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 채취는 시간이 중요해. 일단 난자가 배란되고 나면 그 작은 난자를 몸속에서 찾는 것도 힘들뿐더러, 난자는 배란 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수정 능력을 잃어가니까. 그래서 체외수정에서 난자 채취는 배란이 되기 바로 직전에 하는 것이 가장 좋아. 그 때가 난자의 상태가 가장 좋으니까.
체외수정에서 배란의 방아쇠가 되는 것은 hCG라는 호르몬이야(hCG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게). 호르몬을 통해 과배란을 유도한 뒤, 초음파 검사를 통해 난포가 18㎜ 이상 커지게 되면 난자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보고 hCG를 투여한단다. 보통 이것을 '난포 터지는 주사'라고 하는데, hCG를 투여하면 36시간 후에 난포가 터지며 배란이 되거든. 그래서 난자 채취는 hCG를 투여한지 36시간 후에 하게 된단다.
엄마는 지난 7월 22일 밤 10시 경에 hCG를 투여했어. 그리고 36시간이 지난 오늘 아침 10시에 난자 채취를 하기로 했지. 엄마는 어제 너무 힘들었어. 과배란 주사를 맞을 때부터 배가 불룩해지고 불편해지더니, hCG를 맞은 이후부터는 심상찮게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어. 갑자기 허리둘레가 평소에 비해 8인치(20.32㎝)나 늘어나더니 급기야는 똑바로 누워서는 숨조차 쉬기 불편해서 어제는 앉아서 꼬박 밤을 새웠단다. 체외수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 중 하나인 '난소 과자극 증후군(OHSS : Ovarian Hyperstimulation Syndrome)'이 나타난 거야.
난소 과자극 증후군(OHSS : Ovarian Hyperstimulation Syndrome) 배란 유도 시에 나타나는 가장 심각한 부작용 중의 하나로 난소 비대, 혈액 농축, 체액의 유출로 인한 복수, 흉수, 심막 삼출액 등이 나타나고, 이로 인해 오심, 구토, 복부 팽만감, 핍뇨 등의 가벼운 증상에서부터 혈액 농축, 신부전, 저 혈액성 쇼크, 혈전증, 호흡곤란, 간경변 등의 심각한 증상까지 나타나며,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하는 무서운 부작용이다. 난소가 지름 5cm 정도로 커지는 가벼운 OHSS의 경우 전체 과배란 유도자 중 20~30%에서 나타날 정도로 흔하지만 자연적으로 치유된다. 그러나 난소가 12cm이상으로 커져 파열 위험이 있고 복수와 흉수가 차는 등의 중증 OHSS는 전체의 약 0.1~1% 정도에서 나타나는데,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으니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아직까지 OHSS가 나타나는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과배란시 젊고 건강한 여성일수록 그 증세가 심하게 나타나곤 하여, 과배란 약물에 대한 감수성의 차이가 OHSS의 정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OHSS가 일어나는 기작은 아직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어. 현재 알려진 것이라고는 과배란 주사를 맞게 되면 어떻게 된 일인지 혈관의 침투력이 증가한다는 거야. 그래서 혈관에서 체액이 유출돼 몸속의 다른 공간에 모이게 돼. 촘촘했던 혈관 벽이 느슨해져서 그 사이로 액체인 혈장 성분이 새어나온다고 생각하면 돼. 몸 내부에서 새어나온 체액은 몸 밖으로 나갈 곳이 따로 없기 때문에, 그대로 몸 안에 쌓이게 돼. 그것이 복강에 모이면 복수라고 부르는 것이고, 흉강에 모이면 흉수, 심장을 둘러싼 주머니에 모이게 되면 심막 삼출액이 되는 거지.
엄마의 경우는 좀 심한 편이어서 양쪽 난소가 지금 10cm 정도로 부어올랐고, 복강 내에 복수가 가득 차서 똑바로 누워 있기도 힘들 정도였어. 특히나 과배란 마지막에 난포를 터트리기 위해 맞는 hCG 호르몬은 OHSS를 일으키는 방아쇠 같은 것이어서, 난자를 채취하러 가는 날 아침에는 복수 때문에 몸이 너무 무거워서 과연 이 상태로 체외수정을 진행시켜야 하는지 의심이 들더구나. 하지만 성숙한 난포를 모두 제거하는 것이 OHSS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한 가지 방법이었기 때문에 힘들어도 가야만 했어. 더군다나 이렇게까지 힘들었는데 여기 와서 중단시키기는 너무 아쉽고.
체외수정을 위해서는 난자와 정자를 채취하는 과정이 필요해. 정자는 별다른 의학적 처치가 없이도 채취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난자는 몸 속 깊숙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채취가 불가능하지. 그래서 초음파를 통해 난소의 상태를 관찰하면서 굵은 바늘을 복강이나 질을 통해 몸속으로 찔러 넣어 난자를 하나씩 채취하는 방법을 쓴단다. 따라서 이 과정에는 마취가 필요하고 난자 채취용 바늘로 인한 출혈과 감염의 위험도 존재하지.
보통 과배란 처치를 받으면 10개 내외의 난자가 채취되곤 한대. 약물에 대한 감수성의 차이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자연 배란과 마찬가지로 1~2개만이 채취되기도 하고, 한꺼번에 수십 개의 난자가 나오기도 해. 엄마의 경우는 후자였어. 엄마의 몸이 약물에 민감하게 반응한 탓에 50여 개에 달하는 난자가 채취되었거든. 일반적으로 난자가 많이 채취될수록 OHSS 증상이 나타날 확률이 높아지지. 그만큼 난소가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말이 되니까.
난자 채취가 끝나면 마취에서 완전히 깨어날 때까지 회복실에서 1~2시간 정도 누워 있다가 돌아가는 게 보통이야. 하지만 엄마의 담당 의사는 엄마를 집에 보내지 않았어. 복수 때문에 좀 더 상태를 관찰해야 한다고 하면서 알부민 링거액을 처방했지. 복수가 찬다는 것은 혈액 내의 액체 성분, 즉 혈장 성분이 빠져나와 복강에 쌓여 있다는 소리야. 그래서 복수가 차는 경우 혈액의 양은 오히려 줄어들어. 일종의 탈수 상태가 되는 거지. 이렇게 혈액 속의 수분이 줄어들면 혈액이 끈끈해져서 혈전이 생겨 혈관을 막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복강에는 물이 가득한데도 우리 몸은 수분 부족 상태로 인식하고 신장의 기능이 저하되어 노폐물이 체내에 쌓여 심각한 이상을 초래할 수도 있어.
OHSS 증상을 겪고 있는 엄마에게 내려진 처방은 알부민과 이온 음료였어. 알부민(albumin)은 대표적인 혈장 단백질로 수분을 끌어들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혈액 속의 수분 함량을 유지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야. 혈액 속에 알부민이 부족하면 수분이 혈관 밖으로 빠져나가 복수가 차는 증상이 나타나곤 해. 알부민은 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간에 심각한 이상이 있으면 알부민 부족으로 인한 복수가 차기 쉬워. 간암이나 간경변 환자들에게 복수가 쉽게 차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야. OHSS의 경우에도 수분이 빠져나가 혈액이 줄어들기에 알부민의 투여가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어. 알부민 링거액은 사람에게서 채취한 혈액을 특수 가공 처리하여 혈장에서 알부민 성분만을 따로 분리하여 만든 것이야.
플라시보 효과 영양제나 기타 알려진 다른 비의학적 치료법에 대해서는 '효과없다'고 이야기하면 '나는 그래도 효능을 체험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 개중에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기작에 의해 실제 효능이 발휘되는 경우도 있지만, 플라시보(placebo) 효과라는 일종의 '가짜 약' 효과로 인한 경우가 많다. 우리는 '긍정적인 사고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는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러한데, 특히나 자신이 먹는 약이 '훌륭한 치료제'라는 믿음 하나만으로도 신체 내 면역 시스템 및 신진대사가 자극되어 실제로 증세가 완화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이런 현상을 플라시보, 즉 위약 효과라고 하는데 드물지 않게 나타나는 플라시보로 인해 신약의 임상 실험 과정에서는 플라시보의 제거가 중요한 관건이 된다. 플라시보가 적절히 제거되지 않고, 소수의 환자만을 대상으로 시험하게 된다면 효과가 전혀 없는 약이 효능이 있는 것처럼 둔갑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알부민 제제는 몸에 알부민이 부족하여 이상 증세를 나타낼 때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 만든 것인데, 흔히 치료제보다는 '영양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아마도 간은 우리 몸의 나쁜 물질을 해독하는 곳이라서 간이 나빠지면 쉬이 피로해지는데, 간경변 환자들이 알부민을 맞고 나면 증세가 좀 나아지는 것에서 그 효과가 와전된 모양이야.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간이나 혈액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데도 단지 피곤하고 기운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알부민 영양제'를 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해. 하지만 단지 피곤하다는 이유로 알부민을 맞는 것은 의학적으로는 별 효과가 없다고 하는구나. 알부민을 맞는 것이 그다지 나쁠 것은 없겠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는데도 고가의 알부민을 맞기보다는(알부민 제제 한 병의 값이 11만 원이나 하더구나. 엄마는 총 5병의 알부민을 맞았으니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았지) 그 돈으로 영양가 좋은 음식을 사먹는 것이 건강과 기분 전환을 위해서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어.
엄마는 알부민 한 병을 다 맞고, 1.5리터짜리 이온음료 한 병을 억지로 다 마신 뒤 소변이 나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병원을 나설 수가 있었어. 복수가 찰 때에는 이온 음료를 마시는 것을 권하더구나. 복수로 인해 혈액 속 수분이 부족해지면 소변이 잘 나오지 않게 되고, 그럼 혈전이나 신장 기능 저하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수분도 공급하고 소변 배설을 원활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온 음료를 마시라고 하는 거지. 가뜩이나 복수로 배가 불편한데 부른 배에 하루에 2-3리터씩 이온음료를 마시는 것도 고역이었어.
의사는 복수가 더 찰 수도 있으니 입원을 해서 상태를 관찰하는 것을 권했어. 하지만 집에서 멀기도 하고 병실도 마땅치 않아서 입원 대신 알부민을 몇 병 처방받아서 집으로 왔지. 알부민을 매일 맞아야 한다고 해서 다음 날, 집 근처의 가까운 산부인과 병원으로 입원을 하러 갔어. 하지만 입원 대신 병실에서 알부민만 맞고 집으로 돌아왔단다. 난임이 아닌 출산을 전문으로 하는 산부인과 병원에서 엄마의 눈에 들어온 건 온통 행복한 표정을 짓는 임산부와 갓난아이를 안고 기뻐하는 엄마들 뿐이었어. 그 사이에서 임산부도 아니면서 임산부처럼 부른 배를 안고 다니려니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거든. 그래서 입원 대신 하루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초음파로 복수양을 체크하고 알부민을 맞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지.
그날 밤, 집에 와서 누웠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어. 부풀대로 부푼 복수가 폐를 눌러서 숨쉬기가 힘들었거든. 결국 엄마는 침대에 쿠션을 놓고 기대어 앉은 채로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어. 순간 문득 별이 생각이 나더구나. 엄마가 이렇게 복수 때문에 병원을 오가느라 잊고 있었는데, 이제 별이가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이야.
오전에 채취한 아빠의 정자와 엄마의 난자는 시험관 속에서 서로 섞여 수정이 되었을 거야. 난자와 정자의 상태가 좋았다면, 지금쯤은 별이와 수십 명의 별이 쌍둥이들이 시험관 속에서 수정된 뒤 인큐베이터로 옮겨져 부지런히 세포 분열을 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3일 혹은 5일 뒤에 엄마 몸속으로 옮겨져 자리를 잡겠지. 그 생각을 하니 부푼 배에서 느껴지는 압박감과 통증이 어느 정도 사그라지는 것 같았어.
엄마와 아빠의 분신, 맨눈으로는 보기도 힘들 정도로 작은 별이가 이제 막 세상에 존재하며 부지런히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엄마도 더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최초의 시작을 엄마의 따뜻한 몸속이 아닌 딱딱한 유리관 속에서 시작하게 하여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고.
별아, 넌 이제 겨우 수정된 작은 수정란이지만, 엄마는 네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위로가 될 정도로 든든하단다. 그러니 엄마와 만날 때까지 시험관 속에서 건강하게 지내렴. 이제 곧 엄마가 너를 품에 안을 테니.
참고 문헌
김석현 외, '중증 난소 과자극 증후군의 임상적 고찰', <대한산부회지>, 제35권 6호, 1992.
김용만 외, '배란 유도 주기에서 난소 과자극 증후군에 대한 연구', <대한산부회지> 제35권 1호, 1992.
'여포자극호르몬 수용체 돌연변이가 난소 과자극 증후군 유발',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전문연구동향 게시판.(☞바로 가기)
김은정 외, '입원을 요하는 중증 난소과자극 증후군 환자에서 난자 채취시의 예방적 알부민 투여가 임상 경과에 미치는 영향', <대한산부회지> 제45권 제9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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