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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봄은 '불러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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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봄은 '불러오는' 것입니다"

[화제의 책]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와 <푸른생명>

<프레시안>의 고정필자이기도 한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으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은 건 지난 달이었다. "몸이 다시 안 좋아져서 칼럼 연재를 당분간 쉬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여름 모든 활동을 당분간 중단해야 할 것 같다고 연락이 온 뒤 두 번째였다. "글쓰기는 물론 책읽기조차 하지 말라"던 의사의 말대로 그는 한동안 꼬박 방 안에서 "통나무처럼 누운 채 '시체 놀이'를 하며"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연재가 얼마 되지 않은 때, 또 '활동 중단' 선언을 했다.

하종강 소장의 글을 <프레시안> 독자들에게 전할 수 없게 된 아쉬움보다, 그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루에도 두 세 곳씩 전국을 돌며 60평생 처음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된 할머니들 앞에서 거창한 노동법 조항이나 단어도 낯선 외국의 사례를 들먹이지 않고서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혼자 겪으면 너무 힘이 드니까 서로 도와주며 함께 하자고 모인 것, 옳은 일을 서로서로 도우며 함께 하자고 모인 것, 그것이 바로 노동조합이다"라고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우리 사회에 하종강 소장 외에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날, 피가 낭자한 생리대가 어떻게 내동댕이쳐졌는지…"
▲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하종강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프레시안

그의 건강이 어떤지 궁금하던 즈음에 새 책이 나왔다. 지난해 나온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철들지 않는다는 것>보다 먼저 시작한 책이라고 했다. 가장 먼저 시작해 가장 늦게 나온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한겨레출판 펴냄)을 읽다보면 그의 몸이 왜 '파업'을 선언했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연구소로 무턱대고 찾아 왔던 사람들과 그가 찾아가 만난 사람들. 노동 교육에 뛰어든 뒤 인생길에서 때로 그는 "같은 꿈을 꾸고,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는 생면부지의 '후배'를 얻게 되기도 했겠지만, "때로 그 '같은 꿈' 때문에 '같은 상처'를 입는 경험은 나누어 갖기도" 했을 테다.

"야, 이 무식한 새끼들아! 진단서가 뭐가 필요해! 내가 여기서 벗으면 될 거 아냐"라고 외치며 여성 노조 위원장이 정말로 옷을 반쯤 벗어버렸을 때. "그날, 피가 낭자한 생리대가 사람들 앞에 어떻게 내동댕이쳐졌는지"를 그는 늘 자기 입으로 끝까지 차마 말하지 못하고 "생리휴가는 그날부터 실시되었다"는 결론만을 얘기해 왔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늘 그 '상처'가 함께 남아 있었다.

"15년 동안 한 일은 '근로기준법대로 하자'는 것 뿐이었다"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조차 아련한 "살벌한 '비합의 시대'"에 전국민주노동자연맹이라는 비공개 조직의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가 검거돼 재판을 받은 편물 노동자 유동우 씨의 최후진술도 그는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노동운동을 했다고 하는데, 내가 지금까지 15년 동안 해온 일은 '근로기준법대로 하자'는 주장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가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켜져야 할 최저의 기준입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노동자가 인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그동안 했던 활동은 단지 인간 선언일 뿐이었습니다."

하종강 소장은 이 최후진술이 나오던 "그때부터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별로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적었다.

생활고도 어려운데 정부가 나서 비정규직 뺨까지 후려치는 세상
▲<구속 노동자 옥중 서한집, 푸른 생명>(구속노동자 석방과 사면·복권을 위한 공동행동 엮음, 메이데이 펴냄)ⓒ프레시안

그의 말대로 시간은 흘렀지만 여전히 "법대로 하자"고 외치기 위해 모든 것을 내걸고 싸우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아니, 급격한 양극화와 비정규직의 확산으로 오히려 더 늘었는지도 모른다. 하종강 소장의 새 책과 비슷한 시기에 함께 나온 <구속 노동자 옥중 서한집, 푸른 생명>(구속노동자 석방과 사면·복권을 위한 공동행동 엮음, 메이데이 펴냄)은 우리가 여전히 '살벌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생애 처음으로 '매장 점거'라는 불법을 저질렀던 이랜드 아줌마 비정규직들, 전태일 열사의 분신으로부터 30년도 더 지난 오늘날에도 "건설 노동자도 인간"이라며 거친 태풍 속 포스코 본사를 9일간 점거했던 포항 건설노조, 일터에서의 차별과 정부의 거친 단속에 맞서 "우리도 같은 노동자입니다"라고 떠듬떠듬 소리치던 이주 노동자까지.

<푸른 생명>은 없는 이들에게 더욱 가혹한 21세기를 살아가다 푸른 수의를 입고 감옥에까지 갇힌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세상은 이미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를 말하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그 앞의 정권에 비해 더 많은 1052명의 노동자가 구속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특히 2006년 이후 구속된 노동자 352명 가운데 70%가 비정규직 노동자인 것은?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푸른 생명>의 발간사에서 "생활고도 서러운데 정부가 나서 뺨까지 후려치는 격"이라고 혹평했다.

"불법 엄단" 외치는 이명박 시대의 '불길한 예감'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은 "최근 정권 가운데 가장 많은 구속 노동자를 배출(?)한 노무현 정부를 겨냥했던 출판 작업이 다소 늦어져, 이명박 대통령 취임과 더불어 발간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법을 지키지 않는다'며 노동자들과 대화하기조차 거부하는 '전과 14범' 이명박 대통령의 세상에서 <푸른 생명>이 더 푸르른 빛을 발하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예감대로 이명박 정부는 벌써부터 "불법 엄단"을 틈만 나면 강조하고 있다. 13일 있었던 노동부 업무보고에서도 이 대통령은 "합법 파업에는 조정서비스를 제공하겠지만 폭력 등 불법에 대해서는 적극 엄단하겠다"는 보고를 받고 무려 두 차례나 칭찬을 했다고 한다.

"왜 그들이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이 대통령의 이해를 구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불법의 잣대는 과연 공정한 것인지 이 두 권의 책은 묻고 있다.

코스콤 비정규직의 거리 농성장에는 위법적 요소를 감수하면서까지 용역 직원을 동원해 강제 철거를 감행한 영등포구청과, 노동부의 '불법 파견' 판정으로 이미 확인된 직접 고용 책임도 법원까지 촉구한 '교섭 의무'도 모두 모른 척 하고 있는 코스콤의 '떼법'을 이 대통령은 어떻게 엄단할 계획일까?

"꽃을 피우지 못한들 꿈이야 꺾이겠습니까"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 시대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낯빛이 어둡기만 한 것은 그 때문이다. 더군다나 공공부문 개혁을 소리치는 정부 아래 '철밥통'이라던 공공기관 정규직 노동자마저 불안에 떨고 있다.

그런데도 하종강 소장은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지금은 희망을 키워갈 때이다"라고 말한다. 푸른 수의를 입은 노동자들도 차분한 목소리로 "지금 당장 꽃을 피우지 못한들 어떻습니까? 우리의 꿈이 꺾이기야 하겠습니까. 봄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불러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의 말대로 '희망의 봄'은, 부르면 찾아올까?

괜한 짓을 하였나 후회가 됩니다/ 제 몸을 썩혀 뿌리를 내리고/ 그리움 단단히 움켜쥐지만/ 흙 한 줌 없이 얼마나 버틸지/ 안타까이 바라봅니다

빛을 향해 힘차게 뻗어 올리는 그 그리움이 부질없는 눈물이 될까/ 가슴조려, 아침이면 깨어/ 가장 먼저 눈길을 줍니다

사랑도 이렇게 떨려오는 그리움만 남고/ 끝내 꽃이 피지 못할까/ 시들어 버릴까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나/ 빛 한 줄기 없이도, 흙 한 줌 없어도/ 갇힌 창살 속에서도 뜨거운 가슴에/ 생명을 틔워내고 봄을 알려 내는데/ 꽃을 피우지 못한들 꿈이야 꺾이겠습니까


- '다시 푸른 생명에게' <푸른 생명>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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