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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삼국지' 최후의 승자는? "몰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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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충청 삼국지' 최후의 승자는? "몰러유~"

[총선현장] '反한나라, 親박근혜'…표심의 모순

정치적 지역 성향을 나눌 때 영남에선 경북과 경남이 다르고, 호남에선 전북과 전남이 다르듯이 충청도 충북과 충남이 다르다. 충북에서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다면, 충남에서는 자유선진당이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전은? 한마디로 삼국지다. 충북과 충남의 특성이 그대로 섞여 혼전을 이루고 있다.

현역 빠진 대전의 '신정치 1번지' 서구을

대전에서 '신정치 1번지'라 불리는 '서구을' 선거구를 보면 이곳 총선의 특징을 잘 알 수 있다. 서구을은 열린우리당 구논회 의원의 유고로 보궐선거에서 자유선진당 심대평 후보가 당선됐던 곳으로 심 대표가 이번 총선에서 공주.연기에 출마하며 대전지역에서 유일하게 현역 의원이 빈 선거구다.

이 지역은 또 정부종합청사, 대전시청, 법조단지 등과 함께 아파트 단지 등이 들어선 계획도시로 중상류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 중구로부터 '정치 1번지' 자리를 빼앗은 곳이다. 교육열이 높고 학원가가 밀집해 대전의 '강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지역 경제'를 내세우고 있는 자유선진당 이재선 후보. ⓒ프레시안

3일 오후 월평동 백합사거리에서 자유선진당 이재선 후보가 길거리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이 후보는 이 지역에서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재선 경력 때문인지 이 후보는 현수막에 얼굴 사진을 새겨 넣지도 않았는데도 자신의 현수막 밑에서 인사를 건네는 이 후보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먼저 이 후보에게 악수를 건네며 "저번에 아깝게 떨어지셨는데, 이번에는 꼭 돼야죠"라며 덕담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인지도 덕분인지 이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근소한 차이이긴 하지만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 후보는 "토박이로서 15, 16대 때 서구 지역의 각종 시설 유치 등 도시 발전에 기여했다"며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 후보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후보가 시민들에게 인사를 나누는 동안 길 건너 한 중년 남성은 "저 인간 또 나왔네"라고 비아냥거렸다. 이 후보는 15, 16대 자민련으로 당선됐으나, 2002년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겼고, 2004년 총선에서 패한 뒤 2007년 보궐선거에서도 심 대표에게 패한 경력이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에서 낙천하자 자유선진당 간판을 걸고 나왔다.

이 후보는 '철새' 비난에 대해 "한나라당 공천은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주변에서는 무소속으로 나가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했지만, 대전에서 무소속은 어렵다는 판단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 후보는 한나라당 시절 '박근혜계' 인사였다.
▲ '교육'을 내세우고 있는 통합민주당 박범계 후보. ⓒ프레시안

이 후보를 뒤쫓고 있는 통합민주당 박범계 후보는 비슷한 시각 한 아파트 단지 장터를 찾아 '한 표'를 호소하고 있었다. 박 후보도 이 지역에선 제법 얼굴이 알려진 편이다. 2004년 열린우리당 경선에 나섰다 패한 뒤에도 계속 지역구를 다졌다. 2007년 보궐선거에서는 당의 전략에 따라 후보 등록조차 하지 못한 분도 안고 있다.

사실상 총선에는 처음 나서는 박 후보는 멋쩍은 듯 피해가는 사람들을 끝까지 따라가 악수를 건네며 인사를 나누는 적극성을 보였다. 판사 출신인 박 후보는 "예전의 나는 이런 모습을 상상도 할 수 없었겠지만, 지난 4년 동안 지역에서 산전수전 다 겪다 보니 자연스레 발걸음이 주민에게로 하고 허리가 90도로 꺾이더라"고 말했다.

이재선 후보 대신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나경수 후보는 가장 늦게 총선전에 뛰어들어 다소 힘에 부치는 모습이지만 밤 10시가 넘도록 지역을 훑고 다니는 등 분투하고 있다. 특히 선거운동을 통해 지지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고, 여당 프리미엄과 젊고 깔끔한 이미지 덕에 해볼만하다는 분위기다. 이 후보 역시 판사 출신이다.

情, 혹은 인물론

각종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은 6개 선거구 중 대덕(김원웅), 서구갑(박병석)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고 초박빙 접전이긴 하지만 동구(선병렬)에서도 1등이다. 유성구의 자유선진당 이상민 후보도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해 자유선진당으로 나선 인물이다. 사실상 지역구 현역 의원들이 모두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앞서 살펴본 서구을은 6개 선거구 중 유일하게 현역 의원이 없지만 15, 16대 재선 의원 출신인 이재선 후보가 사실상 '현역'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고, 중구 현역은 자유선진당 권선택 의원이지만 한나라당 강창희 후보는 중구에서만 5선을 했기 때문에 현역보다 더 현역 같이 친숙한 인물이다.
▲ '안전'을 내세우고 있는 한나라당 나경수 후보. ⓒ프레시안

이렇게 '현역'이 강세인 데 대해 서구을에서 만난 이재선, 박범계 후보는 "현역 의원들이 큰 탈 없이 지역에서 잘 했다"고 공통된 평가를 내렸다.

지역의 한 중견 언론인은 "대전은 당보다 인물이 우선"이라며 "특히 이번처럼 이슈가 없는 선거에서는 당이나 정책보다 인물이 우선 평가된다"고 말했다. 그는 "김원웅 의원 같은 경우 당적 바꿔가며 3선이나 하지 않았느냐"며 "대전 사람들은 정이 많아 인물이 괜찮다고 판단하면 철새도 봐주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엑스포 탑을 무너뜨릴 만큼 막강한 태풍이 불거나 강금실급의 스타가 내려오지 않는 한 대전에서 정치 신인이 한 자리 차지하기는 힘들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출신 구성,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

대전의 출신별 인구구성도 한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전은 전국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지니고 있어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어 산다. 충남 다음으로 호남 출신 인구비율이 높다는 것. 대전역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대전 사람들이 말은 조금 느려도 어디 충청도 사투리 쓰는 사람 본 적 있냐"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88 올림픽 때 이사 온 광주 사람"이라며 "대전 어딜 가나 민주당 표가 30%는 나올 것"이라고 큰소리 쳤다.

여기에 충남은 기본적으로 '야도'(野都)라는 설명이 곁들여진다. 지역 정당이긴 했지만 김종필 씨의 공화당부터 자민련까지 죽 야당이 득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석도 대전은 예외다. 탄핵 열풍이 있긴 했지만 2004년 총선에서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싹쓸이하기도 했다.

따라서 현재 여당인 한나라당의 부진은 다른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다름아닌 '행정수도' 문제라는 분석이다.

대전 지역 한나라당 관계자는 "2002년 대선 초반 대전에서 이회창 후보가 상당히 앞서갔는데, 노무현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세우자 대전은 물론 충청지역에서 단번에 역전을 시켰다"며 "그 정도로 충청에서는 행정수도 이전 기대감이 컸는데, 이전 계획이 대폭 축소되면서 한나라당에 느낀 배신감의 상처가 깊다"고 전했다.

▲ 기호 1,2,3번 후보에는 못 미치지만 6번 친박연대 서종환 후보도 여론조사에서 상당한 지지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의 현수막에는 박근혜 전 대표의 사진이 새겨져 있다. ⓒ프레시안

'反 한나라, 親 박근혜'의 역설


특히 2006년 지방선거에서 "대전은요?"라는 박근혜 전 대표의 말 한마디에 대전시장 선거판도를 뒤집은 사건이 의미심장하다. 지역 중진 정치인에 따르면 대전 사람들에게는 박 전 대표가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지만 한나라당에서 동의를 해줬기 때문에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특별법 통과에 도움을 준 은인이자 원칙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는 신뢰감이 크다는 것이다. '반 한나라' 정서에도 불구하고 '친 박근혜' 정서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대전에서 행정수도는 큰 의미였다.

지난 한나라당의 대선 경선에서 '반 행정수도' 이미지의 이명박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게 3543표로 5583표의 박 전 대표에게 크게 뒤졌다.

이는 총선 현장에서도 확인된다. 한나라당 후보로는 유일하게 중구에서 선전하고 있는 강창희 후보는 '5선 프리미엄'에 '한나라당 프리미엄'보다 '박근혜계 프리미엄'이 붙었다는 분석이고, 한나라당 대전시당은 박근혜 전 대표에게 강력하게 지원을 호소하고 있는 형편이다. 영남도 아닌데 박근혜 전 대표의 사진을 현수막에 새겨넣은 무소속 후보도 있다. 적어도 대전에선 '이명박과 함께'라는 구호 보다 "대전은요?"와 같은 박 전 대표의 말 한마디가 절실한 것이다.

대전은 이렇게 복잡한 함수 관계들이 얽히고 설켜 '삼국지'를 이루고 있는 형세다. 단,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대전은 여론조사 결과가 틀린 적이 많은 대표적인 곳"이라며 "여론조사에 기대 속단해서 기사 쓰지 말라"고 충고했다.
충청 표심? 몰러유~

이른바 '총선 민심'을 취재할 때 곤란한 경우가 있다. 서울은 생활권이 워낙 넓기 때문에 '지역구 유권자'가 불분명하다. 사는 곳은 목동이지만 출퇴근을 역삼동으로 하면 양천구 유권자이지만 양천구 현장 취재에서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지역 민심 취재는 부동산 공인중개사나 수퍼마켓 주인 등 지역 일부 자영업자에게 집중되는 한계를 갖게 된다.

대선 때 유용하던 여론의 바로미터 '택시기사 수다'도 힘들다. 그리고 서울지역 국회의원에 대한 이미지는 '지역 일꾼'보다 중앙 무대 활동 이미지가 강한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자기 지역구 국회의원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항상 민심 왜곡 효과가 염려스럽다.

지방에서는 서울에 비해 비교적 수월하다. 일단 '택시기사 수다'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교복 안 입은 웬만한 어른 붙들고 물어보면 거의 지역구 유권자다. 또 국회의원 후보를 따질 때 '지역 일꾼', '토박이' 이미지를 따지는 편이기 때문에 지역 국회의원에 대해 관심이 높은 편이다. 한 번 금배지를 잃었던 '전'(前) 국회의원이 다시 선거에 나오면 대번 반응이 "저 인간 또 나왔네. 쯧쯧"이거나 "저번에 아깝게 떨어졌으니, 이번에는 꼭 붙어야지"라는 반응이라도 나온다.

그런데 충청은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총선 민심' 취재의 애로사항이 있다. 사람들의 입이 무겁다는 것. 이른바 '선진당 바람'이 불고 있다는 충남 당진-예산.홍성-공주.연기 등을 거쳐 오는 동안 선진당 바람의 실체를 유권자들의 입에서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열 중 여덟의 대답은 "잘 몰러유"였다.

이러한 특성을 '침묵의 나선 이론'이라고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자신의 생각이 일반적인 여론과 다르다고 생각되면 자기 의견을 적극 개진해 여론을 바꾸려 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침묵함으로써 자기 의견을 숨긴다는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영호남 지역감정이 심할 때 호남 지역 여론조사를 실시하면 DJ측 지지도가 기대보다 낮게 나오거나 무응답률이 전국 평균의 2배가 넘던 적이 있다. 호남사람들은 여론조사에서 호남의 DJ 지지가 높을 경우 영남지역의 지역감정을 자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충청지역 여론조사도 골치아프다고 한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충청지역의 여론조사 무응답률은 전통적으로 평균보다 5~10% 높다"며 "특이한 점은 다른 지역의 경우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부동층이 줄어드는데 반해, 충청지역은 여론조사 부동층이 끝까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와 선거 결과가 다른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재선 후보도 "15대 선거 때 당시 염홍철 후보에게 여론조사는 물론 출구조사에서도 13% 지고 있는 것으로 나왔는데, 결국 내가 당선됐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을 가진 이 후보는 이번 총선 여론조사에서 근소한 차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낙관할 수 없다. 한나라당 강창희 후보와 자유선진당 권선택 후보의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줄곧 오차범위 이상 앞서던 강 후보였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권 후보와 박빙이거나 오히려 뒤지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거캠프 관계자들은 "여론조사 결과에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총선 주자들은 입버릇처럼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고 하지만, 충청지역에서는 이 말이 인사치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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