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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한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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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한 모

[전태일통신 67] 왜 맛이 다를까?

시장에 갔다 온 아내는 난데없이 두부를 먹자 한다. 가정에서 직접 만든 손두부라며 곱게 썰어 김치와 함께 내놓는다. 출출하던 참이라 식탁으로 덤벼들었다. 아직 따끈따끈 하다. 아내와 마주앉아 두부를 먹는데 갑자기 먼 옛날의 추억이 떠오르며 목이 울컥 젖어온다.
  
  두부!
  
  나는 두부를 먹을 때면 꼭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쯤으로 기억된다. 몇 년째 몸져누운 아버지의 병환으로 농사와 약초 캐는 일에 온 식구가 매달리던 때였다. 오랫동안 한약방에서 좋다는 약을 복용하였지만 아버지의 병은 웬일인지 차도가 없었다. 약값으로 이미 밭 한 뙈기를 팔았었다.
  
  아버지께서는 치료비도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병원을 불신하고 한방과 민간요법에만 의지하셨다. 어머니는 외지로 나가서 약을 구해오고 형님과 나는 들과 산으로 뛰어 다니며 약초를 캤다. 지금은 오래 되어 다 잊어버렸지만 여러 가지 약초를 캤다. 어떤 약초는 도라지 같은 뿌리를 직접 드시게 하였다. 어떤 약초는 달여서 물을 드시게 하였다. 또 어떤 약초는 말려서 가루를 만들어 환을 지어드리기도 했다. 아버지의 병은 위장병이라 하였으나 상태가 심각하였다. 어쩌면 위암이었을지도 모른다.
  
  농사는 사촌형님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또 우리가 직접 나서기도 했다. 아직 어린 세 동생을 제외한 4남매가 올망졸망 어머니를 따라 논밭을 헤집고 다녔다. 당시는 힘도 붙지 않은 어린 나이라 제대로 하는 일이 없었으나 학교에 갔다 오면 무조건 논밭으로 달려갔다.
  
  그날은 보리밭은 매고 있었다. 아지랑이가 아롱아롱 피어오르는 봄날이었다. 파랗게 자라는 길고긴 이랑의 보리밭을 어머니, 누나, 형님과 넷이서 매고 있었다. 어리기도 하였지만 매사에 꼼꼼했던 나는 한 이랑을 매면서도 맨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오후 4시경이 되었을 것이다. 얼굴은 흙먼지와 땀으로 얼룩지고 몹시 갈증 나는 시간이었다. 쪼그려 앉아 호미질을 하려니 무릎도 아프고 손아귀도 아프고 허리도 아팠다. 이랑은 왜 그리도 길던지 이랑 끝이 까마득히 느껴졌다. 좀 쉬었다 했으면 싶은 때에 마침 밭머리에 있는 집에서 "댕경집 셋째 댁! 여기 와서 두부 한 모 먹고 해."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집 어른은 아버지와 어려서부터 같이 자랐다. 그 집 형제들도 우리 형제들과 친구간이다. 그 집은 우리보다 많은 팔남매를 두었다. 자식이 팔남매나 되지만 땅 한 평 없이 남의 농사만 짓는 집이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그 집에서는 오래 전부터 기름을 짜고 두부를 만들어 팔고 있다. 그래서 그 집의 택호는 기름집이다.
  
  배고프고 목말랐던 것이 어쩌면 그 집에서 풍기는 냄새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온 들에 퍼지는 구수한 두부 냄새와 고소한 기름 냄새는 길을 가는 사람의 입맛을 다시게 하고 짐승들 코를 벌름거리게 한다.
  
  두부 한 모 먹고 하라는 소리를 듣고도 어머니는 선뜻 일어서지 않는다. 그 소리를 두 번째 듣고 누님의 채근이 있고서야 어머니는 우리를 불러 그 집 마당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머리에 썼던 수건으로 흙먼지를 털면서 "오늘 두부 만들었어."하며 어색하게 분위기를 맞춘다.
  
  두부를 썰어 기름에 버무려 양푼에 담아온 두부는 따끈따끈 하고 고소한 게 그야말로 꿀맛이다. 두부 한 토막이 입으로 들어갈 때마다 혀에 착 감기면서 살살 녹는다. 말 없이 네 식구가 마당에 둘러 앉아 두부를 먹는데 정신이 없다. "아저씨는 좀 어때. 빨리 일어나야 할 텐데. 그 건장한 양반이 자리에 눕다니." 약을 꾸준히 쓰는데도 차도가 없다는 어머니의 긴 한숨이 이어진다.
  
  우리 네 식구에게 두부 한 모는 턱없이 적다. 생각 같아서는 두 모 정도는 있어야 성이 찰 것 같다. 두부가 조금씩 줄어들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두부 한 토막을 입에 넣고는 서로 눈길을 피해 먼 하늘만 바라보면서 우물거린다. 방에 누운 아버지를 생각하고 어린 동생들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양껏 먹은 척 마지막 한 토막을 서로 먹으라고 양보를 한다. 조금만 더 먹었으면 하면서 돌아서서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날 먹었던 두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어 버렸다. 땀 흘려 일한 식구들에게 두부 한 모로는 턱없이 부족한줄 알면서도 양껏 먹이지 못했던 어머니 가슴은 얼마나 쓰렸을까? 어린 나이지만 적절히 절제할 줄 알았던 나는 그런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 지금껏 큰 과오 없이 인생을 살아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야유회나 체육대회를 할 때면 어김없이 두부가 나온다.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닌 끝이라 입맛이 당길 것 같으면서도 막상 다가앉으면 별 맛을 못 느낀다. 그 날 식구가 둘러앉아 정신없이 먹던 그 맛을 찾으려 애쓰지만 별 효과가 없다. 못 먹는 것 없이 풍요로워서 그런가. 아무래도 그 맛을 다시는 못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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