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우리가 하면 대통령이 보기라도 해요?", "왜 막으라고 그래, 이 OO들아!"
흥분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24일 서울 서대문 경찰청 앞에 모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소속 어머니들이었다. 경찰청 출입구를 부대를 동원해 막아버린 경찰들이 "기자회견 때문에 출입구가 막혔다"며 기자회견 장소를 이동하라고 요구하자 어머니들은 되려 호통을 쳤다.
결국 소모적인 실랑이가 오간 끝에 참가자들이 불과 몇 발자국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뒤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인권단체연석회의, 한국진보연대 등 전국 80여개 사회단체들이 모여 개최한 이날 기자회견은 바로 "살인적인 과잉진압 부추기는 집회시위 봉쇄방침을 규탄한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떼법을 청산해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려 아래 '체포전담반(일명 백골단)' 부활, 전기충격총(테이저건) 사용, 시위예상자 사전검거, 참가자 즉결심판 강화, 경찰의 면책권 보장 등 집회 및 시위를 제한하는 경찰과 법무부의 발표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서 벌어진 소란은 머지않은 미래의 예고편을 보여주는 듯 했다.
"5·6공때 네 활개를 펴고 다녔던 이들이라지만…"
"이 자리에 서니까 정신이 다시 아득해진다. 1987년 서대문경찰서는 집회 도중 우리 한열이의 뒤통수를 최루탄으로 쳤다. 그 뒤로 나는 이 부근만 와도 가슴이 벌렁벌렁하다. 그런데 오늘 와보니 경찰이 5공·6공에 버금가는 행동을 하고 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987년 경찰의 최루탄에 맞고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국민들의 입을 최루탄과 곤봉으로 막았던 그때 경찰들이 지금 다시 체포조를 만든다고 한다"며 "하고 싶은 소리 하는 사람을 어딘가 모르게 끌고 가는 행동을 또 하려 한다"며 분개했다.
배 여사는 "우리의 목소리를 다른 이들 앞에 내놓을 수 없도록 억압하고 착취하는 정권을 다시는 보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5~6공때 네 활개를 펴고 다녔던 이들이 다시 정권을 잡았고, 또 다시 같은 현실이 된 것이 정말 한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들, 그렇게 과잉충성 해봤자 좋은 일 못 볼 것"이라며 "그 과잉충성 때문에 서러운 사람이 얼마나 세상에 많은 줄 아나"라고 물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진보연대 오종렬 상임대표는 2005년 전용철·홍덕표 씨, 2006년 하중근 씨 등 집회 참가 도중 구타를 당하고 결국 사망한 희생자들을 상기하며 "법과 질서를 어기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건 오히려 경찰"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들이 잊어선 안 된다. 농민들이 서울에 올라와서 시위를 했다. 70대의 노인과 40대 농부가 경찰에 맞아 죽었다. 경찰은 완전히 발뺌했다. 그러나 기자들의 카메라에 걸렸다. 거짓말한 경찰청장이 사임했다. 재작년, 포항에서 또 경찰의 몰매를 맞고 한 노동자가 죽었다. 그런데 사람을 죽인 그 범죄들에 대한 조사가 어떻게 되었는지, 누가 어떻게 죽였는지 아무 말이 없다. 대한민국 경찰, 이래선 안 된다."
"헌법 무시하는 경찰…법 제대로 서려면 무엇부터 바뀌어야 하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법과 질서를 바로세우겠다고 말하고 있다"며 "이는 환영할만한 발언"이라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실제로 법과 질서가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은 나라"라며 "최고의 법은 헌법이고, 법질서가 제대로 선다면 모든 법질서가 거기에 맞게 규율돼야 하는 데도 집회·시위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헌법은 집회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보장하고 있는데도 경찰은 수많은 조건을 걸어서 실질적으로 집회를 허가제처럼 운영하고 있고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원천봉쇄까지 하고 있다"며 "여기에 더 나아가 경찰의 면책을 폭넓게 보장하는 것은 일종의 특권을 부여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새 정부와 대통령은 표현의 도구를 가지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이 호소할 곳을 찾지 못하고, 가난과 차별에 울부짖는 국민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섬기겠다는 국민은 기업과 경쟁력 있는 소수에 불과하단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폭력시위'가 해마다 줄고 있다는 경찰의 자체 통계조차도 무시하면서 '쇠파이프·죽창'을 언급하며 폭력시위 타령을 하는 정부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불법화하고 국민들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 진압을 조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다시 한 번 집회시위의 자유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임을 새 정부에 알려 준다"며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귀중한 소통 통로이며 정치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민주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박탈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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