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공공기관이 인사에서 채용 비리와 편법 인사가 심각하고 일부 임원들은 업무 추진비를 유흥경비로 사용하는 등 도덕적 해이 사례도 있었다는 감사원의 예비감사 결과발표가 31일 나왔다. 감사원은 31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예비감사를 실시한 결과, 이 뿐 아니라 수백억 대의 시간외 근무수당을 전 직원에게 지급하는 등의 문제점도 드러났다고 밝혔다.
"방만경영을 초래하고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한 직원은 책임을 규명해 문책조치하고 종합감사결과는 기획재정부에 통보해 기관별 경영실적 및 임원평가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감사원의 이 같은 발표에 노동계가 발끈하고 나섰다. 노동계는 감사원의 이례적인 예비감사 결과발표가 공기업 구조조정의 사전 정지작업이라고 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고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체결한 한국노총(위원장 장석춘)은 이날 성명을 통해 "감사원이 자기 기능과 역할을 오해하고 공기업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이번 감사원의 '설익은' 발표는 한국노총의 합리적인 기대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감사원 "업무추진비로 보석사고, 아웃소싱 사업권도 자기들끼리"
감사원은 지난 27일에 이어 이날 두 번째로 예비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31개 기관들의 방만경영 실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감사원이 밝힌 사례는 종류별로, 기관별로 매우 다양했다. 업무추진비 등 섭외성 경비를 보석 구입에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감사원 발표를 보면, 증권예탁결제원은 지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업무추진비를 한도를 초과해 집행했다. 특히 임원들은 유흥주점과 나이트클럽에서 법인 카드로 결제를 하기도 했고 골프접대비, 상품권 구매, 보석 구입 등에 총 8억4800만 원을 썼다.
아웃소싱한 사업의 운영권을 퇴직자에게 준 경우도 드러났다. 도로공사는 182개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통행료 수납업무를 외주화하면서 175개 영업소의 운영권을 15년 이상 장기근속 퇴직자에게 나눠줬다.
채용비리도 밝혀졌다. 조폐공사는 2005년과 2007년의 신규 채용 과정에서 인사팀장의 청탁을 받고 자격증 점수를 조작해 순위 666위인 사람을 45위로 끌어올려 합격시켰다.
고강도 감사, '노 정권 시절 공공기관 수장' 겨냥한 '표적감사'?
한국노총은 감사원의 고강도 감사의 배경에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인정 사정 볼 것 없이' 진행되는 감사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는 것 같다는 주장이다.
하나는 그 칼날이 공공기관 수장을 겨냥한 '표적감사'라는 의혹이다. 현 정부 장관들이 입을 맞춰 '노무현 정부 시절 공공기관장의 사퇴'를 공식 요구하고 있는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감사원이 예비 감사 결과를 토대로 검찰에 수사요청까지 하고 있는 마당이어서 이런 관측은 힘을 얻고 있다.
감사원은 현재까지 석탄공사와 증권예탁결제원 사장 등을 부정과 비리 혐의로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이날 예비검사 결과발표에서 성용락 제1사무차장은 "(각종 비리의 책심 소재에 대해) 결론이 나오면 바로 검찰 수사요청이나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한국노총도 성명을 통해 "정권교체 직후, 총선 직전에 급작스럽게 감사 발표를 강행한 것은 공기업 수장의 교체가 핵심 목적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정권 출범과 함께 또 다른 '코드인사'를 위해 나선 것"이라고 비난했다.
"매번 살펴보면서도 평소엔 못 잡아낸 감사원이야말로 직무유기"
하지만 한국노총이 이날 "깊은 우려"와 "강력 규탄" 성명을 낸 것은 그보다는 소속 사업장에 불어닥칠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걱정한 '액션'이다. 각종 방만 경영 사례를 들춰내 공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명분 쌓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감사원도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감사원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표적감사' 의혹을 부인했지만 "공기업 구조조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감사 대상으로 발표된 31개 공공기관 가운데 절반 이상의 사업장 노동조합이 소속돼 있는 한국노총은 "연중 내내 공기업 경영의 알파와 오메가까지 샅샅이 살펴보고 있던 감사원이 평시 감사에서 이를 적발하지 못한 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직무유기"라며 오히려 감사원을 공격했다.
한국노총은 절차의 면에서도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국노총은 "이번 감사는 당사자의 의견진술 기회를 철저히 봉쇄한 채 일방적으로 진행됐으며 확인서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에) 발표했다"며 "이는 다분히 다른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이어 "오는 4월 2일 한국노총 산하 회원조합들을 망라해 '공공부문대책기구'를 구성하고 정부의 잘못된 공공부문 정책에 총력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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