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민심이 심상치 않다.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 득표율은 48.6%였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활동을 놓고 "잘했다"는 평가는 38%로 줄었다. 한 달 만에 지지율이 10%포인트 이상 빠진 것. 그러나 이 대통령은 이런 심상치 않은 민심에도 여전히 거침이 없다.
4월 총선은 이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 앞에 놓인 '검문소'이다. 그는 이 검문소를 무사히 통과해 다시 질주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과 한국진보연대는 독자와 함께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검문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앞으로 5회에 걸쳐 교육, 경제, 사회 정책을 점검하는 글을 싣는다. <편집자>
명문대, 누가 들어가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나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이렇게 검사가 되었다. 그러나 옛날과 똑같은 환경에서 시작하라면 이 시대에 나는 결코 검사가 될 수 없다."
3년 전 쯤 텔레비전에서 들은 현직 검사의 끔찍한 진술이다.
지난해 발표된 '명문대 진학 현황(2007, 송경원 <특목고, 명문대 누가 들어가는가?>)'은 더욱 소름끼친다. 이 조사는 서울대, 연대, 고대, 포항공대, 카이스트, 그리고 각 대학의 의대, 치대, 한의대 등의 이른바 '명문대'에 들어간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 줬다. 그런데 거기 들어간 학생 가운데 부모 월 평균 수입 200만 원 이상이 무려 75%, 200만 원 이하는 겨우 25%에 불과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용케 살아남은 25%는 이명박 정부 치하에서 15%, 5%로 줄어들 것이며, 종국에는 0%에 이를 것이다. 왜?
영어몰입 교육? "하지 않으면 안 되고 안할 수도 없다"
지난 20일 교육과학부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영어몰입 교육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고 못 받았다. 그러나 두 가지 점에서 이 말은 사실상 "영어몰입 교육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의사봉 소리였다.
우선 이명박 정부는 '영어공교육 완성'을 정식 결정했다. "영어에 드는 사교육비를 줄여주기 위해 학교에서 영어를 더 잘 가르치겠다"는 식의 순진한 이야기가 아니다. 영어를 영어로 가르치는 영어수업을 초등학교 3학년부터 주 4-5시간 분량으로 대폭 늘려 일제히 개시하겠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고등학교까지, 모든 학생들에게 영어몰입교육을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수학이나 과학, 국어 등은 우리말로 하니까 그래도 다행일까? 전혀 아니다.
두 번째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른바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와 '자율의 원칙'이 합쳐져 만들어낸 아이를 주목해야 한다. 고교다양화 프로젝트는 자립형 사립고 100개, 기숙형 공립고 150개, 특성화 고교 50개 등 지금의 특목고를 전체 고등학교의 10%에 달하는 300개까지 대폭 확대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자율의 원칙은 입시와 학사관리 등 학교운영 전반을 학교에 넘긴다는 것이다.
중학교 교육을 훨씬 능가하는 문제를 입학시험으로 내고, 영어몰입 교육에 앞장서는 등 지금도 학교는 자기 마음대로 운영하는데 더 '자율적'으로 하시란다. 그러니 이제는 전 과목을 영어로 출제하는 입학시험을 내고, 전 과목을 영어로 가르쳐도 어쩔 수 없다. 아니, 그래야만 더욱 더 많은 이들이 지원할 것이고, 그래야만 명문대 입학실적도 높일 수 있으니 '하지 말라'고 온 국민이 고사를 지내도 할 것이 틀림없다.
전체 고등학교의 10%가 특목고가 되는 세상에서, 특목고 입학이 명문대 진학의 전제조건이 되는 사회에서 특목고는 고등학교 이하 모든 아이들의 또 다른 '명문대'가 된다. 그러므로 이제 영어몰입교육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 되고 안 할 수 없는 것'으로 변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영어몰입교육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이제야 들린다.
영어에서 결판나는 세상? 아니, 돈으로 결판난다
인수위가 영어몰입교육을 띄우니까 여기저기 반응이 민감, 신속하다. 새 학기를 연 대학들은 영어로 강의하는 수업을 일부러 만들고, 지난 3월 6일 치러진 전국 초등학교 일제고사에는 급기야 영어 듣기평가가 등장했다.
그러니 어쩌랴? 영어 학원 수강료가 30-40% 껑충 뛰어도 우리 아이만은 보내야 한다. 없는 돈을 찢고 찢어서 아이들을 영어 학원에 보내면, 그렇게만 하면 영어몰입교육을 대비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국회 국정감사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여름방학을 맞아 해외어학연수를 다녀온 아이들 가운데 광주전남과 전북 학생들은 372명인데 강남, 서초구 학생들은 796명이었다. 땅 넓이와 사는 사람 숫자를 생각하면 강남, 서초구 아이들이 열배도 훨씬 넘는다.
이 같은 사교육 편차는 3월 21일 공개된 전국 중학교 1학년 일제고사 성적에서 거짓말처럼 드러난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영어의 경우 강남구 C중학교는 평균이 98점이었으나 종로구 B중학교는 76점으로 22점이나 차이가 났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강남구 C중학교는 96점, 중랑구의 A중은 78점이었다. 평균 18점의 점수 차가 났다.
영어몰입교육 이전에도 영어 사교육을 향한 투자와 투자소득이 이처럼 확연히 다른데, 앞으로는 그 격차가 어디까지 벌어질 것인가? 인수위가 "오륀지"를 발음한 이후 강남 아파트 단지 입구에는 '영어 원어민 1:1 방문 학습 - 해외유학 효과' 현수막이 나부낀다. 읽고, 쓰는 수준을 넘어 듣고, 말해야 하는 영어 전쟁터. 유치원부터 한 시간에 20만원 하는 '원어민 1:1 강습'으로 완전무장한 아이들과 한 달에 십 수 만 원짜리 학원에서 겨우 발차기 몇 번 시늉으로 익힌 아이들 중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날까?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서 이기고, 초등학교에서 다시 중학교를 뗀 그 아이들이 중학교에서 승리하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이수한 그 아이들이 마침내 특목고에 간다. 영어몰입 교육에 대량 투자해서 거기까지 올랐는데, 대학이 만약 고등학교 내신으로 학생을 뽑으면 어떻게 되는가?
'대입 3단계 자율화', 돈 놓고 학교 먹기 완결판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에 대못 질을 했다. 먼저 고등학교 내신 성적 반영 비율을 대학 마음대로 하고, 다음은 수능 과목을 축소하며, 끝으로 입시를 완전히 대학 내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내신과 수능을 없애면 무엇이 남는가? 대학이 내는 시험, 즉 대입 본고사가 무덤을 열고 뛰쳐나오는 것이다.
입시 학원들의 인터넷 홉페이지는 벌써부터 "본 고사 부활 확실! 본 고사 대비 지금부터!"라는 경고와 광고로 번쩍거린다. 증권회사 '삐끼(애널리스트)'들은 "본 고사 부활 흐름에 따라 사교육 시장이 팽창할 것이며, 그에 따라 대형 인터넷 학원들을 비롯한 사교육 관련 주들의 강세가 예상 된다"며 난리다.
대학마다 자기 학교의 이익에 따라 입시를 결정할 수 있는 시대에 가장 믿음직한 곳은 대학에 끈을 댄 입시 사교육이다. 특목고 아이들은 사교육의 절정에서 다시 '투자여력'의 시험에 들 것이며, 누가 명문대에 가야하는지, 돈은 최후까지 심판하게 된다.
정부가 입시와 학사를 관리하는 국립대는 그래도 내신과 수능 등을 기준으로 학생들을 뽑지 않을까?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또 다른 방침, 국립대 민영화에 따라 국립대는 아예 사라진다. 그러니 "돈 많은 순서대로 대학에 가자"는 말씀은 다 이뤄지는 것이다. 부모 월수입이 200만 원 이하이면서도 기를 쓰고 공부해 명문대에 입학한 그 25%가, 이명박과 그의 친척들은 불만이다. 그들이 빼앗아간 25%를 다시 빼앗아 그 자리에 자기 아이들을 채우고 싶다.
"돈 많은 순서대로 대학 가자!" 대놓고 말할 수는 없으니, "영어 잘하는 순서로 대학 가자"고 외치는 것이다. 왜? 그게 바로 "돈 많은 순서대로 대학 가자"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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