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선거일까지 고작 8일밖에 남지 않은데다가 그나마 대선에서 한반도대운하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한나라당이 이번에는 아예 총선공약에서 빼버렸으니 아무리 야권이 연대해 대운하 반대를 소리 높여 외쳐도 고장난명이라, 논쟁구도 자체가 제대로 만들어질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한반도대운하 이슈는 이미 한나라당에게 뼈아픈 일격을 입힌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대운하 이슈가 만들어지고 커지는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보인 집권당답지 않은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모습들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다 잘 아는 바와 같이 한반도대운하는 747공약과 함께 이명박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내세운 대표공약이었다. 한반도대운하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관심은 대통령직인수위에 대운하TF팀을 공식기구로 둔 데서도 드러나며, 청와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산하에 한반도대운하 추진단을 운영하고 있는 데서도 단적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대통령이 이토록 관심을 갖는 사안에 대해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가 실무검토를 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므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핫 이슈로 부각된 한반도대운하 문제를 총선공약에서 슬그머니 빼기만 하면 총선이슈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한나라당 지도부야말로 참으로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이거나 대통령의 대표공약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폐기처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독불장군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말 그대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 이들의 서툰 밀어붙이기와 순진함은 야권에서 대운하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후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는데, 이런 사정은 한반도대운하를 총선공약에서 뺀 데 대해 야권의 압박이 계속됨에도 그 이유와 경위에 대해 아무도 책임 있게 나서서 설명하지 않았던 데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야말로 머리만 짚무더기에 처박고 숨어버린 닭의 형국 아닌가.
이런 와중에 한반도대운하를 둘러싼 사태가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 준 것은 이명박 정부였다. 국토해양부의 대운하추진 보고서와 대운하를 반대하는 대학교수들에 대한 경찰과 국정원의 성향조사 등 최근 드러난 대운하 관련 사안들만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가 대운하 건설에 대해 매우 진지하고 깊은 관심을 갖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증거들이라 할만하다.
그러므로 사태가 이토록 엄중하게 전개되고 있는데도 "내 지역구 관련 현안이 아니고", "당장 급한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운하에 대한 입장 표명을 유보하거나 회피하고 있는 한나라당 후보들이야말로 참으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이란 말을 들어도 변명할 길이 없게 됐다.
한반도대운하 문제와 관련해서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해 참으로 걱정스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다. 정말로 순진한 건지 아니면 뭘 모르는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한나라당과 청와대와 정부가 이토록 손발이 안 맞아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한반도대운하를 강행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어찌됐건 대통령의 대표공약이었으므로 정부와 집권당으로서는 그만둘 때는 그만두더라도 일단은 추진 의지를 분명히 하고 그에 입각해 당·정·청간 역할분담을 제대로 했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야권의 공격은 공격대로 받으면서 제대로 된 변명하나 하지 못하고 있으니, 선거에 미칠 영향여부를 떠나 도대체 이런 집권당, 이런 집권세력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하는 근본적인 신뢰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바라건대 한반도대운하가 선거에 불리할 것 같다는 식의 정치공학적 계산 같은 것은 이제 그만두고, 비록 한반도대운하로 인해 의석 몇 개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이라도 한반도대운하에 대한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한나라당의 정돈된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집권세력의 최소한의 책임이라는 점을 당·정·청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한 번 더 생각해봤으면 한다. 의석 몇 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부와 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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