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과정을 통해 그들이 얻은 것은 축구가 소수의 특권층들이 향유하는 '여기(餘技)'가 아니라 대중의 가슴에 남는 '대중문화'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영국 축구의 전통은 프리미어리그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영국 축구 팬들은 그 어느 나라 팬 이상으로 구단 수뇌부나 감독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능동적으로 의사표시를 하고, 그 의견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축구는 그들이 가꿔야 할 문화라는 생각 때문이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살아있는 전설 라이언 긱스와 박지성의 관계도 여기에 해당된다.
6일(한국시간) 미들스버러와 맨유의 경기에서 박지성은 천금같은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또 한번 어시스트를 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 박지성은 재치있게 가슴으로 긱스에게 패스를 시도했다. 긱스는 박지성의 패스를 예상하지 못했고, 결국 기회는 무산됐다. 벤치에 있던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이 순간 긱스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긱스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퍼거슨 감독은 자신의 손가락으로 눈을 가리키며 패스를 받지 못한 긱스를 질타했다. "왜 박지성의 움직임과 패스를 똑바로 보지 않았냐"는 의미다.
맨유 소속으로 18번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아직도 활처럼 휘어지는 크로스를 구사하는 긱스에게는 굴욕인 셈이다. 이 경기는 그가 맨유 유니폼을 입고 뛴 750번째 경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맨유 팬들도 이 경기가 끝난 뒤 긱스를 혹평하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긱스가 출장기회를 잡아서는 안 된다. 그는 더 이상 상대 팀에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그 중심에 있다. 정통 윙 플레이어로서 긱스의 활동 능력은 이제 한계점에 왔다는 의미다. 반대로 말하면 경험은 부족하지만 '산소 탱크' 박지성 같은 선수가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할 시점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미 웨일스 대표팀에서 은퇴를 한 긱스는 다음 시즌을 끝으로 지도자 수업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얼마 남지 않은 선수 생활에서 긱스가 가장 바라는 일은 대포알 슛으로 유명했던 보비 찰튼 경(전 맨유 선수)이 갖고 있는 759경기 출장 기록을 깨는 일이다.
맨유 팬들의 극성스런 아우성을 잘 알고 있는 퍼거슨 감독은 10일 새벽(한국시간)펼쳐지는 AS 로마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 긱스의 출장 문제를 놓고 또 다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상황. 긱스는 1차전에서 컨디션 난조로 박지성에게 그 자리를 내줬다. AS 로마와의 1차전에서 맨유는 2-0으로 이겨 다소 여유있는 입장이지만 방심은 금물. 더욱이 수비수 비디치는 출장하기 힘들고, 퍼디낸드도 이 경기에 출장이 불투명하다. 주전 수비수 2명이 빠지게 된다면 더욱 수비가담 능력이 뛰어난 박지성의 출장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기에다 최근 박지성이 급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점도 퍼거슨 감독의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부분이다.
박지성이 맨유의 유니폼을 입을 때 긱스는 여전히 거대한 산이었다. "박지성은 긱스의 경쟁자가 아닌 후계자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영국 언론의 평가도 있었다. 왼발의 마법사 긱스는 월드컵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던 선수였다.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통하는 델 피에로는 "나를 감동시켜 울게 한 두 명의 축구 선수가 있다. 그 중 하나가 긱스"라는 말을 했을 정도다.
각각 경험과 활동 능력이란 장점을 갖고 있는 긱스와 박지성이 AS 로마 전에서 누가 선발 출장할지는 국내 팬들 뿐 아니라 맨유의 팬들에게도 '핫 이슈'가 되고 있는 시점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