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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하드 타임스'

['이랜드 파업 300일'] 공감 능력 '상실'한 기자들

지난해 비정규직법 시행 하루 전날 시작된 이랜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파업이 오는 17일로 300일을 맞는다. 세 차례의 매장 점거와 세 차례의 경찰 병력 투입, 수없는 교섭, 명동성당 농성, 사랑의 교회 앞 1인 시위 등이 있었음에도 파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이들의 농성장이었던 홈에버 월드컵점에 몰렸던 수많은 기자와 카메라는 이제 이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 언론이 이들을 주목하지 않으면서 사람들도 이들을 잊어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랜드 파업 300일을 맞아 이상길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가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 왔다. 이 교수는 이 글에서 "'주목'을 이끌어내는 막강한 힘"을 가진 신문·방송의 지난 300일을 돌아보고 있다. 이 교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 먹고사는 살림살이의 안정이라는 주장이 그렇게 이해받기 어려운 것이냐"고 되묻는다. <편집자>
▲이랜드 노동자들의 파업이 17일로 300일을 맞는다. 파업기간이 이처럼 원치 않게 길어지면서, 사회적 관심과 주목도 또한 한참 떨어진 것 같다. ⓒ프레시안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누구의 목소리나 잘 들리는 세상이 된 것은 아니다. 너무 많은 정보, 너무 다양한 목소리가 사람들의 신경을 도리어 무감각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주목'은 귀중한 사회적 희소재 가운데 하나다. 인터넷 시대에 기존의 신문·방송이 여전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러한 '주목'을 이끌어내는 막강한 힘 때문일 것이다.

4월 17일, 어느새 우리사회 비정규직 문제의 '뜨거운 상징'이 되어버린 이랜드 노조의 파업투쟁이 300일째를 맞는다. 파업 기간이 이처럼 원치 않게 길어지면서, 사회적 관심과 주목도 또한 한참 떨어진 것 같다.

물론 투쟁의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몇 진보지와 인터넷 신문의 보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파업 노동자의 희생 덕분에 비정규직 실태의 심각성을 재인식하고 관련 법안의 허점을 비판하는 공론이 형성될 수 있었다. 이랜드 제품 불매 운동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시민사회의 연대가 가시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태 초기부터 어려운 싸움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주류 부자 신문은 '불법 행위'와 '영업 손실액'을 들먹거리며, 민주노총의 '정략적 대응'을 규탄하고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를 비난하는 데 열을 올렸다. '법을 무력화'하려는 '좌파 기획 투쟁'이라는 낙인이 이어졌다. 홈에버, 뉴코아의 입점상인들과 파업 노동자 간의 이해 갈등을 부추기는 보도 태도도 '시민의 불편'을 파업 반대의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애용하던 예전 관행과 별 다를 바 없었다.

결국 경찰력을 동원한 파업의 강제 진압과 노조 간부의 무차별 해고가 잇따랐고, '핵심 주동자들'은 줄줄이 구속됐다가 풀려났다. 이제 극히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랜드 사태의 추이는 신문·방송의 관심권에서 아예 사라져버렸다. 그와 함께 파업 노동자들의 존재도 시민들의 시야로부터 차츰 멀어지고 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이랜드 사태의 책임이 노조 쪽에 있다'는 한 말씀을 남기신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총선에서는 한나라당과 그 비슷한 정치색의 붕당들이 국회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해버렸다. 그 사이 대통령의 '멘토'가 방송·통신 융합과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라는 과제를 걸머진 방송통신위원회의 수장 자리에 올랐다. KBS 2TV와 MBC 등 공영방송의 민영화 작업도 본격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한때 TV 드라마에서 대통령의 '아바타' 노릇을 했던 문화부 장관은 그동안 금지돼 있었던 신문·방송의 겸영을 제한적으로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껏 '명비어천가'를 불러댔던 부자 신문 가운데서 그 수혜자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현재 '주목 투쟁'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보수 언론의 세력은 더욱 강화될 공산이 크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임금 노동자의 60%가 넘는 나라에서, 이들의 목소리에 상징적 힘이나마 실어주는 언론활동은 점점 기대하기 어려워져만 가는 형국인 것이다.
▲ 밥벌이에나 싸움에나 써먹을 거라곤 자기 몸뚱이밖에 없는 사람들의 필사적인 몸짓들…. 그 저항이 과연 그것을 단번에 '불법폭력'으로 규정해버리는 지배 권력과 언론의 말보다 더 폭력적인 것일까? ⓒ프레시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추상적인 지표로 환원된 국가경제의 발전이 아니라, 하루하루 먹고사는 살림살이의 안정이라는 주장이 그렇게 이해받기 어려운 것일까? 밥벌이에나 싸움에나 써먹을 거라곤 자기 몸뚱이밖에 없는 사람들의 필사적인 몸짓들…. 그 저항이 과연 그것을 단번에 '불법폭력'으로 규정해버리는 지배 권력과 언론의 말보다 더 폭력적인 것일까?

법만으로는 포괄될 수도, 해결될 수도 없는 문제들이 있기에 정치와 공론의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언론인에게 최소한의 정의감과 균형의식과 약자에 대한 공감의 능력을 기대하는 것이 왜 이토록 무망한 일이 된 것일까? 언론계 내부에서조차 비정규직 문제가 자꾸만 심각해져가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1980년대 영국의 우파 대처 정부는 이른바 '새로운 시대(New Times)'를 능숙하게 전유했다. 그 과정에서 소유 집중된 신문·방송과 자본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홍보산업은 사회 내 이데올로기적 보수화와 신자유주의의 확산에 큰 기여를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우리사회에도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 아니 차라리 '어려운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들의 '하드 타임스(hard times)'. 신자유주의의 풍랑은 거세질 텐데, 그에 맞서는 사회적 약자들과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시대를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더 큰 목소리로 외치는 수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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