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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할 대상을 잃어버려 슬픈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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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할 대상을 잃어버려 슬픈 땅"

[손문상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ㆍ<13>] 칠레를 떠나며

프롤로그

에르네스토는 이렇게 말했다.

"이 이야기는 대단한 영웅담도 아니며 냉소주의자의 넋두리도 아니다"

나 역시 그렇다. 여행으로 고양된 한 젊은 영혼이 지났던 길을 되짚어 가며 나는 그를 만날 수 없었다. 다만 그의 이미지들로 들어차있는 거리와 박물관(아주 사소한)과 모자와 배지를 달고 다니는 또 다른 여행자들을 만났을 뿐이다. 나의 행위는 이미 위대한 기록으로 포장되어 있는 그 여정에 나를 대입해 얻어지는 위선적 영웅담에 있지 않다. 아니, 이 무모했던 여행이 그렇게 될 수 있는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에르니스토는 또 이렇게 말한다.

"동전의 앞면이 열 번 나올 동안 오로지 한번밖에 나오지 않은 뒷면만 본 것일 수 있고, 또 그 반대일수도 있다. 내 입은 내 눈이 본 것만을 설명할 뿐"

이 역시도 여행자의 시선을 방해하는 세상의 모든 선입견과 알량한 지적 소양에서 비롯된 냉소적 비난들이란 내 눈앞에서 펼쳐진 모든 경험과 그 길을 묵묵히 선택한 두 여행자의 여정에선 한줌 먼지일 뿐이라는 진실이다.
▲ 묘지는 사막 색깔이다. 시대를 알 수 없는 노동자의 묘지는, 심지어 바쳐진 꽃 마저도 사막 색깔로 시들어 광산과 동화된다. 추키까마따(Chuquicamata) 구리 광산의 노동자 묘지. ⓒ손문상

▲ 뜨겁다. 태양 아래 세워진 십자가, 그리고 뿌리 없는 꽃. 추키까마따 구리 광산의 노동자 묘지. ⓒ손문상

나는 소리로도, 사진으로도 남길 수 없었던 10솔 짜리 승객용 트럭에 동승한 인디오 노인과 청년, 그리고 추위에 떨며 함께 안데스를 내려오던 '타라타'의 달밤을 잊을 수 없다. 또 거대한 추키카마타 광산 외각 한 편에 버려진 듯 있는 광산 노동자 묘지에 이제는 누구도 찾지 않는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렀을 한 무연고 무덤의 부서진 나무십자가와 그 위에 걸린 구릿빛으로 녹슨 깡통도 잊을 수 없다. 그 시공간의 각인은 이미 내 뇌리가 아닌 가슴에 남아 게바라가 바라봤던 것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그 누군가의 것도 아니다. 어떤 기록으로도 온전하게 재생될 수 없는 나의 내밀한 영혼에서만이 구현되는 완전한 한편의 시적 영상이자 묵시록이다.
▲ 목이 마르다. 광산 노동자 묘지의 한 낮은. 추키까마따 구리 광산의 노동자 묘지. ⓒ손문상

이제 나도 이 여행을 지켜본 모든 이들을 떠나려한다. 에르네스토가 그랬던 것처럼 예전의 나 자신과 함께….

칠레를 떠나며

안정된 기록과 비정한 수치로 볼 수 있는 것은 이미 여행이 아니야. 여행을 결심한 순간, 내 머리에서 분리되어 있는 도서관 깊은 곳의 먼지 쌓인 문자들은 이미 버려진 것이지. 그래. 쉽게 말해 나는 글을 발로 쓰고 있는 셈이야. 조금이라도 듣고 싶고, 조금이라도 보고 싶으며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은 것 뿐. 질문거리를 잔뜩 준비해 넥타이를 맨 손으로 마이크와 렌즈를 게걸스레 움켜쥐고 달려드는 세련된 행위들이 얼마나 가식적인지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좀 더 솔직해지자. 내 글을 믿든 안 믿든 모든 이의 자유야. 나는 학자가 아니라 여행자이기 때문이지. 오스카 와일드의 말대로 많은 사람들이 내게 동의할수록 나는 내가 틀렸음을 느껴. 이는 여행자의 지혜와 닿아있는 것일 뿐, 학자의 권위와는 먼 것이야.
▲ 죽음의 계곡이라 이름 붙여진 이 곳은 계곡을 통과하는 바람과 탁한 색깔의 구름으로 외계의 느낌이 들었다. 아따까마 사막,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 ⓒ손문상

모두가 알다시피 이해는 세상을 만들지만 오해는 사람을 만들지. 예를들어 에르네스또, 자네는 칠레의 추키까마따 구리광산의 노동자들을 보면서 누구에게 분노해야 할지를 결정하게 되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라면 그럴만도 했을거야.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자네는 자네가 태어나 자란 나라인 아르헨티나의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돌렸던 적이 있었을까? 마치 헐리우드 스타들이 미국의 지독한 가난과 범죄를 무시하고 아프리카에 수십억씩 기부하고 봉사나가고 하는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닐까? 물론 자네는 조금 다를거야. 스스로를 '라틴아메리카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억명이 스페인어를 쓰고, …억명이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억명이 몇 가닥 국경선을 맞대고 살고 있는 이 대륙의 사람들과,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말을 쓰고,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문화권을 가진 조그만 땅덩이 출신의 일개 여행객이 느끼는 생각들은 다를거야. 하지만 이제 우리도 '세계인'이라고 생각할래. 어차피 인간의 욕망과 고민은 같은 거니까. 내 멋대로 오해한대도 그것은 '세계인'의 입장에서 느끼는 하나의 의견이니 너그럽게 봐 주길 바라네.

조금 머리가 맑아지는군. 좋아. 이제 칠레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구. 자네가 말한대로 칠레인들은 정말 친절해. 내가 칠레를 여행하면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야. "칠레인들은 친절해" 하지만 물론 한 마디 쯤 덧붙이기도 해. '북쪽 사람들은 예외'라고.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수 십번도 더 오갔다던 캐나다 친구 기억해? 이 친구 나름대로 흥미로운 분석을 내 놓았더군.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다른점이랄까?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분석을 하는데, 일견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았지.

아르헨티나는 일단 나름의 '문화'가 있대. 그 친구 표현을 한국식으로 바꾼다면 '빈대떡 신사'쯤 되는 자존심이 있다는 거야. 좋게 말하면, 신사의 덕, 이를테면 '교양'을 가졌다고 할까? 나쁘게 말하면 한때의 영광으로 현재를 산다고 할까? 하지만 칠레는 다르다고 해. 역동적인 것이 있지. 경제발전은 남미 최고 수준을 달리고, 비록 물가가 비싸지만 상품은 시장에 넘치지. 좋게 말하면, 세련되었다고 할까? 나쁘게 말하면 졸부티를 팍팍 낸다고 할까?

물론 이러한 분석이 과학적인 것은 아니지. 동전을 열 번 던져서 아홉 번 나오는 앞면을 보지 못하고 한 번 나오는 뒷 면을 본 것일수도 있고. 하지만, 내 느낌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어. 칠레에는 어딜가나 커다란 마트가 있어. 한국처럼 내가 봤을 때도 소상인들을 위협할 정도야. 로스 앙켈레스 같은 작은 도시에도 대형 마트가 서 너 군데나 되었거든. 아르헨티나에선 쉽게 볼 수 있었던, 한 삼십년 쯤 묵은 차들을 칠레에선 많이 볼 수 없어. 거의 새 차고, 시보레, 도요타, 닛산이 많아. 그리고 현대, 기아차들도 많은데, 아마 한, 칠레 FTA 때문이겠지. 이런 차들을 보고 있자니, 종로에서 먹었던 값싼 홍어회가 생각나기도 하고, 싼 맛에 사 먹었던 칠레산 와인 라벨들이 눈 앞에 아른거리기도 해.

이 세련되고 친절하며 여유 넘치는 칠레 사회의 외곽에는 물론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지. 여느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처럼 말이야. 에르네스또, 지금 세상은 자네가 느꼈던 당시의 '분명했던' 전선이 사라졌다네.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보면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하지. 그것이 보일 때, 세상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인류는 전혀 진보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네. 아쉽게도. 중세의 믿음이 수치와 규율과 처벌을 근본으로 하는 거짓 '자유'에게 자리를 내주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분이라는 말이지.

칠레의 젊은이들은 하지만 전선을 잃어버린 것 같아. 다시 말하면 분노의 대상을 잃어버렸다고 할까? 산띠아고에서 겪은 일을 하나 소개하지. 새벽 두 시쯤 되었을까?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3층에 있었던 우리 숙소의 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보았어. 두 무리의 젊은이들이 패싸움을 벌이고 있더군. 남자들은 피투성이 몰골로 거리에서 뒤엉켜 있었고,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 한 남자가 칼을 꺼내려는 것을 다른 남자가 말리고 있었어. 브라질 출신의 흑인 무리들이 주로 당하는 입장이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하자 칠레 젊은이들이 돌맹이를 마구 던져대기도 하더군. 다음날 우리는 호스텔 주인에게 물었어. 저들이 누구냐고. 한 마디 하더군. '네오 나찌'

칠레에서 네오 나찌 문제는 심각하다는거야. 대부분이 젊은이들이고 나찌의 철학을 숭상하며, 이주민들을 배격하지. 원주민도 마찬가지야. 누가 이들의 뿌리를 자른걸까? 어디에서부터 이런 근본 없는 철학이 '숭고한 아리아족'도 아닌 저 칠레노들의 둥우리에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을까? 이런 코스프레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 역시 칠레의 양극화를 반영하는 것일게야. 이에 비하면 '코리아니스트'를 표방하는 한국 우익 청년단체들은 비교적 양반이야. '아직까지'는 말이지.

일반적으로 삶이 어려우면 사람들은 분노의 대상을 찾지. 그 대상은 주로 바깥에 존재하는, 어디에서 굴러먹은 녀석인지 모를 사람들이 되고. 나는 발디비아의 한 식당에서 일하던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고 소개한 한 페루 청년이 생각나. 사라 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 칠레인 주인의 따가운 눈초리에 닥치고 일을 하러 가야 했지. 같은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그러니, '개새끼, 소새끼'를 2인칭대명사로 여기며 막일을 하는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어떤 기분일까?

그러니까 칠레는 다른 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야. 우리가 한국에서 배워온 세계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나라지. 유럽이나 미국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 수 백년전의 제국주의 시대부터, 근대적 방식의 제국주의 시대에 걸쳐 이루어진 견고한 역사를 지녔다면 라틴아메리카는 근대적 제국주의의 잔재가 거의 없어. 2차대전 시기 대부분이 '중립'을 지켰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들은 근대라고 불리는 화려한 르네상스의 그림자를 이룰 뿐이야. 격동의 20세기 전쟁사에서 보여진 '이성의 실패'와는 거리가 멀지. 서구 여러 국가들이 이성의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때,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아직까지 이성의 달콤한 즙을 먹고 허상을 키우고 있었을거야. 그래서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일 수 있고.

이를테면 칠레의 원주민인 '마뿌체족' 문제의 해결 없이 이들은 겉으로 국가 이데올로기에 의한 화합을 이루었다고 단정지어버리는 것 같아. 떼무꼬 시에서 본 마뿌체 시장이나, 로스 앙켈레스에서 본 마뿌체 박물관처럼 '박제화' 시키고선 화합과 대립과 공존의 부재를 아예 부정해버리는 것 같아. 세계의 섬, 라틴아메리카. 아니, 세계가 섬인가? 알 수 없어. 복잡한 문제지.
▲ 고추는 사실 라틴아메리카 원산이다. 한국의 여느 고추와 다름없는 마뿌체 족의 아히(Ahji, 고추)와 과거 생활 용기들. 로스앙켈레스 시에서 운영하는 시 도서관 건물 2층의 마뿌체 박물관. ⓒ손문상

한편 이 곳에도 한때 독재자라는 생명체가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거야. 우리가 칠레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피노체트는 '라드론(Ladron, 도둑)'이었어. 물론 앞서 말한 동전 이론이 이 부분에서 가장 잘 맞아 떨어질 거야. 피노체트 때문에 살기가 좋아졌다고 말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할 테니까. 한국처럼 말이지. 왜 그런지 이유는 대개 간단하기 때문에 특별히 분석할 가치는 없을거야. 있는 자들의 시선은 대개 '이윤'이라는 돋보기를 통하기 마련이니까.
▲ 정복자들은 이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마뿌체 원주민들의 전통 복장. ⓒ손문상

자네가 세상을 떠난 후이지만, 칠레는 어찌되었든 스스로 '공산주의자'를 선택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야. 따라서 독재에 관한 기억만큼 반독재에 관한 기억도 추억처럼 간직하고 있는 나라지. 이 사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앞서 말한 모든 사회적 고민거리들을 제외하고 생각해 보자구. 정치 문화 자체는 매우 훌륭하다는 것이지. 흔히 극과 극이라고 말하는 두 체제를 경험해 본 이들이라 사상의 자유에 관해서 누구보다도 관대해. "나는 공산주의자요"라고 당당히 소개하는 사람이 있어도 국가보안법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또한 체제를 바꾼 경험은 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을 거야. 칠레 자본이 남미를 누비고 다니는 데는 이런 칠레인들의 심리적 자신감과 독립심이 작용하는 것일 수도 있어.

그래서 나는 칠레의 젊은이들이 부럽기도 해. 앞서 이야기한 여러 문제점들을 안고는 있지만, 역사가 증명해 준 심리적 독립심을 가지고 있을테니까. 물론 이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야. '상상'이라 불러도 좋을 그런 생각. 어른들은 요란한 칠레 젊은이들의 행동을 우려하지 않아. 오히려 젊은이들의 생각과 스타일을 존중해주는 듯한 느낌이야. 많은 문화공연에서 영미식 록음악이 판치지만, 관객석에는 노인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모여서 즐기는 분위기야. 한국을 생각해보자. 싸구려 미국문화를 한국 사회에 접목시킨 작자들이 누구더라? 젊은이들이라고? 천만에. 모든 것은 그렇게 권력을 가진 '어른'들이 만들어가는 거야. 그리고 젊은이들을 탓하는 손쉬운 알리바이를 습관처럼 사용하지.

적화야욕에 불타오르고 있다고 흔히 배워온 미지의 세계와 살벌하게 맞대고 있는 국경밖에 경험할 수 없는 우리에게 육로로 국경을 넘나드는 여행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초록 물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식탁 위에서밖에 볼 수 없는 사막지대가 칠레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견인차라고 하는 것도 우리에겐 생소해. 석유도, 광물도, 중국처럼 '인해전술(?)'을 위한 인구도 갖지 못한 나라의 국적을 소유한 자 특유의 촌스러운 생각이랄까? 뭐 그런 거.
▲ 마뿌체 박물관 복도에 전시되어 있는, 칠레 독립전쟁에 나서는 마뿌체 원주민 전사, 그리고 그의 노모. ⓒ손문상

이런 농담이 있지.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아마 남미 전체에 해당될 거야. "신은 라틴 아메리카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다만 인간은 주지 않았다." 그 만큼 라틴 아메리카는 천혜의 자연 환경과, 또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예를 들면, 베네수엘라가 기름 몇 통 가지고 미국에 떵떵거릴 수 있는 것처럼, 이들의 경제 관념이라는 것은 우리와는 달라. 기본적으로 '부유하게' 생각하지. 한국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난하게' 생각하는 것과 달리.
▲ 떼무꼬 중심부의 아르마스 아니발 삔또 광장(Plaza de Armas Anibal Pinto) ⓒ손문상

이 말을 조금 풀어 쓰면, 한국 사람들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주로 '없는 상태에서 있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라는 말이야. 숱한 성공 이데올로기와 일 중독, 그리고 치열한 시험제도와 출세에 대한 욕망들, 좀더 고전적으로 말한다면 '잘 살아보세' 이데올로기. 이는 한마디로 '가난에 대한 공포'를 의미해. 반면에 이 곳 사람들은 그런 것이 없어. 우리는 산 뻬드로 데 아따까마(San Pedro de Atacama)에서 휴가 중인 한 구리 광산 노동자를 만났어. 이 친구, 칠레 구리 산업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게 강하더군. 국영 구리 회사인 꼬델꼬의 홍보 담당자인 빠뜨리치오 우에르따 씨보다도 더.
▲ 발빠라이소 항구의 석양을 보러 나온 한 무리의 칠레 젊은이들. ⓒ손문상

이 친구는 칠레의 구리 산업이 칠레 경제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단언했어. 그리고 한국은 어떠냐고 물었지. 우리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했더니, 잘 이해를 못하더군. 그래서 '한국은 가진 게 없어서 티비, 컴퓨터, 자동차, 반도체 산업에 몰두한다'고 했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거야.
▲ 추키까마따의 '광산 박물관'. 에르네스또가 보았을 법한 낡은 광산 장비들이 사막 한 가운데 전시되어 있었다. ⓒ손문상

한국 사람들은 언제나 바쁘다고 했더니, 휴가 일 수를 묻더라구. 일 년에 일 주일 정도라고 답해주자.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칠레인들은 보통 한 달 정도를 즐긴다고 말하더군. 이는 분명히 사회 시스템의 문제야. 일을 안 하면 밑천이 떨어진다는 공포심이 한국인들을 일 중독자로 만든다고 할까?
▲ 자유분방한 발빠라이소의 젊은이들. ⓒ손문상

이를테면 이런 거야. 하루에 네 시간 밖에 자지 못하면서 말단 공무원들의 출퇴근 시간을 체크하는 데 바쁜 한국의 대통령처럼 일상을 살아내다가는 절대 프레시(fresh)한 생각을 할 수 없는 거지. 오, 미안, 한국에서는 프레시라고 표현하면 안돼. '후뢰쉬'한 생각, 이라고 표현해야지. 육체적인 피곤을 일상처럼 안고 사는 한국 사람들이 그들이 말한 대로 '창조적'인 인력이 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지. 4시간의 수면 시간을 뺀 20시간 동안 계속 창조적인 생각만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고등학교 생물 교과서에 나온 인체의 신비에 관한 추억을 더듬어보라고 충고하고 싶을 정도야. 휴식은 노동만큼 중요한 거 아니겠어?
▲ 추키까마따의 '광산 박물관'. 뒤에 보이는 곳이 폐 광물질이 모이는 일명, '쓰레기장'이다. ⓒ손문상

▲ 녹은 구리의 모양을 만들어내는 조형 틀을 청소하는 작업이다. 구리 제련소의 노동자. ⓒ손문상

한국인의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야. 다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새벽별 보기 운동하느라 바쁜 사람들에게 인식시켜 주고 싶었을 뿐이야. 칠레의 여유로움. 나는 분명 배우고 싶은 점이 있어.
▲ 녹은 구리를 틀 안에 담아 아따까마 사막에서 끌어온 물로 식히는 과정. 추키까마따 구리 제련소. ⓒ손문상

▲ 에르네스또는 구리 생산 과정에 흥미를 가졌다. 추키까마따 구리 광산이 본격적으로 제련 작업을 시작한 시기는 에르네스또가 여행을 했던 1952년이다. 구리는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칠레 경제의 상징이다. 구리 제련소. ⓒ손문상

자, 우린 이제 칠레를 떠나네. 아쉬움도 많지만 뻬루에 대한 기대감도 만만치 않다는 것으로 위안 삼으려네. 잉카의 나라, 여행객의 천국, 꾸스꼬에서 맛 볼 한국 음식에 대한 기대(이 것은 정말 개인적인 기대라네.) 원주민이 60%를 차지하고, 고유의 문화를 간직한 나라. 그리고 미국과의 FTA를 체결하기 위한 섀도 모션을 취하고 있으며, 맞추피추(Machu Picchu) 관광 사업 개발권을 칠레 자본에게 넘기는 문제로 여론이 들끓고 있다는, 이 '유명한' 나라에서 우리는 또 무엇을 보고 느낄 수 있을까?

(프롤로그는 손문상, 본문은 박세열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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