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私黨)'을 자처한 이 기상천외한 당명이 법적으로 가능한지를 놓고 선관위가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는 건 개그에 가깝다. 게다가 당주인 박근혜 전 대표는 한나라당에서 한 발도 나오지 않겠단다. 더 재밌는 건 이 당의 핵심 인사 왈 "당선 즉시 절차를 밟아서 한나라당에 입당하겠다"고(홍사덕) 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면서 한나라당이 아니고, 박근혜당이면서 박근혜당이 아니라는 논리다. 이렇게 3연타 개그를 작렬한 형태불명의 그 당이 과연 박근혜의 미래인가?
퇴출 1순위들이 감투까지
면면은 지난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복사본이다. 자기들도 "경선 때 박 전 대표를 도왔던 동지들의 결성체"라고 인정했다.
당시 캠프의 상임고문과 공동선대위원장을 각각 맡았던 서청원-홍사덕 듀오가 다시 의기투합해 이 당을 이끈다. 서 전 대표는 공동대표를 맡았고, 홍 전 의원은 선대위원장을 맡을 것이라고 한다. 이번엔 후배들 뒷바라지에 머물지 않고 직접 지역구 총선에도 뛰어들겠다고 한다.
이들이 누구인가. 오래 전에 5선 고지를 밟은 예순 다섯 동갑이다. 홍 전 의원은 장관에 국회부의장을 지냈고, 서 전 대표는 당 대표를 했던 인물이다. 정치판의 영욕을 누릴 만큼 누린 사람들이란 얘기다. 이것만으로 '물갈이' 대상 1순위에 꼽혀도 손색이 없다.
그 뿐인가. 서 전 대표는 2002년 대선 때 불법 정치자금 12억 원을 수수해 징역형을 받았다. 홍 전 의원은 2005년 10.26 재보선 공천에서 탈락한 뒤 한나라당을 탈당했다가 지난해 경선 때 은근슬쩍 복당을 시도했으나 눈칫밥만 먹고 물러섰다.
'비리'와 '철새행각'. 지금 진행 중인 각 당의 공천에 뒷말이 많다고는 하지만, 현존하는 '공당'의 공천 심사를 받았다면 어느 심사관도 잘라내지 않고는 못 배겼을 퇴출 1순위들이다.
이들을 앞세워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수도권과 영남권 일부의 박근혜계가 줄줄이 '친박연대'에 붙어있는 모양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공당에서 물갈이 된 퇴물들이 여론의 눈치도 안보고 모여 만든 게 이 사당의 으뜸 가는 정체성 되겠다. 공천 기준? 그런 거 없다.
이상득은 어떤가?
얼토당토않은 당을 구성한 이들 '대범파'와 영남권에서 '무소속 연대'로 나서겠다는 '소심파'가 박근혜계의 주력부대를 이룬다. 그러하기에 총선 대응법은 달리해도 두 집단의 공통점이 많다. 무엇보다 총선을 권력게임의 장으로 변질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오 의원을 협공한다. '한 놈만 패기로' 작정한 것 같다.
홍사덕 전 의원은 공천 개입 누명이 억울하다는 이 의원의 항변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하늘이 파랗다고 하면 파란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굳이 수치를 들이댈 일이 아니다. 말을 바꾸고 꾸미려고 해도 있는 사실을 어떻게 덮겠느냐"고 공격했다. 영남권 무소속 연대의 구심인 김무성 의원도 전날 "결국 이재오는 총선에서 낙선으로 끝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들의 '이재오 때리기'는 이명박 정권의 2인자가 개입한 한나라당의 부당 공천을 주장하기 위함일 터. 그럼에도 '상왕'이라는, '1.5인자'라는 말까지 듣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의 공천 개입설에 대해선 일언반구가 없다. 숱한 눈총을 뒤로 하고 최고령, 최다선의 이상득 의원이 공천을 받았음에도 탈락한 자신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하지 않는다.
서청원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 그 측근들만을 위한 정당 만들기"라며 "완장 차고 행세하기 바쁜 측근 간신배"들을 질타한 속에 이명박계의 나머지 반쪽은 순백색이라는 의미가 담긴 것일까? 아니면 길고 긴 권력 게임에서 생존하기 위해 적을 반으로 갈라 한쪽과는 제휴를, 한쪽과는 적대를 선택한 것일까? 어느 경우든 이들이 '박근혜 사당'을 자처한 이상 '이명박 사당화'를 욕할 자격은 없지만 말이다.
박근혜에겐 毒이다
이런 사람들이 총선에서 살아남아야 박근혜가 산다고들 하니 박 전 대표도 참 딱하게 됐다. 노회한 정객들의 퀴퀴한 정치놀음에 '암묵적 용인'으로 편승했으니 박 전 대표도 무관하다고는 볼 수 없겠다. 무관하다면 서 전 대표가 "(친박 연대를 결성한 과정에 박 전 대표와) 교감은 없었다"고 한 데 대해 명의도용 책임이라도 따져야 할 일일 테다.
경선은 끝났다. 대선도 끝났다. 한 때의 라이벌에게 5년의 권력이 맡겨졌다. 많은 사람들은 박 전 대표가 지난해의 분루를 홀로 삼키고 정당정치의 교본을 쓴 것으로 갈무리한 줄 알았다. 그 바탕에서의 절치부심이 박 전 대표를 더욱 강하게 단련시키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런 막대한 자산을 공천에서 잃은 측근 몇 명이 아쉽다고 내팽개치는 박근혜 그릇도 원래 고만고만했나 싶다.
또한 박 전 대표가 차기를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이명박 이후의 한국 사회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게 정도다. 혼자 할 수 없다. 세력이 있어야 한다는 건 지당하다. 그러나 '박근혜' 이름 파는 것 외에 밑천이 없는 '친박 연대'가 세력의 주축이라면 곤란하다. 수도권의 '정적'을 부각시켜 영남에서 당선돼보겠다는 공천탈락 정객들도 이제는 울타리 밖으로 내보낼 때가 됐다.
박근혜의 대선가도는 이명박보다 나은 보수라는 걸 보여줄 때에만 열린다. 보수 신권력의 주력부대는 젊은 테크노크라트다. 누구누구 계보로 나뉘기도 하지만 압도적으로 공천된 이명박계의 '새 피'를 들여다보면 전문가들이 많다. 친박 연대나 무소속 연대 인사들이 이들보다 시대흐름에 적합하다고 볼 만한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설령 박근혜계가 보기에 '선무당' 같은 보수 신주류의 집권기가 비판의 표적인 대운하 실험 등 자충수에 의해 실패로 끝난다고 해도 그것이 퇴출된 '올드보이'들이 권력을 잡을 기회가 되리라는 건 착각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분명히 해야 할 것 하나. 한나라당을 박 전 대표와 박근혜계가 좌지우지하던 때도 꽤나 길었다. 그 시절엔 뭐했나? 권력의 역관계는 돌고 돈다. 하지만 과거로 퇴행하지는 않는다. 박 전 대표는 과연 훗날을 위한 '예비 신주류'를 양성하고 있는가? 아무런 상품가치도 없이 총선 민의를 왜곡시키고 있는 측근들의 시장교란 행위부터 단속하고 볼 일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