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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월급 봉투'에는 인디오의 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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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월급 봉투'에는 인디오의 눈물이…"

[손문상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ㆍ<11>] 아따까마 사막

눈은 마르고 손은 바스락거렸다. 발빠라이소(Valparaiso)에서 안또파가스따(Antofagasta)까지 가는 여정 내내 우리는 버스 안에서 졸다 깨다 하며 칼칼한 목을 다듬어야 했다. 어느 순간 풀빛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먼지 풀풀 나는 모래 둔덕이 차지했다. 지리학이나 기상학 따위를 들추고 싶지도 않고, 지식 역시 짧지만 아따까마 사막지대는 낙타 한 마리랑 비비 꼬인 아이스크림이 등장하는 CF나 소피 마르소가 섹시한 표정으로 등장한 영화에서 본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막이라기보다는 황무지라는 표현이 더 근접할 것이었다. 거짓말처럼 사막은 우리 앞에 나타났다.

물은 귀하고, 돈은 넘치는 사막 도시

여섯 시간 정도 달려서 멈춘 휴게소는 온통 사막으로 둘러싸인 황막한 지대에 오아시스처럼 위치한 도시였다. 돈과 숙박비를 동시에 아껴보자는 생각으로 세미까마(Semi Cama, 반 침대차) 밤 차를 타고 새벽을 달렸던 우리는 잠이 덜 깬 상태로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 좌석이 젖혀지는 각도의 사소한 차이가 허리의 안녕을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 지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었던지라 내리자마자 한껏 기지개를 켰다.

예를 들어 5도 정도 더 젖혀지고, 앞좌석과의 공간이 5센티미터만 더 넓었어도 우리는 버스비 안에 숙박비까지 충분히 계상할 수 있었을 거였다. 돈을 많이 부담할 수록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수치와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편안함은 커진다. 밤새 뒤척이는 도중 강성 유물론자로 변신해 있던 우리는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광고 카피를 생각해냈다.

칠레 북부 사막지대는 물이 귀한만큼 물자도 귀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광산 지대와 관광 도시가 모여 있어서 돈이 넘쳐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들이 북부 사막지대의 물가를 결정한다는 이야기는 추키카마타 구리 광산에 갔을 때, 홍보실 직원에게 들을 수 있었다.

일례로 휴게소에서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 입장권(?)을 끊으려고 하는데, 화장실 이용시세는 단박에 33%씩이나 상승해 있었다. 200뻬소(우리 돈 약 400원). 황당한 사실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1000뻬소(우리 돈 2000원 정도)짜리 담배를 버젓이 1200뻬소(우리 돈 2400원 정도)에 팔고 있었던 거다. 그렇다. 우리는 사막 한 가운데로 들어온 것이다.

에르네스또는 사실 이 사막지대를 건너지 않았다. 발빠라이소에서 배를 훔쳐타고 안또파가스따까지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여정을 꾸렸었다. 하지만 우리는 배를 탈 수 없었다. 결국 버스를 타고 22시간 여를 달려 안또파가스따로 향하기로 결심한 거였다. 당연히 이런 여정은 배편보다 훨씬 시간도 덜 들뿐더러 북부와 남부의 확연한 차이에 대한 적응도를 높여줄 거였다.

안또파가스따는 지금까지 칠레에 관한 우리의 개똥이론을 상당 부분 증명해주는 도시였다. 시내 중심가는 신흥 상업도시로써의 안또파가스따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광장은 소외되었고, 대신 우리나라의 명동 같은 거리에 사람들은 북적였다. 물가는 잠자고 있던 우리의 지갑을 화들짝 깨웠다. 안또파가스따에서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음식점에서 우리는 스위스에서 이민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아주머니에게 추키까마따에 관한 정보를 대충 얻을 수 있었다. 그 날은 마침 금요일이었고, 다음날인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은 추키까마따의 공식 홍보 사무실인 '뚜르 추키(Tur Chuqui)'도 쉰다는 것이었다. 추키까마따까지는 역시 북부의 신흥 공업 도시인 '깔라마(Calama)'에서 꼴렉띠보(Colectivo) 택시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이틀을 노느니 염불한다고, 아따까마(Atacama) 사막의 유명한 관광지인 '산 뻬드로 데 아따까마(San Pedro de Atacama)'를 찾기로 했다.
▲ 관광객과 원주민은 사이좋게 공생한다. 아따까마 사막 관광의 베이스 캠프 격인 산 뻬드로 데 아따까마(San Pedro de Atacama)의 풍경.ⓒ손문상

'미사리' 분위기의 산 뻬드로 데 아따까마

하지만 아따까마 사막의 진면을 보고자 하는 우리 욕구는 쉽게 방해 받을 수 있었다. 일단 표가 문제였다. 주말을 맞아 사람들은 사막으로 모였다.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여튼 '주말에 사막간다'는 것이 이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 네 시간 정도 거리의 깔라마로 출발했다. 도착해서 커피에 빵을 적셔 먹은 후, 산 뻬드로 데 아따까마로 향하는 터미널로 가는 꼴렉띠보를 찾으라는 사람들의 충고에 따라 꼴렉띠보를 타고 프론떼라(Frontera) 회사의 버스 정류장을 찾았으나, 남은 표는 저녁 6시 뿐.

다섯 시간이나 버릴 수 없었던 우리는 세 군데의 터미널을 들러 겨우 4시 반 버스 표를 끊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 버스가 원래 3시 반 버스인데, 연착으로 인해 4시 반으로 변경되었던 것이었고, 더 문제는 4시 반에 도착하기로 한 버스가(세상에 한 시간이나 이미 연착된 버스가 말이다.) 5시 15분이 되어서야 도착한 것이다. 결국 우리가 출발한 시각은 5시 40분. 6시차를 피하기 위해 이동한 데 들어간 생돈에 대한 추억을 쓸쓸하게 곱씹어야 했다. 물론 모두가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빨리빨리'문화에 담겨 숙성된 우리의 생체 시계에 관한 작은 명상도 할 수 있어 나름대로 유익한 시간들이기도 했다. 여하튼 칠레에 간다면 버스 시간은 절대로 믿지 마라.

우여곡절 끝에 일단 산 뻬드로 데 아따까마로 출발. 하지만 운명은 역시 우리의 편이 아니었다. 산 뻬드로는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도시가 아니었다. 작긴 작았지만 주말을 맞은 사막은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벼 왠지 '미사리' 분위기가 났다.
▲ 산 뻬드로 데 아따까마의 한 낮. ⓒ손문상

▲ 주말을 사막에서 보내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산 뻬드로 데 아따까마의 거리 풍경. ⓒ손문상

▲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필요없다. 사막은 모든 이들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다. 산 뻬드로 데 아따까마의 거리 풍경. ⓒ손문상

사막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

하지만 사막은 사막, 그리고 여행은 여행, 거리는 흑벽으로 지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사람들은 아라빅 스타일의 복장부터, 집시, 히피, 혹은 펑크, 그 사이에 깔끔해 보이는 백인 관광객들까지 다양한 군상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마다의 얼굴을 하고, 저마다의 웃음을 짓고 있는 틈 사이로 무려 열 군데 이상의 호스탈을 돌아다닌 끝에 겨우 5인용 다모토리의 침대 두 칸을 차지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우리는 쌀을 사다가 밥을 짓고, 베이컨에 상추와 마늘을 싸서 모 시에프에서 절규하듯 부르는 이름으로 유명한 '00고추장'을 발라 쌈을 해 먹었다. 독일인들과 영국인, 그리고 칠레인 관광객들은 우리 식단을 보더니, '건강에 정말 좋을 것 같다'며 감탄을 하곤, 스테이크를 뜯으러 식당을 찾아 밖으로 나가버렸다. 우리 옆 침대를 차지했던 앤드류(Andrew)라는 캐나다인은 우리에게 많은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숙소에서 만난 독일인들이나, 웨일즈의 이상한 영어를 구사하는 친구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이 친구는 캐나다 출신으로 실리콘 벨리에서 IT관련 업종에 종사하다 직장을 그만두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다는 자신의 여자친구를 만나러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김에 남미 여행을 해보고자 이 곳에 왔다고 했다. 손문상 화백에게 사진 찍는 법을 유심히 배우더니, 우리와 세계 정세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자라 자신을 소개한 그는 미국의 대외정책과 미국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지, 불같은 소회를 토로했다. 다 뻔한 이야기라 치고 한 가지 이 친구에게 있어서 흥미로운 것은 그 사고방식이었다.

한창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는 이 친구와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쓸모있는 일인지에 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한국의 '영어 열풍'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인간은 모국어로 사고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 엔지니어는 마지막에 가서야 '흥미롭네요' 하고 맞장구를 쳤다. 자기가 본 '아프리카'의 현실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침을 튀겨가며 '비위생적인 성관계'가 에이즈의 근본 원인이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캐나다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눈을 반짝거리기도 했는데, 정작 자신 스스로가 얼마나 편협한 생각에 빠져 있는 지에 관해선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꽤 많은 대화시간을 들여 그 점을 지적해 주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요하게 생각할 만한 지적이라고 맞장구 치고는 사라졌다. 나중에 한 술집에서 어느 여성분과 함께 스페인어 강좌를 듣고 있는 앤드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여자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이다'라고 했던 그의 신조를 다시 상기했다.
▲ 눈 앞에 있는 것에 정신이 팔리면 다른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법이다. 해가 지는 반대편의 홍조가 더 아름답다. 아따까마(Atacama) 사막의 저녁. ⓒ손문상

"구리광산 투자자들의 폭리 뒤에는 잉카인들의 눈물이 있다"

아따까마 사막은 슬픈 땅이다. 1879~83년도에 있었던 태평양 전쟁(뻬루-볼리비아 연합군과 칠레군이 자원의 보고인 아따까마의 영유권을 두고 치른 전쟁. 칠레가 승리함으로써 아따까마는 칠레 영토가 되었으나, 이 곳의 원주민은 사실 뻬루, 볼리비아의 잉카 일족인 '아이마라족과 아따까마족'이다)으로 칠레 영토가 되었으며, 며느리도 모른다는 엄청난 구리와 초석 매장량을 가진 부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이 곳에 살던 원주민은 '경작지'를 위한 물을 구리 회사에 깡그리 내 주어야 했다.

물론 미국 광산회사에 우호적이었던 칠레의 전쟁 승리로 이익을 본 이들은 따로 있었다. 미국 투자자들은 2차대전 이전 본격적으로 구리 광산 매입에 나섰고, 1925년부터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의 인민연합(Unidad Popula)에 의해 구리 광산이 국영화되기 전까지, 미국계 회사들은 세금만 3억 4천만 달러를 지불하고도 1억 7천만 달러 가까이의 순익을 남겼다고 한다.
▲ 죽음의 계곡이라 이름 붙여진 이 곳은 계곡을 통과하는 바람과 탁한 색깔의 구름으로 외계의 느낌이 들었다. 아따까마 사막,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 ⓒ손문상

▲ 소금과 모래와 돌과 바람과 구름. 아따까마 사막, 달의 계곡. ⓒ손문상

▲ 삐죽 솟은 이 거대한 산은 소금을 품고 있다. 이 계곡을 지나가면 바위 안에서 소금이 응고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따까마 사막, 달의 계곡. ⓒ손문상



▲ 달의 계곡에 달이 떴다. 아따까마 사막, 달의 계곡. ⓒ손문상

▲ 석양을 보기 위해 오르는 길 위에서. 아따까마 사막, 달의 계곡. ⓒ손문상

▲ 사막에서의 석양은 특별하다. 거대한 댐처럼 형성된 검은 모래 사막 위로 석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아따까마 사막, 달의 계곡. ⓒ손문상

"사막의 물을 쥐어짜 제련공장을 움직였다"

산 뻬드로 데 아따까마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또꼬나오(Toconao)라는 작은 마을에 들른 우리는 구리광산이 어떻게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했는지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제련 시설이 확장되고 공정의 규모가 거대화 되면서 많은 물을 필요로 했던 구리광산들은 무차별적으로 사막의 물을 잔뜩 끌어모았다. 이른바 '국가 경제'를 위한 명목이었을게다.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농사를 짓던 작은 마을들은 모조리 사라졌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깔라마(Calama)와 같은 광산 도시로 나갔다. 인구 300명 규모의 또꼬나오같은 마을 등 몇 개가 아직까지 존재해 관광업으로 생계를 꾸려간다고 했다.
▲ 또꼬나오(Toconao)마을엔 젊은이들이 거의 없다.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농사를 짓던 이들은 구리, 미네랄, 주석 광산에게 물을 빼앗겼고, 젊은이들은 일을 찾아 도시로 나간다.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또꼬나오 마을의 원주민 할아버지. ⓒ손문상

▲ 마을 길을 돌아나오는 또꼬나오 마을의 원주민 할아버지. 또꼬나오 마을의 아침. ⓒ손문상

▲ 상점에는 원주민들을 위한 물건이 없다. 물이 귀한 또꼬나오 마을에도 욕망의 강은 흐르고 일상은 무료하다. ⓒ손문상

▲ 이 무료한 마을에도 구원은 필요하다. 또꼬나오 마을의 아침. ⓒ손문상

▲ 이 무료한 마을에도 구원은 필요하다. 또꼬나오 마을의 아침. ⓒ손문상

"구리선에 달린 전등불빛 아래에서 인디오의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에르네스또는 여행 중에 추키카마타 광산의 '개미처럼 달라 붙어 구리를 캐는' 인디오 노동자들을 보았다. 그리고 구리 제련 과정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사라져가는 삶은 기록되지 않았다. 눈 앞에 보이는 폭력만큼 무서운 것은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당시에도 사라지고 있었을 이 땅의 진짜 주인들이 가이드의 한 숨 섞인 설명 몇 마디로 표현되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 아닐까? 우리는 이런 박탈과 상실을 더 큰 이득을 위한 희생 제의로 자연스레 인정하면 되는 것일까? 모두가 미친 듯이 말하는 경제를 위해서? 물론 우린 오늘 밤 숙소로 돌아가 구리선으로 이어진 전기 불빛의 편리함을 깨닫지 못한 채, 구리 동전을 쏟아내 일용할 식량을 사들이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다. 이기적인 인간이란. 선인장으로 만든 교회 장식에 대한 관광객들의 경탄만큼이나 씁쓸한 탄식을 하고 우리는 다음 여정이 될 '추키까마따 구리광산'행을 상상해야 했다.
▲ 소금 호수에 살지만 소금은 먹지 않는다. 생태학적, 지질학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착사 염호(Laguna Chaxa)의 홍학. ⓒ손문상

생태학적 쓸쓸함으로 포장된 우리의 표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를 실은 버스는 다음 여정인 착사 염호(Laguna Chaxa)로 향했다. 이 곳 소금 평원은 정말 놀랄 만 한 곳이다. 끝없이 이어진 것이 모두 소금 덩어리다. 하지만 먹는 것은 금물이다. 소금이긴 하지만, 인체에 유해한 각종 광물들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이 곳 소금 평원, 그리고 염호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가이드의 설명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아서, 고등학교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먼지 쌓인 지식을 꺼내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 산 뒤에는 볼리비아가 있다. 착사 염호에서 바라 본 해발 5921 미터의 리깐까부르 화산 (Mt. Licancabur). ⓒ손문상

단순하게 생각하자. 소금이라는 것은 Na와 Cl만 있다면 바다든 땅이든 우주든 안드로메다든 어디에서나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고로 나트륨 성분이 함유된 안데스의 물과 염소가 함유된 땅이 결혼해서 소금을 낳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과거에 이 곳이 바다였기 때문에 땅이 솟으면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바닷물이 소금이 되었다는 유치원 수준의 지식 정도만 피하면 얼마든지 난 체 할 수 있을 것이다. 소금은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신기한 것은 정작 염호가 아니라 염호에 사는 홍학과 도마뱀 그리고 수많은 생물들이었다. 한가지 공통점은 이 생물들이 결코 '소금물'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미생물과 벌레등을 먹고 산다.
▲ 자연, 그리고 시간이 주조해 낸 소금 평원 사이로 난 길. ⓒ손문상

▲ 자연, 그리고 시간이 주조해 낸 소금 평원. ⓒ손문상

다음 여정은 해발 약 4100m에 위치해 있는 미니께스(Miniques) 화산의 미스깐띠(Miscanti) 호수였다. 이 곳에만 서식하는 조류와 여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생태학적으로 중요할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는 '사람'이 더 중요했으므로 패스. 우리는 아르헨티나로 향하는 국경지대의 소까레(Socare)라는 마을에서 점심을 먹은 후 숙소로 돌아왔다.
▲ ⓒ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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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발 약 4100m에 위치해 있는 미니께스(Miniques) 화산의 미스깐띠(Miscanti) 호수 앞에서. ⓒ손문상

구리 광산에서 캐낸 것은 '칠레의 월급'인가?, 인디오의 고름인가?

다음날에는 그 유명하다는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으로 향했다. 갖가지 기암 괴석으로 이루어진, 마치 달에 온 듯한 풍경과 날씨를 헤집고, 바위같은 모래 속에서 소금이 응고되며 내는 작은 소리를 음악 삼아 모래사막을 걸어 다녔다. 말은 별로 필요치 않으리라. 사진이 설명해 줄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모래 언덕에 올라 해가 지는 광경을 지켜본 후 내려왔다. 다만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이 곳을 여행하는 도중 무려 네 명의 프랑스인 가족을 위해 겨우 여덟 명인 독일, 칠레,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만 했다는 점이었다. 프랑스인 가족 중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 때문이기도 해서 그냥 패스. 노인을 공경하는 나라에서 온 한국인다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넉넉한 시간을 쫓기듯 써야 했고, 가이드는 다른 관광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느라 바빴다.
▲ 화산석, 풀, 그리고 새와 여우를 바람이 건드리고 가는 이 곳의 기온은 쌀쌀하다. 해발 약 4100m에 위치해 있는 미니께스(Miniques) 화산의 미스깐띠(Miscanti) 호수 앞에서. ⓒ손문상

아따까마 사막은 칠레 북부의 얼굴이다. 그리고 그 얼굴은 세 가지 표정을 가지고 있다. 고름인지 황금인지 모를 수많은 광물들을 캐냄으로써 칠레 경제의 '월급 봉투(살바도르 아옌데 전 대통령의 표현이다)' 역할을 하는 무뚝뚝한 노동자의 표정과, 세련된 마케팅이 필요 없을 정도의 진풍경을 자아내는 관광 안내원의 밝은 웃음,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빼앗긴 원주민들의 쓸쓸한 표정이 버무려져 있다.
▲ 아이마라족과 아따까마족은 사막에서 살며 대부분의 건축물을 화산석과, 선인장으로 만들어 왔다. 물론 화산석과 선인장은 이제 이 지역의 상징이 되었을 뿐이다. 소까레 마을의 성당. ⓒ손문상

편리하게 금 그어진 국경과 지역별로 할당된 정확한 숫자의 입법의원들을 바탕으로 하는 국가권력은 가끔 경계선 안의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할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누리는 현실의 풍족함은 그만큼 아이러니다. 고리타분한 표현으로 '간접민주주의의 한계'라든가 '국민 국가의 부정적 측면'이라 불러도 상관없다. 또꼬나오 마을의 원주민 할아버지의 쓸쓸한 표정과 앞으로 보게 될 추키까마따 홍보 책임자의 미소, 그리고 3개 국어를 넘나드는 가이드의 친절함 속에서 나는 중첩되는 부분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돌아간다. 자연스럽게. 이성이라 불리는 요물과, 시장이라 불리는 계산기가 맞물리며. 하지만 그 원리를 우린 아직 모른다.
▲ 젊은이들이 빠져나간 또꼬나오 마을에서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원주민 할아버지. ⓒ손문상

▲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소까레(Socare)는 아르헨티나 국경 길목에 있는 칠레의 마지막 마을이다. 소까레 마을의 소녀. ⓒ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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