증거니까 다른 진단 시약으로 다시 검사를 해봐야 해. 옆의 그림에서 맨 위처럼 나오면 임신이 안 된 것이고, 가운데처럼 두 줄이 나오면 임신이 된 것이지만, 마지막처럼 아무 것도 안 나오면 테스트기 불량이니까 다른 제품으로 다시 하는 것이 좋다는 거지. 과학 실험에서는 항상 내가 알아보고자 하는 실험군과 이 실험군이 정확한지를 증명하기 위한 대조군이 필요하지. 임신 진단 시약 역시 이런 원리에 의해 검사창이 2개가 있는 거란다. |
이처럼 hCG는 초기 임신을 구별하는데 매우 중요한 호르몬이야. hCG는 소변과 혈액에서 모두 검출되는데 편리하기는 소변 검사법이 더 편리하지만, 정확하기는 혈액 검사법이 더 정확하지. 소변으로 하는 검사는 hCG가 있는지 없는지만 구별할 수 있지만, 혈액으로 하는 검사는 hCG의 존재 유무 뿐 아니라 hCG의 정확한 양도 측정이 가능하거든. 정상 임신의 경우라면 산모의 혈액 속의 hCG는 임신 10주까지는 급격히 증가되었다가 그 뒤로는 양이 좀 줄어들어서 출산까지 지속돼. 따라서 혈액 속 hCG의 변화 정도를 살펴보면 임신이 양호하게 지속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
엄마는 오늘부터 1주일의 간격을 두고 3번 혈액검사를 받을 예정이야. 일단 hCG가 10mIU 이상 검출되면 임신이 된 것으로 본단다. 그리고 별이가 엄마의 뱃속에 무사히 안착했다면 지금쯤 엄마의 혈액 속 hCG는 혈액 1㎖ 당 100mIU 정도 나올 테고, 1주일이 지날 때마다 그 값이 10배씩 증가할 거야. 만약 별이 형제들까지 모두 안착했다면 1주일 후 검사 결과는 20-30배씩 증가할 거고, 만약 오늘 검사 결과 hCG가 10mIU 이하라면 별이는 엄마 몸에 뿌리내리지 못한 것일 테지. 이밖에도 혈중 hCG의 농도로 유산과 자궁외 임신을 유추할 수도 있어. 혈액 내 hCG의 증가속도가 미미한 경우 자궁외 임신일 가능성이 높고, hCG 농도가 올라갔다가 떨어지면 유산이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어.
엄마는 잔뜩 긴장한 채 피검사를 받았어. 검사 결과는 오후에 나오는데, 전화로 알려준다더구나.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하루 종일 전화기만 뚫어져라 바라보았어. 언제쯤 전화가 올지 하고 말이야.
따르르릉~.
드디어 전화벨이 울렸어. 엄마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수화기를 받아들었어. 그 결과는? 혈중 hCG의 농도는 45.2mIU/㎖로 성공이래. 드디어 별이가 엄마 품으로 찾아온 거야!
참고 자료
식약청 홈페이지(☞바로 가기)
박기환 외, '인간 난자의 체외 수정 및 배아의 자궁내 이식 후 임신된 환경에서 혈중 hCG 측정에 의한 임신 결과 예측에 관한 연구', <대한산부회지> 제41권 제10호,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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