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입학 준비부터 졸업까지 학원비, 등록금 등을 포함해 1억 9000만 원이 든다. 법조인 진입장벽이 저소득층에게는 너무 높다."
김한명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국장이 27일 "로스쿨 등록금을 해부한다"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한 이야기다. 서울 중구에 있는 국가인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는 전교조와 새사회연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함께 마련했다.
"로스쿨 졸업까지 1억 9000만 원 든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 국장이 밝힌 로스쿨 체제 하에서 법조인이 되는 데 드는 비용의 산출 근거는 이렇다.
로스쿨 입학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학원 수강은 필수 절차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세 과목 강좌를 8개월 수강할 경우, 총 소요 비용은 최소 500만 원이다. 그리고 서울 지역 로스쿨의 연 평균 등록금은 약 1500만 원이다. 로스쿨은 3년 과정이므로, 등록금으로만 약 4500만 원이 소요된다. 또 3년 동안 소요되는 교재비가 최소 300만 원이다. 그리고 로스쿨 입학을 준비하는 기간부터 졸업하기까지 소요되는 생활비가 약 4800만 원이다. 여기에 로스쿨 입학 후 생업을 중단하면서 발생하는 기회비용이 있다. 3년 동안 로스쿨에 다니지 않고, 다른 일을 한다면 얻을 수 있는 수익이다. 김 국장은 이 금액을 약 9000만 원으로 계산했다. 로스쿨 입학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개 뛰어난 학력과 경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결과다.
여기서 3년 동안의 기회비용과 생활비에 대해서는 문제 삼기 어렵다. 현행 사법시험을 준비하거나, 다른 대학원에 다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지점은 학원비와 등록금이다. 특히 연 1500만 원 이상의 등록금은 소수 부유층 자제를 제외한 대개의 학생에게 감당하기 힘든 부담일 수밖에 없다.
"법조계가 부유층 자제들로만 채워진다면?"…"로스쿨 입학 쿼터제 도입하자"
"저소득층에 대한 진입장벽"이라는 표현이 나온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 법조 영역은 과학기술, 의료 등 다른 전문 영역에 비해 사회적 성격이 훨씬 강하다. 법조인이 특정 계층 출신으로만 채워질 경우, 심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법조인들이 모두 부유층에서만 배출된다면, 사법 활동의 공정성이 충분히 보장되기 어려우리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이날 토론회 참가자 가운데 한 명인 김도영 전공노 사법개혁투쟁위원장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입학쿼터제 도입'을 제안했다. 로스쿨 입학 정원 가운데 일부를 사회적 약자의 몫으로 못 박아둬야 한다는 것. 저소득층 출신이 법조계에서 아예 배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빚에 찌든 새내기 변호사, 공공성 고려할 겨를 없다"
하지만 저소득층 학생 등 사회적 약자가 로스쿨에 입학하는 것은 법조인 구성의 계층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의 첫 단추에 불과하다. 지나치게 높은 등록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없다. 물론 로스쿨 재학생을 위한 대출 제도가 활성화된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문제는 남는다. 높은 등록금을 감당하려면, 대출 규모 역시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조인이 되면, 그동안 진 빚을 갚기에 급급한 상태가 된다. 빚에 찌든 법조인이 인권, 노동, 환경 등 공공성이 강하지만 높은 수익은 기대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진출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결국 사법 활동의 공공성이 훼손된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나온 게 장학금 제도다. 김 국장은 "미국 하버드대는 변호사의 공공서비스 분야 진출을 장려하기 위해 대형 로펌 대신 비영리기관이나 정부기관에서 5년간 일할 것을 약정하는 3학년 학생들에게 1년 등록금 4만1천500달러 전액을 면제해 주는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스쿨 제도의 고향인 미국에서도 변호사의 공공부문 진출을 독려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돼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김 국장은 "변호사가 없는 지역이나 시민사회단체, 관공서에서 최소한 6년 이상 공공변호사로 일할 것을 약정하는 경우, 국가에서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예산은 로스쿨 제도 시행 후 폐지될 사법연수원 예산 500억 원을 활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원이 적으니, 등록금이 비쌀 밖에…"
그런데 애당초 로스쿨 등록금이 이처럼 높게 책정되지 않았다면, 이런 논의 자체가 필요 없었다. 그리고 고가의 실험·실습 장비가 필요 없는 로스쿨의 등록금이 연 1500만 원을 넘겨야 할 근거 역시 분명치 않다.
로스쿨 등록금, 왜 이렇게 비싼 걸까?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은 '로스쿨 정원 규제'와 '대학 간 로스쿨 유치 경쟁'을 이유로 꼽았다. 로스쿨 정원이 소수로 제한돼 있으니, 입학생들에게 높은 등록금을 거둬들여야만 수지를 맞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로스쿨 유치 여부'가 대학의 위상을 결정짓는 분위기가 생겨나면서, 대학들이 무리한 투자를 했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무리한 투자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학생들의 주머니를 쥐어짠다는 것.
이런 이유를 접하고 나면, 비싼 로스쿨 등록금 문제를 풀기 위해 우선 해야 할 일이 뚜렷이 드러난다. 로스쿨 설치 대학의 수, 그리고 로스쿨 정원을 대폭 늘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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