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올 6월까지 가계 대출에서 연대보증제도를 없앤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기업 대출에서는,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도를 없애지 않을 모양이다. 나는 1990년대 초반에 은행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중요하게 본다.
예나 지금이나, 은행에서 기업 여신 심사는 은행 여신의 꽃이면서도 지난한 숙제이다. 기업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기업이 속한 산업에 대한 이해도 필수이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말처럼, 금융의 본질적 기능을 위험 관리와 정보 생산이라고 하면 기업 대출이야말로 그 고갱이다. 만일 은행이 양질의 기업을 골라 낼 능력이 있어, 이들에 필요한 금융이 원활하게 들어간다면, 은행도 잘 되고 경제도 튼튼할 것이다.
나 역시 중소기업에 무역 금융을 제공하면서, 중소기업의 가치를 평가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에 관심을 쏟았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은행은 담보물과 대표이사 연대보증에 많이 의존했다. 쉽고 편한 길로 갔다. 기업의 가치보다도 부동산 담보와 연대보증이 위험 관리의 요체가 되었다. 금융의 본질인 위험 관리는 위험 기피로 변했다.
그 결과 은행의 위험을 사회가 대신 지게 되었다. 특히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도는 그 폐해가 심각했다. 은행 창구에서 나는 보았다. 회사가 망해 회사 빚을 떠안게 된 수많은 대표이사들을….
그들이 연대보증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은 사실상 없었다. 그들이 재기해 새로운 회사의 대표이사가 되려고 해도, 또다시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도의 벽이 가로막았다. 이 경우 그들은 과거의 연대보증 채무 연체 때문에 새 회사를 위한 연대보증을 제공할 자격이 없게 된다. 이는 그들을 대표이사로 두는 한, 새 회사는 기업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들 개인에게 과거 연대보증 채무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현실은 약 15년이 지난 지금도 다르지 않다. 용어조차 쉽지 않은 현행 파산 제도나, 개인 회생 제도로 구제받을 길은 그리 넓지 않다. 그들에게 사회적 안전은 제공되지 않는다.
안철수 박사가 지적한 대로, 내용상 문을 닫아야 할 처지의 회사인데도 대표이사가 회사 운영을 제 때에 멈출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자신에게 쏟아질 연대보증 폭탄 때문이다. 결국 회사를 무리하게 끌고 가다가, 더 큰 파국을 맞는다.
법적으로, 대표이사 개인은 회사와 전혀 다른 별개이다. 회사의 채무는 대표이사의 채무가 아니다. 대표이사 개인이 회사 빚에 대해 의무적으로 연대보증을 서야할 이유는 없다. 지금 은행이 이 제도를 없애지 않는 이유로 내세운 것이 이른바 책임 경영론이다. 그러나 이는 은행들이 대표이사의 경영 능력을 포함해서 회사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본연의 길 대신, 대표이사에게 연대보증의 코뚜레를 꿰어 놓는 편한 길을 계속 가겠다는 말이다.
이것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까지 불러들이면서 '금융 개방'에 앞장선 나라, 아시아 금융 허브가 되겠다는 나라의 모습이다. 오히려 외국인이 대주주가 된 한국의 은행들의 위험 기피는 전보다 더 심각하다. 은행 돈은 기업 대출보다 가계 대출로 더 몰리고 있다. 이런 현상을 국제결제은행(BIS)제도 탓으로 다 돌릴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도 폐지와 같은, 사회적 안전을 향한 금융 규제이다.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도에서 알 수 있듯이, 금융 개방을 한다고 해서 금융의 본질적 기능이 발전되는 것은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금융 산업 개방은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도를 없애기는커녕 외환 위기를 불렀다.
금융 규제 없는 나라는 없다. 심지어 미국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조차, 플로리다, 텍사스 등 미국 15개 주에서는 외국 은행이 지점을 둘 수 없다는 조항을 두었다(부속서 3). 중요한 것은 규제가 바라보는 방향이다.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도 폐지와 같이 사회적 안전을 제공하는 규제는 매우 절실하다.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도 하나 없애지 못하고, 'Segewha'(세계화)라는 희한한 단어까지 지어가며 세계화를 국정 지표로 내세웠던 과거를 더 이상 반복하지 말자. 그런 나라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말자. 지금 필요한 것은 한미 FTA가 아니라, 사회적 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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