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거의 실력차가 나지 않는 많은 선수들을 상황에 따라 돌려 쓸 수 있는 맨유의 최대 장점은 10일 새벽(한국시간) AS 로마와의 경기에서도 효험을 발휘했다. 퍼거슨 감독이 선수를 로테이션 할 때마다 꼭 새로 기용된 선수들은 효과 만점의 활약을 했다.
이날 경기에서 퍼거슨 감독은 팀의 간판인 호날두와 루니를 선발로 내세우지 않았다. 이미 AS로마와의 8강 1차전에서 2-0의 승리를 거둬 여유도 있었지만 주말 펼쳐지는 아스날과의 경기를 위해 이 두 명을 아낀 셈이다.
루니를 대신해 들어온 테베스는 이날 결승골을 머리로 만들었다. 그에게 어시스트를 한 선수도 스콜스를 대신해 출장한 하그리브스였다. 후반 25분 테베스는 오른쪽 측면에서 날아 온 하그리브스의 크로스를 절묘하게 방향을 바꾸는 헤딩 슛으로 골을 뽑아냈다.
공격 가담능력이 뛰어난 수비수 에브라와 부상 중인 비디치 대신 각각 실베스트르와 피케를 내세운 맨유는 수비에서도 특별한 문제점을 드러내지 않고 1-0의 완승을 거뒀다. 맨유의 수비가 더욱 탄탄해진 것은 전반 29분 AS 로마의 뼈아픈 페널티킥 실패까지 겹쳤기 때문. 페널티킥 키커로 나선 AS 로마의 다니엘레 데 로시는 공중으로 볼을 날렸다. 사실상 이 순간 경기는 끝난 셈이었다.
무엇보다 좌우 윙포워드로 기용된 긱스와 박지성은 서로 다른 스타일로 공격을 주도했다. 박지성은 공격 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두 차례 위협적인 슈팅을 기록했다. 특히 그는 위치를 가리지 않고, 빈 자리를 찾아 공,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냈다. 반면 긱스는 세트 피스 상황에서 전담 키커로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다. 체력적인 면에서 전성기보다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긱스의 패스는 AS 로마 수비라인을 당황시켰다.
박지성은 이 경기 앞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맨유의 대표로 참가했다. 그는 "최근 몇 차례 경기에서 우리는 선수들을 바꿨지만 여전히 좋은 결과를 얻어냈다. 우리는 (챔피언스리그 뿐 아니라)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우승을 할 수 있다"며 맨유의 로테이션 시스템에 신뢰감을 보였다.
차범근 현 수원 삼성 감독이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뛸 때 감독이었던 리누스 미헬스. 3년 전 유명을 달리했던 네덜란드의 '토털사커' 혁명을 창조한 미헬스 감독은 차범근에게 이런 조언을 해준 적이 있다. "감독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직업이냐?"는 차범근의 질문에 미헬스 감독은 "좋은 팀만 맡아야 해. 감독이 선수들의 능력을 바꾸는 건 어렵다. 또한 감독에게 절대 권한을 주지 않는 팀은 맡지 말아야 한다"는 냉정한 충고를 했다.
퍼거슨 감독은 이런 의미에서 이상적인 감독이다. 그는 22년째 세계 최정상급의 맨유를 맡고 있고, 팀 내에서도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다. 팀 내에서 그의 말 한 마디는 곧 법이다.
맨유 로테이션 시스템의 성공 비밀은 기본적으로 좋은 선수 구성에 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능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 성적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 부분이 퍼거슨이 갖고 있는 장점이다. 어떤 상황에 어떻게 선수를 써야 할지 잘 안다는 의미다.
퍼거슨 감독은 이날 AS 로마와의 경기에서 호날두, 루니, 폴 스콜스를 선발로 내세우지 않은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맨유 사상 최고의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호날두 등을 대신해 나왔던) 박지성, 테베스, 하그리브스 3명은 최상의 활약을 해줬다". 중요한 경기에 선발로 자주 나서지 못했지만 여전히 수준급의 기량을 갖고 있는 선수들에게 계속적인 동기부여를 해야 하는 퍼거슨 감독에게 이 말은 일상적인 립 서비스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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