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도망갈까봐 여권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업주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도망갈까봐 여권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업주들!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 <52> "개인의 신분증을 왜 압류하는가"

어떤 필리핀 여성이 상담소를 찾아왔다. 한국에 온지 1년이 좀 넘었는데, 그 여성이 찾아온 이유는 여권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여권을 가지고 있는데 돌려받고 싶다는 것이다. 회사의 말인즉, 잃어버릴까봐 보관해주겠다는 것인데, 본인이 돌려달라고 해도 돌려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여권이 유일하게 자신을 증명하는 증명서인데 그것을 회사에서 보관하고 있으니 이 여성으로서는 일상생활이 불편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불편한 것은 그렇다 치고 길가다가 출입국관리 공무원이 갑자기 여권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다.
  
  회사에 전화하여 여권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회사에서는 오히려 언성을 높이면서 '도망갈까 봐 보관하고 있다, 만약 도망가 버리면 당신네들이 책임질 거냐'고 우리에게 따졌다. 타인의 여권을 가지고 있으면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하게 되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만약 돌려주지 않는다면 출입국관리소에 얘기해서 여권을 돌려주라고 조치해줄 것을 요구하겠다고 했더니 마음대로 하라고 펄쩍 뛰었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는 신경이 쓰였는지 얼마 후 여권을 본인에게 돌려주었다.
  
  비단 이 필리핀여성의 경우만이 아니다. 여권을 회사에서 가지고 있다는 이주노동자들을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그런 얘기를 들어도 신경이 날카로워지지 않는다.
  
  우리 단체에서 1994년에 이주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노동법-민형사사건에서의 인권보호규정 등을 담은 핸드북을 펴낸 적이 있었다. 1994년이라면 한국에 이주노동자가 증가해나가기 시작하던 시기로서 체류 이주노동자를 10만여 명으로 추산하던 때이면서, 1992년부터 단순기능 외국인력도입제도로 기능하기 시작한 산업기술연수제가 악명을 떨치던 시기였다.(그 당시에 비하면 산업기술연수제도 많이 개선되기는 했다.) 그때는 이주노동자들의 여권을 사업주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주 당연시되었다. 그래서 핸드북에 '여권은 반드시 본인이 보관해야 한다, 만약 사업주가 달라고 하면 거절하고, 필요하다면 여권사본을 사업주에게 주라'고 썼었다.
  
  그런데 이후에도, 2003년도에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대폭 개선되었다는 고용허가제가 도입되고서도 이 여권을 압류하는 관행 아닌 관행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출입국관리법에 의하면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여권 등 신분증을 항상 소지하고 있어야 하며, 타인의 여권 등 신분증을 가지고 있으면 처벌받게 되어 있다. 굳이 출입국관리법 조항이 아니더라도 외국에서 자신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왜 남에게 맡겨야 하는가. 길든 짧든 외국생활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여권을 본인이 신주단지 모시듯이 잘 간수해야 한다는 것을 상식으로 알 것이다.
  
  만약 입장을 바꿔서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이 취직했는데, 말없이 도망갈까봐 주민등록증을 맡아두겠다고 하면, 그런 말을 하는 사업주를 한국인들은 뭐라고 평가할까. 그런데도 한국의 많은 사업주들이 이주노동자들의 여권을 맡아두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