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 부산공장에서 일하다 각각 지난해 3월과 지난 2월에 업체가 폐업하면서 길거리로 쫓겨난 삼성SDI 협력업체 하이비트와 그린전자 노동자들이 사 측과의 합의를 통해 고용을 보장받은 것이다.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삼성 협력업체에 들어간 이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삼성을 상대로 이례적으로 큰 승리를 이뤄냈다.
폐업한 업체 대신 1차 협력업체 신규채용…"고용보장 가능한 업체로 약속"
금속노조 울산지부 여호수 미조직비정규사업부장은 1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3월 28일, 삼성SDI 1차 협력업체에 신규채용하되 고용을 보장하고 원직복직 투쟁 기간 중에 발생한 모든 민·형사상 고소·고발과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하기로 회사 쪽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17명의 하이비트 해고자와 7명의 그린전자 해고자가 합의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다만, 이들이 일하던 업체가 이미 폐업한 뒤라 다른 업체로의 고용을 회사 쪽이 알선하는 방식으로 일터로 돌아가게 됐다. 여호수 부장은 "고용안정이 가능한 협력업체에 신규채용하는 방식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비록 정규직이 아니라 협력업체 소속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사 측이 '고용 보장'을 약속한 만큼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은 일정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의는 하이비트 노동자들은 지난해 3월 회사가 폐업한 뒤 1년, 그린전자 노동자들은 지난 2월 회사가 폐업한지 두 달만에 이뤄낸 것이다. 구체적인 복직 일정 등은 따로 실무협의를 통해 결정될 예정이다. (☞관련 기사 : "100억짜리 그림 사면서 월 130만원 노동자는 자르고…")
"삼성 직간접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합의"…역시 '칼자루'는 원청이 쥐고 있다
1년 여의 투쟁 기간 하이비트 해고자들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삼성그룹에 노동조합은 없지만,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에 개별 조합원으로 가입한 이들은 금속노조 울산지부와 함께 농성도 하고, 먼 서울까지 상경 투쟁도 여러 차례 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 이후에는 삼성본관과 특검 사무실에서 1인 시위도 했다.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업체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경우 원래 일터로의 복직은 요원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노사관계에서의 법적 책임자인 '사용자'의 실체가 사라져버린 탓이다. 오랜 법정 싸움 끝에 대법원으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을 받더라도 복직시켜줄 회사가 없으니 무용지물인 경우도 생겨난다. 물론 원청이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부인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하이비트와 그린전자 여성 비정규직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이들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의 시간 만에 일터로 돌아가게 된 데는 무엇보다 "원청인 삼성SDI의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달리 말하면, 원청인 삼성SDI의 결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합의라는 얘기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삼성의 각 계열사에는 본사의 구조조정본부(구조본)에서 파견된 임원급 직원이 모두 있다"며 "그 선에서 승인이 나서 가능한 일 아니었겠냐"고 말했다. (☞관련 기사 : 하이비트 해고자 최세진 씨 "삼성? 무서운 곳이죠")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번 합의는 간접고용 노동자와 원청 사이에 발생하는 노사갈등을 풀 수 있는 실마리는 원청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 됐다. KTX승무원, 이랜드, 코스콤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이 모두 장기화되며 아직까지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삼성SDI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복직 아닌 복직'이 다른 사업장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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