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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워스', 도대체 어디서 찾을까?"

[홍성태의 '세상 읽기'] 이상한 '총선'

워렌 비티는 뛰어난 재능을 지닌 할리우드의 만능 영화인이다. 1937년생이니 그도 어느덧 일흔을 넘긴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자중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여자를 몹시 좋아했던 모양이다. 1972년에 칼리 사이몬이라는 여가수는 어떤 바람둥이를 조롱하는 'Yor're so vain'('당신은 너무 잘난 체해')이라는 노래를 불러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여기서 바람둥이인 '당신'의 정체를 둘러싸고 큰 논란이 벌어졌지만, 대체로 워렌 비티일 것으로 알려졌다.

워렌 비티의 영화로는 <보니와 클라이드>(<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1967년)가 가장 유명할 것 같다. 그렇지만 1981년에 개봉한 <레즈>도 '우리가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로 꼽힌다. 물론 어떤 사람은 얼굴만 봐도 바람둥이인 워렌 비티가 주인공인 존 리드(러시아 10월 혁명을 <세계를 뒤흔든 10일>이라는 책으로 세계에 알린 미국의 기자) 역을 맡은 것을 결정적 흠으로 꼽기도 한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총선을 앞두고 교육방송(EBS)에서 워렌 비티의 또 다른 명작 <불워스>(1998년)를 방영했다.

<불워스>는 미국 정치를 비판하는 정치 영화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왕의 부하>와 같은 정치 영화처럼 무거운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코미디에 가깝다. 환갑을 넘긴 워렌 비티가 랩을 하면서 미국 정치를 비판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진귀한 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에미넴을 기대하는 것은 물론 잘못이다. 연습을 많이 했겠지만 역시 노인이라 느리다. 스스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워렌 비티는 아주 어린 흑인 소년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백인들은 랩을 저렇게 이상하게 하나?"

'불워스'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파산할 상태에 이른 상원의원인 그는 딸을 위해 거액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뒤 은밀히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해서 자신을 살해하도록 청부한다.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둔 불워스는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스키모자에 반바지를 입고, 시커먼 선글라스까지 쓰고, 불워스는 랩으로 미국 정치를 비판한다. 그의 랩에서 겉으로는 온갖 고상한 말들을 주워섬기지만 뒤로는 부자들과 검은 거래를 해서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정치인들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진실을 노래하고 다니자, 그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불워스의 인기는 하늘높이 치솟는다. 그는 이제 자신에 대한 살인청부를 중단시키고 올바른 정치인으로서 새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러나 그 순간 한 발의 총알이 그의 가슴을 관통하고 그는 즉사하고 만다. 그를 매수해서 나쁜 법을 제정하고자 했던 로비스트가 배신한 그를 어둠 속에서 암살한 것이다. 대통령 케네디 형제마저 마피아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주장도 널리 퍼져 있지만, 이 영화의 결말은 대단히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오늘은 18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이번 총선은 한마디로 '이상한 총선'이라고 한다. 정책 의제는 모두 사라진 채 오로지 공천을 둘러싼 잡음만이 화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오직 운하 계획만이 유력한 정책 의제로 토의되고 있었으나, 한나라당은 놀랍게도 공약에서 이걸 쏙 빼 놓았고, 선거관리위원회는 이에 대한 토론을 선거법 위반이라고 해석했다.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망국적 사업을 정부가 강행하고 있는 증거가 속출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여당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잡아떼고, 선관위는 아예 말을 하지 말라고 국민들을 을러대니, 대체 지금 이 나라는 어떤 상태에 있는 것인가?

불워스가 비판하는 썩은 미국 정치에 비추어 보더라도 한국 정치는 대단히 후진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라면 운하 계획과 같은 거대한 개발 계획을 놓고 각 정당이 진지하고 투명한 토론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망국의 위험을 안고 있는 이러한 개발 계획을 은밀히 강행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반민주적 행태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그것은 정권 자체에 치명타를 입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토론을 회피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은밀히 강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어도 정부와 여당은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정치의 기본은 정당이고, 정당의 기본은 정책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는 여전히 정책을 보기 어렵다. 다시 말해서 정당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암살은 없을지 몰라도 부패, 비리, 협잡, 사기, 음모, 횡령, 투기, 폭력, 파괴, 매수, 거짓말, 패거리, 흑색선전, 관권선거 등 온갖 악이 한국 정치에서는 여전히 당연한 것처럼 횡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부패이다. 조금 개선되었나 싶더니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다는 식으로 부패의 물결이 다시금 거세게 밀려오고 있다. 민주화의 시대가 초라하게 종말을 고하고, 다시 참담한 부패의 시대가 시작되는가?

아무튼 선거운동이 끝나자 세상이 조용해져서 좋다. 운하 계획과 같은 심각한 문제에 대한 토론은 없이,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뽕짝 노래를 개사해서 있는 대로 소리를 높여서 틀어놓고 다녀서 아주 괴로웠다. 심지어 어떤 후보들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와서 그렇게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그 따위로 '불법'을 저지르면서 '입법'의 책임자가 되겠다니, 그 어처구니없는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이목을 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불법'을 저지르며 이목을 끄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그런 사람은 절대 당선되어서는 안 되며, 또한 결코 당선될 수도 없을 것이다.

악다구니를 쓰는 노래가 아니라 은은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선거, 공해 수준의 간판이며 현수막이 어지럽게 나부끼지 않는 선거, 투기를 부추기는 난개발 공약이 아니라 난개발과 투기를 막겠다는 공약이 경쟁적으로 제시되는 선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의 노동시간을 줄이겠다고 너도나도 앞 다퉈 약속하는 선거, 경운기보다 느린 완전히 반실용적인 운하건설에 쓸 돈을 복지와 교육에 써서 진정한 선진국을 만들겠다고 누구나 약속하는 선거, 이런 선거는 언제나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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